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 후계 구도 ‘삐끗’

경영권 ‘65세 형제승계론’ 깨질락 말락

2008-01-03     박지영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의 경영권 승계시점에 대해 재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금호그룹의 이른바 ‘65세 경영권 승계’가 이번에도 지켜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65세 형제 승계론’을 따를 경우 현 박삼구 회장은 65세가 되는 2009년 그룹회장직을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65세 형제 승계’ 전통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 지 미지수다.

2002년 취임 뒤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회장이 경영권을 쉽게 양보하겠느냐는 것. 또 금호가 3세들 중 유일하게 금호그룹 경영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박 회장의 외아들 세창 현 이사의 경우도 ‘금호 표 경영권 승계’에 큰 이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호그룹은 우애 깊은 ‘형제경영’으로 재계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왔다. 이런 금호그룹의 잡음 없는 형제경영은 박인천 창업주의 독특한 승계원칙과 이를 충실히 따라준 2세들에 의해 비롯됐다.

박 창업주는 경영승계와 관련, △여러 사람이 경영에 참여하다 보면 분란이 생길 가능성이 많으므로 지분상속은 원칙적으로 남자들에게만 한다 △5남 중 관계에 진출한 박종구(4남)만 빼고 나머지 성용(작고), 정구(작고), 삼구, 찬구는 서로 합의를 통해 회장을 선임해라 △주요 사안에 대해선 형제간 합의를 우선시 하되, 합의가 안 되면 다수결 원칙에 따라라 △그래도 결정이 나지 않으면 가장 손윗사람이 결정권을 갖
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국내 다른 그룹들이 대개 장자승계원칙에 입각하고 있는 데 반해 유독 금호그룹만이 ‘형제경영 원칙’을 지키는 것도 여기에 있다.


65세 때 회장직 물림

장남인 박성용 명예회장은 창업회장의 49재를 지낸 1984년 8월 3일 제2대 그룹 회장으로 조용히 취임했다. 선친이 타계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의 성격상 요란한 취임행사가 맞지 않은 탓이었다.

소탈한 성격의 박 명예회장은 선친에 뜻에 따라 1993년부터 동생 정구씨에게 그룹회장 자리를 넘기겠다는 뜻을 여러번 밝혀왔다.

박 명예회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미국 CEO들은 환갑만 지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며 동생 정구씨에게 그룹 총수직을 맡아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다.

그러던 1996년 4월 그룹창사 50주년이 되는 해 동생 정구 전 회장은 “65세에 회장직을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형의 뜻에 따라 회장 자리에 앉았다. 본능적인 감각과 불도저식 추진력을 발휘, 현장중심의 경영방식을 택했던 차남 정구 전 회장은 회장 취임 6년 만인 2002년 지병인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역시 공교롭게도 65세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65세 때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전통을 만들어낸 셈이다.

재계가 금호그룹 경영승계에 관심을 보이는 것 또한 이 같은 맥락에서다.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사령탑을 맡는 금호그룹 특성상 과연 박삼구 현 회장은 언제쯤 동생에게 회장직을 내줄 것이라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른바 ‘65세 룰’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09년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부문 회장에게 그룹회장직을 물려줘야만 한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 역시 ‘65세 룰’을 따를 경우 3년 만인 2013년에 다시 사령탑에서 내려와야만 한다.


박 회장의 진짜 속내는

그러나 최근 형제경영으로 모범을 보이던 금호그룹에 ‘이변’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 등으로 금호그룹을 재계 11위에서 7위로 단숨에 끌어올린 박삼구 회장이 순순히 경영권을 내놓겠느냐 것이다.

또 그의 외아들인 박세창 현 전략경영본부 전략경영담당 이사의 경우 현재 금호가 3세들 중 유일하게 그룹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숙부’를 제치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휘문고와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MIT공대 MBA과정을 마친 박 이사는 2005년 금호타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1년 만에 그룹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할하는 그룹 전략경영본부 이사로 초고속 승진했다. 금호그룹 경영권을 쥐고 있는 4형제(5남 제외) 가운데 박 이사만이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 호사가들에 따르면 박 이사는 드러내 놓고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훗날’을 위해 조용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금호의 ‘차기’ 총수자리를 놓고 온갖 추측들이 나도는 가운데 재계일각에선 금호그룹의 분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무게를 두고 있다.

현 박삼구 회장이 금호그룹 지주회사를 두 개로 나눈 뒤 외아들인 박 이사의 경영능력이 검증되는 시점에서 경영권을 넘기지 않겠냐는 것이다.

금호그룹은 2007년 초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양대 지주회사체제로 돌리기로 했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이 법적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금은 금호산업만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재계 일각에선 금호석유화학이 법적요건을 충족할 경우 지주사 전환과정과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자칫 회사가 둘로 쪼개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금호그룹은 “금호에 ‘65세 경영권 승계 룰’이란 것은 없다”며 재계 분석을 일축했다.

그룹 고위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65세 경영권 승계 룰’ 같은 것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또 박 회장이 2002년에 취임, 의욕적으로 활동 중이므로 현재 경영권 승계를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