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 개편안 발표 각 부처 반응·뒷얘기
삼삼오오 모여 ‘앞날’ 걱정
2008-01-23 박지영 기자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된 지난 16일 각 부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된 통일부·정보통신부·해안수산부 등은 초상집을 떠올리게 했다. 반면 다른 부처를 합쳐 더욱 ‘힘’이 실리게 된 외교통상부와 산업자원부 등은 표정관리에 애썼다. 그대로 살아남는 부처에서도 실·국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조직개편안 발표 뒤 부처별 반응과 뒷얘기를 모아본다.
정부조직개편안이 발표된 지난 16일 통일부 당국자들은 부 폐지 소식에 ‘뜻밖’이라며 당혹해 했다. 한 통일부 관계자는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통일부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단순한 부처의 존폐문제를 넘어 남북관계에 어떤 대안을 갖고 통일부를 없애려는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실망감 금치 못해” 분노
지식경제부, 문화부, 방송통신위원회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정보통신부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다.
한 부처 관계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모이는 곳마다 어느 부처로 옮겨갈지를 묻고 불안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건설교통부와 농림부에 기능을 나눠주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질 운명에 놓인 해양수산부 직원들도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출범 11년 만에 돛을 내리게 된 해양수산부는 3분의 2(해운 및 항만분야)가 국토해양부로, 나머지는 농림수산부로 옮긴다.
이 과정에서 과장급 이상 간부 30~40%는 보직을 잃고 본부대기 상태가 된다. 나머지 직원들 또한 승진이 늦어질 것으로 보여 무거운 분위기가 청사를 감쌌다.
진작부터 폐지가 거론된 국정홍보처는 오히려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언론보도에 나온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다들 마음이 편치 않다”고 전했다. 간부급 팀장 또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니 착잡하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여성가족부와 여성계도 분노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여성부 관계자는 “한 달 전 ‘다른 기능을 합쳐 여성부를 강화 하겠다’고 공약했던 이명박 당선인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여성정책 후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 관련단체들도 불만을 드러냈다. 과기부 한 간부는 “과학기술이 없는 선진국이 말이 되느냐. 새 정부는 토목공사로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냐”며 격앙된 반응이었다.
말 아끼지만 얼굴엔 희색
반면 통일부 기능을 상당부분 흡수하게 된 외교통상부는 일단 말을 아끼며 주위 반응을 살폈다. 외통부 한 간부는 “외교안보분야의 여러 사안들을 효율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한다. ‘글로벌 코리아’를 강조해온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대외관계 총괄조정기능의 강화 필요성엔 전적으로 동의하나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게 문제”라며 “균형감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의 일부 기능을 가져와 지식경제부로 확대 개편된 산업자원부는 그야말로 잔칫집을 연상케 했다.
한 팀장급 간부는 “경제가 융합되는 때 산업계 전체를 일괄지원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게 됐다. 나라를 먹여 살릴 새 산업부문을 창출하려는 새 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조직개편으로 평가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새 정부가 경제성장 동력으로 꼽은 IT산업 등 실물경제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힘을 실어준 게 아닌가 싶다. 부처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연구개발분야도 일원화돼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전망”이라고 반겼다.
금융정책국, 금융정보분석원, 국제금융국 외국환거래 감독기능까지 아우르게 된 금융감독위원회는 “이젠 금융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며 반색했다.
금감위 한 관계자는 “금융정책과 감독권한이 나눠져 있어 시장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이번 조직개편으로 빠른 정책결정과 감독업무가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와 통합되는 재정경제부 반응은 ‘출신’ 성분에 따라 미묘하게 엇갈렸다. 재경부 자체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양대 산맥의 전통을 이어받은 탓이다.
경제기획원 출신들은 예산권과 조정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며 경제기획원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에 반해 재무부 전통을 이어받은 금융정책국의 한 과장은 “장관급인 금융감독위원회 조직에 금융정책국이 사실상 흡수되는 것이라 조직의 위축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7000여명 당장 쫓겨나나?
현재 우리나라 기관 공무원 수는 13만722명이다. 이 중 6951명이 정부조직 개편으로 줄어든다.
그렇다면 6951명 공무원들은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우선 출연연구기관으로 바뀌는 농업진흥청(2146명)과 국립수산과학원(633명), 국립산림과학원(307명) 등 3086명은 민간인 신분으로 바뀐다. 공무원이란 이름만 버릴 뿐 일자리는 유지되는 셈이다.
민간인으로 바뀌는 사람들은 또 있다. 업무가 민간으로 넘어가는 경찰청의 운전면허시험관리를 맡아오던 849명과 통계청 통계조사업무담당 77명이 바로 그들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줄어드는 공무원 중 상당수는 출연연구기관으로 바뀌는 인력이다.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바뀌긴 하나 실직을 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