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105일 장정 성과는 미지수

>> 특검·삼성 창과 방패 싸움

2008-01-30     장익창 기자

삼성그룹의 불법비자금 의혹을 수사할 ‘삼성특검’이 지난 10일 가동돼 최장 105일 동안의 활동에 들어갔다. 삼성특검은 이건희·이재용 부자와 핵심임원들의 자택, 집무실, 삼성 본사, 미술품창고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수사가 소기의 성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후 석 달이 지나서야 개시됐다는 점에서도 특검이 과연 제대로 이뤄질까하는 의아심을 낳게 한다.‘정보 사전입수’ ‘자료 폐기’, ‘행동지침 하달’ 등 '관리의 삼성'이 특검에 만반의 대비를 해온 의혹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특검은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와 관련된 의혹 △불법비자금 조성경위 △비자금의 대선자금 사용의혹과 검찰·정치권에 대한 로비의혹 △수사방치 의혹을 받고 있는 4건의 고소·고발사건(에버랜드,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e삼성 회사지분거래)에 대한 의혹을 수사하게 된다.

지난해 10월 김 변호사가 삼성그룹의 비자금의혹을 폭로했을 때 검찰은 삼성과의 유착을 부인하는 데 급급했다. 김 변호사 폭로에 근거가 있음이 밝혀지자 검찰은 11월 26일 삼성에 대한 계좌추적을 하는 정도였다.

이 사건을 맡았던 검찰의 특별수사·감찰본부는 수사착수 5일 만에 삼성증권 본사와 전산센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삼성이 수색 전날 밤까지 관련증거를 없앤 단서들이 드러났다. 검찰은 미처 없애지 못한 전·현직 임원 차명계좌 1만개의 목록 등을 발견했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경위와 이를 통한 전방위 로비수사를 위해 꼭 필요한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등에 대해선 압수수색을 벌이지 않았다.


김빠진 압수수색

특검팀은 최근까지 벌인 때늦은 압수수색을 통해 별 다른 수확 없이 허탕만 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은 삼성 비자금의혹의 출발이자 끝이다.

삼성증권 압수수색 뒤 45일이나 지난 이달 14일 이건희 회장 집무실인 '승지원'에 삼성특검의 첫 압수수색이 벌어졌다.

승지원 압수수색 뒤 삼성그룹 안팎에선 ‘삼성 본관 압수수색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난 15일 수사관들이 삼성그룹 본사에 도착하자 삼성직원들은 알고 있었다는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특검팀은 뾰족한 단서 하나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헛다리만 짚었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특검에서 압수수색이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삼성그룹의 증거인멸혐의에 대해 특검수사와는 별도로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술품창고 말 바꾸기 논란김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씨가 삼성비자금으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등 세계적 거장 20여 명의 작품들을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 등을 통해 샀다"고 밝힌 바 있다.

특검팀은 지난 21, 22일 오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부근 창고를 압수수색해 수천 점의 미술품을 찾아냈다. 하지만 미술품 수가 워낙 많고 미술품리스트에 대한 삼성의 협조가 미진해 김 변호사가 제기한 문제의 그림들은 제대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삼성의 말 바꾸기도 논란

미술품창고 압수수색과 관련해 삼성의 말 바꾸기도 논란이 되고 있다. 창고가 수색을 당하기 전 삼성문화재단과 에버랜드 쪽은 “안내견이나 사고구조견 등의 축사나 각종 행사소모품이나 교육용교재 등을 보관하는 창고"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창고에 보관된 수많은 미술품들이 드러나자 삼성 리움미술관 등에서 전시하고 남은 그림을 보관하는 장소라고 말을 바꿨다. 끝에 가서야 삼성그룹은 이완수 변호사를 통해서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모아온 골동품과 미술품을 보관해온 정식 수장고“란 공식입장을 내놨다.

삼성의 말 바꾸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김 변호사가 <행복한 눈물> 구입의혹을 제기할 때 삼성은 처음엔 ‘홍라희씨 개인 돈으로 샀다’고 했다가 ‘그림을 산 적이 없다’고 말을 돌렸다.

특검팀은 압수수색 등에서 큰 소득을 얻지 못하자 비자금조성 및 관리에 관여한 의심을 받고 있는 삼성임원들 소환조사를 강화하는 방침으로 돌아섰다.


“문제될 만 한 건 다 없애라!”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이번 특검에 대비, 비자금 조성혐의 등 문제가 될 만한 내부 자료를 대거 없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본사주관으로 모든 사업장에 ‘보안지침’을 내려 보내 자료파기를 지시했다.

이 보안지침은 △2001년 이전 작성문서 △시민단체·관청·구조조정본부·자회사·관계사 관련자료 △구조본이 한 경영진단문서 등을 모두 없애라고 돼있다.

삼성그룹은 “계열사별로 일상적인 보안점검이며 특정자료들을 없애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특검은 수사기간과 인력이 넉넉하진 못하나 ‘삼성’이란 경제성역을 철저히 파헤치는 계기가 돼야 함엔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