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신용카드 받아 흥청망청
2008-01-07 송효찬 기자
식품의약안정청이 신년부터 수많은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식약청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한마디로 ‘굴욕의 식약청’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초대청장에 이어 고위간부들이 줄줄이 비리와 연루돼 구속되고 있다. 또 국민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의약품명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정보공개청구를 묵살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비리 의혹과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11월 28일 식품의약안정청(이하 식약청) 박종세(64세) 초대청장이 ‘복제의약품(이하 카피약)’ 효과 조작으로 구속된 지 정확히 한 달 만에 식약청 고위간부 문병우(55세) 차장이 화장품 업체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사용한 혐의로 경찰청 특수수사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박 청장은 카피약의 약효 시험 결과를 조작한 자료로 식약청을 속인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따르면 카피약의 약효 시험 결과를 조작해 오리지널약품과 동일한 약효를 지닌 것처럼 실험보고서를 제약회사에 넘겨 제약사가 해당 약품에 대해 식약청 허가를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공무집행방해로 민간 전문시험기관인 ㈜랩프런티어 대표를 지낸 박 청장을 구속 수감한 것이다.
복제의약품 약효시험 조작 실태
검찰은 또 같은 혐의로 랩프런티어에서 기술고문을 지내고 과학기술연구원 도핑컨트롤센터장으로 재직 중인 김 모씨도 함께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3년 6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제약회사들로부터 모두 63개의 카피약 시험을 의뢰받았다. 그 후 시험 결과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담당 연구원들에게 결과를 조작할 것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이후 법원은 약효가 검증되지 않은 제약사의 의약품을 공개하라고 지시했지만 식약청은 이를 거부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거부한 사유에 대해 “검찰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다. 공개될 경우 특정회사와 단체 또는 개인에게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한편 박 청장은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03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현재 집행유해기간 중이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또 그는 2006년 당시 언론사 인터뷰 때마다 황우석 쇼크를 들먹이며 “바이오산업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철저하게 맞춰야 한다.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 고 강조한 바 있다.
박 청장에 이어 지난해 12월 28일 의약품본부장출신의 문병우 식약청 차장이 화장품 업체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국무조정실 암행감찰반으로부터 포착돼 조사를 받고 있다.
문 차장은 지난해 6월 화장품 회사에 재직 중인 서울대 약대 선배로부터 신용카드를 넘겨 받아 최근까지 식사비 명목으로 30여 차례에 걸쳐 600여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함께 50만 원의 금액이 담긴 ‘기프트 카드’ 2장도 함께 받아 사용한 정황도 감찰반에 포착됐다.
문 차장은 지난해 7월 1급인 식약청 차장으로 승진하기 직전까지 화장품을 비롯해 의약품의 제조, 수출입 인허가 등을 담당하는 식약청 의약품 본부장을 지냈으며 국무조정실은 감찰 결과를 은평경찰서에 전달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문 차장을 조사한 관계자는 “아직은 회사들에 대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 조만간 조사내용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사건을 바라보는 중소 화장품업체 및 제약사들은 “행정상 허가를 받기위해 복잡한 서류와 철차들이 너무 많다. 또 최고의 제품이라 자부하며 정확하게 제조된 제품이라도 브랜드 때문에 피해를 본다. 대기업들은 로비로 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 부럽다.”고 말했다.
“법인카드 아닌 개인카드 받았다”
또 그들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고위공직자들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국민과 기업들이 이번 사건에 식약청의 고위공직자들이 연루된 만큼 앞으로 신뢰성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식약청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안 좋은 일들이 줄줄이 터지고 있지만 아직 조사 중이다. 또 그가 받은 카드는 법인이 아니라 개인카드”라는 어이없는 말을 전했다.
개인카드든 법인카드든 관련 공무원이 업체로부터 카드를 받아 사용하는 것은 위법 아닌가. 그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반문에 “잘못된 것이다. 죄송하다. 조사가 끝나면 발표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관련 중소기업들의 불만과 입장에 대해 “중소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기 위해 간소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은 조사가 끝나면 발표 하겠다” 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들은 초대청장 구속에 이어 문 차장 파문까지 겹친 시기가 정부 조직 개편안을 앞둔 시점인 만큼 부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