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의 성공학’ 장수 CEO의 비밀

솔선수범 내공 갖추고 지식경영 무장

2008-01-28     현유섭 기자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이건희 삼성회장 등 재벌그룹 회장들이 지난해 구설수에 올라 곤혹을 치렀다. 비리와 폭력 혐의에 따른 재판과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눈총을 샀다. 특히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재판 결과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국내 재벌들의 장수 비결은 ‘휠체어’라는 비난도 쏟아냈다. 그러나 국내 재벌 총수들의 위기가 곧바로 그룹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이를 재계에서는 재벌 계열사들을 이끌고 있는 CEO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대기업 CEO 반열에 오르는 과정에서 나온 내공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전문 경영인들의 수명은 길지가 않다. ‘임시직’, ‘계약직’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때문에 장수를 누리며 기업을 이끌고 있는 CEO들의 비결은 샐러리맨들의 궁금사항이다.

대기업에 재직하고 있는 장수 CEO는 누구일까.

최병철 극동전선 사장, 이금기 일동제약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선동 에스오일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다.

이들 CEO들은 10년 이상 장기 재임을 통한 기업의 중장기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들은 국내 한 경제연구소의 조사보고서에서 ‘국내 기업 5대 장수 전문경영인’으로 뽑혔다.

국내 대기업 CEO의 평균 수명은 얼마나 될까. 국내 경제연구소 등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의 CEO 평균 재임 기간은 4.1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주주의 의사에 따라 CEO가 수시로 바뀌는 미국 기업의 경영자들보다도 두 배 이상 짧아 국내 상장사 CEO 교체가 빈번했다.

재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규모가 작은 기업은 단기 실적이 매우 중요하다” 며 “중장기 숙제를 풀어야 하는 재벌그룹 경영인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존경받는 기업인 1위 정주영 회장

조사결과에 의하면 장수 경영인들의 첫째 조건은 실적이라는 게 잠정 결론이다.

기업 실적의 중요성은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일반국민과 교수, 현직 CEO 등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가 정신 실태 및 존경받는 기업인’ 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뽑혔다. 한국 경제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인들이 추구해야 할 가장 큰 목표에 대한 질문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이 ‘이윤창출’이라고 대답했다. 고용창출(30.8%)과 ‘이윤의 사회 환원’(17%) 등 순으로 뒤를 이었다.

게다가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인의 자질에 대한 응답도 나왔다. 응답자 10명 중 4명은 존경받는 기업인의 덕목으로 창의력을 꼽았고 ‘정직과 도덕성’(29.8%), 인간미(11.6%), 장인정신 (9.4%) 등이다.

장수하는 경영인들의 비결은 습관에서 찾을 수 있다.


존경받는 CEO의 조건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인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생활습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오전 5~6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고 대답했다. 오전 5시 이전에 일어나는 CEO도 8.1%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CEO들이 아침형 인간인 것이다.

가장 존경 받은 기업인으로 뽑힌 고 정주영 회장의 새벽 일과시작 일화는 경제계에서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응답자 10명 중 4명 이상은 자신의 성격이 내성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을 지닌 ‘양향적 인간’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특히 CEO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직업’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은 ‘기업가’를 선택했고 교수(13.3%), 과학자(10.8%), 의사(7.5%) 등의 순이다.

겸손도 장수 CEO들이 갖춘 덕목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기업들은 구조 조정기를 겪으면서 경영인들의 과감한 카리스마형 결단력이 필요했다.

CEO들이 강한 조직 장악력과 통솔력을 바탕으로 침체된 조직을 회생시켜야 할 역할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기업 내부에 실적 지상주의를 만들면서 CEO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상당수의 장수 CEO들은 겸손하다는 내외부의 평가를 받고 있다.


“따뜻한 인간미부터 보고 싶다”

회사 주요 회의에서도 CEO의 겸손이 필요하다. LG경제연구소가 소개한 ‘성공하는 CEO의 회의 비결’을 보면 경영인의 첫 번째 회의 비결로 ‘들어야 할 때 입을 닫는다’를 꼽고 있다.

구성원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회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CEO가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토론식 회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CEO의 역할도 중요하다. 회의 과정에서 공명심에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자신만 돋보이려 하는 분위기를 경계하기 위해 CEO가 직접 참석자들에게 상호 존중과 진실한 대화를 통한 의사결정이 목적임을 주지시켜야 하는 것도 성공한 CEO의 회의 비결이다.

이와 함께 CEO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부각되고 있다.

일부 CEO들은 기업 내 비공식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주인공은 ‘매일 편지 쓰는 CEO’란 애칭을 가진 정이만 한화 63시티 대표. 정 대표는 비실적 부서인 홍보팀 출신으로 계열사 CEO에 오른 인물이다.

정 대표는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홍보실장으로 근무하다 지난 2003년 3월 한화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인 한컴 사장으로 부임했다.

정 대표는 부임하자마자 전 직원들에게 매주 한 통씩 이메일을 보내며 전 직원들과 교감을 시도했다. 편지 내용은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날씨 등 계절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 평범하고 다양했다.

한화 관계자에 따르면 정 대표는 한컴에 부임했을 때 광고주들이 떨어져 나가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걱정하면서 편지를 보낸 것이 교감의 시작이다.

정 대표는 63시티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계속 정기적으로 편지를 직원들에게 보내는 등 한화그룹 감성 경영의 표본이 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처음 사장의 편지가 의아했지만 매일 이어지는 편지에 답장도 보내고 애로 사항도 털어놓는 비공식 창구로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일부 CEO들은 기업 내 비공식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하고 있다.

삼성SDS 직원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한 통의 편지를 읽는다.

발신자는 김 인 삼성SDS 대표.

김 대표의 편지도 강압적인 업무 내용을 담은 지침이 아니다. 김 대표는 편지를 통해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어려움을 부하직원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편지 쓰는 CEO’들의 공통된 특징은 책을 가까이 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만큼 좋은 수단이 없는 셈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CEO가 단기성과의 향상에만 주력함으로써 기업의 장기적인 비전을 훼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고 밝히고 있다.

CEO의 중요한 사명은 기업을 후계자에게 넘겨 줄 때 나은 건강한 상태로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