MB-재계총수 ‘청와대 회동이 비밀’
건배 구호는 “투자”에 “일자리”
2008-05-06 김종훈 기자
이명박 대통령(MB)은 지난달 28일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등 이른바 빅5 총수를 포함한 재계총수들과 만나 “앞으로 전체 기업에 대한 문제점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 민원도 가급적 해결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말 대선 직후 전경련을 방문해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약속한지 4개월 만에 이뤄진 회동이다.
이 대통령과 총수들은 장시간 회의를 가진데 이어 오후부터는 자리를 옮겨 만찬을 같이하며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나온 대화 내용들은 대부분 규제개혁을 해소해 달라는 요구가 주를 이뤘고 이에 이 대통령은 적극적인 검토를 약속했다.
이날 회담은 대통령이 총수들에게 커피포트에서 손수 커피를 따라주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허물없는 대화가 오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만찬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투자’라고 건배사를 선창하자 총수들이 ‘일자리’고 화답하는 등 연신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앞으로 매 분기마다 재계 총수들과의 만남을 정례화 하겠으며, 개별 기업의 민원사항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재계 총수들은 지주회사 제한 완화, 수도권 입지 완화, 군사시설 해제 등 각종 건의사항을 내놨다.
다음은 재계 총수들이 이 대통령에게 건의하거나 다짐한 내용이다.
구본무 LG 회장 =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지다보니 기술력 있는 협력업체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휴대폰이나 첨단가전, LCD 등에서 수입품과 수입 장비를 상당부분 사용하는데 이런 게 국산화되면 로열티 감소, 원가 경쟁력 강화, 국가 기반구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경쟁력 있는 협력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국책연구기관이 개발한 첨단기술을 협력업체에 이전하고 이러한 기술이 제품화 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시기 바란다. 교육, 연구개발 등과 관련된 세제지원 확대를 요청 드린다. 지주회사에서 첨단기술 확보를 위해 벤처기업 등에 투자하려면 벤처 투자가 금융기관 등으로 분류돼 하지 못하고 있다. 고려해 주시기 바란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 경제 살리기에 힘쓰고 있는 때 불미스런 일 있어서 죄송스럽다. 경영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세계 경제가 불안하고 경영 여건이 좋지 않지만 삼성그룹에서 과감한 투자와 고용을 추진하도록 하겠다. 대통령이 친기업 정서를 내세우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반기업 정서가 너무 강하다. 기업에서도 노력하겠지만 정부에서도 반기업 정서 해소하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많이 도와주셨으면 한다. 반기업 정서가 해소되면 규제개혁이나 다른 것 못지않게 기업 투자가 활성화된다.
신동빈 롯데 부회장 =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을 추진하는 데 군사시설과 관련된 고도제한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평화와 안정을 찾았으니 군사시설도 축소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군부대가 어느 정도 비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타결해 주시기 바란다. 현대차는 친환경 하이브리드 차를 올 하반기 양산 목표로 생산 중이고 비메모리 분야 등에서 역량 있는 벤처 업체를 발굴해 지원할 예정이다. 신기술 개발투자 등에서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겠다.
최태원 SK 회장 = 에너지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대응할 방법이 부족하다. 산유국, 자원보유국과 함께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재투자하는 순환 투자가 필요하다. 단순한 자원개발보다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산업이나 인프라를 패키지로 제공하면 그 수익이 우리나라로 유입될 수 있다. 민간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정부의 외교, 비즈니스 역량이 결합돼야 한다. 또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4-5년간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 정보통신 영역간 융합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이 철폐돼야 한다. 특히 방송과 통신 융합 모델이라든가 그 외 콘텐츠, 또 우리가 한류를 성공적으로 진출 시켰지만 이를 뒷받침할 플랫폼, 단말기 네트워크로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박삼구 금호 회장 =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됨으로서 지주회사에 들어있는 기업들은 출자총액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제한이 아직 그대로 살아 있다. 증손회사 허용에 대해 30% 까지는 허용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조건부 허용이다. 지주회사로 돼 있는 경우 본인이 지주회사로 가든지 대기업 집단으로 가든지 선택하도록 해 달라.
김준기 동부 회장 = 동부는 메모리 시장의 5배인 비메모리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3년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첨단 지식산업 이런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투자도 크고 글로벌 우수 인력 필요로 한다. 지난 수년 동안 경험했는데, 가장 큰 애로가 한국의 은행들은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할 수 없이 자기 자산을 투자해서 사업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WTO 때문에 직접적으로 투자할 수 없다는 것 알고 있다.우선 지식기반산업이나 벤처산업, 정부가 정한 신성장동력 산업 이런 데는 정부가 ‘투자보험공사’를 정부 주도로 설립했으면 한다.
이준용 대림 회장 = 정부의 입찰제도와 공동도급제 등 정부 계약제도는 근본적인 기술발전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해외 건설산업이 붐을 이루고 있는데 80년대의 방식 그대로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 30대 그룹 투자 확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서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수도권 규제 완화와 상속세 인하 등 대폭적인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 올해 30대 그룹 신규 채용 규모는 7만7541명으로 작년보다 18.3% 늘어날 전망이고 전체 근로자 수도 작년보다 6% 늘어난 87만2330명이 될 것이다.
올해 30대 그룹 투자 규모도 작년보다 27%가량 늘어난 약 95조6000억원이 될 전망이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 지방경제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특히 지방에서는 건설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미분양 아파트 등으로 건설업계가 어렵다. 경제발전을 위해 의료, 교육, 관광 등 지식기반 서비스가 중요하다. 작년 지식경제부와 협의해 14개 전문 서비스 협회를 주축으로 해 지식전문서비스협의체 구성해 일하고 있다.
유창무 무역협회 회장 = 서비스 수지 적자를 무역수지 흑자로 메워왔는데 최근 무역수지 마저도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무역수지 악화에 대비한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약과 관련해 서머타임제 도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OECD 국가 중 일본과 아이슬랜드, 그리고 우리나라만 제외하고 모두 서머타임을 실시하고 있다. 서머타임제가 실시되면 0.3% 정도의 에너지 절약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번 회동과 관련해 재계 안팎에선 일부 참석자들의 ‘상속세 폐지’ 요청을 놓고 “기업들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할 판에 벌써부터 상속세 폐지를 정부에 요구한 것은 제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