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지의 대기업, 공정위 간부 성접대 진상
2007-10-09 현유섭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흔들리는 내부 기강이 도마 위에 올라 주목된다. 시퍼런 칼날에 비유되는 경제검찰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내용이다. 한마디로 경제정의를 이룬다는‘공정위의 영(令)이 안 선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국내 재벌 계열사의 고위급 임원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에게 향응과 성접대를 한 정황까지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문제의 공정위 간부의 징계 여부를 놓고 내부 감사팀이 사건을 축소하려던 의혹까지 고개를 드는 등 국정감사에서 고위급 공무원의 성접대 정황에 대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간부 사이에서 이뤄진 성접대 내막을 집중 추적했다.
공정위는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에게 소속 공무원들의 비위 사건 조사보고서 자료를 제출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각종 징계를 받은 공정위 공무원은 전체 504명 중 43명으로 뇌물 수수 등 각종 비리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검찰’이라 불리는 공정위 직원 10명 가운데 1명꼴로 징계를 받은 셈이다.
공정위 간부가 들른 모텔에선 어떤 일이
징계 사유별로 보면 ‘뇌물수수’ 관련 비리가 10건(2건은 지휘·감독 책임)이나 됐다. 한 서기관은 중소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하도급 공사 낙찰 청탁 대가로 고급 승용차와 2000만원을 받았다
민간근무, 휴직 중 계약을 어기고 과도한 보수를 받은 사례 10건, 사건처리 절차 규정 위반 11건, 대외비 문서 폐기 지연 6건, 예산집행 지연 및 착오 4건, 음주운전 1건, 부적절한 언행 1건 등이다.
지난 2004년 당시 현직 조사국 고위 간부 A 서기관이 국내 대기업 D사 고위 임원 B씨로부터 향응과 성접대를 받은 사실이 뒤
늦게 밝혀졌다.
그러나 공정위의 징계는 ‘솜방망이’ 수준. 대부분 징계는 가장 낮은 단계인 주의나 경고로 끝났다.
특히 향응과 성접대 등을 받은 해당 서기관은 중대한 과실이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조치를 받았다.
게다가 당시 재벌그룹 계열사는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었으며 해당 서기관은 조사를 담당하는 부서의 간부였던 점 등을 미뤄 대기업 임원과 공정위 고위 간부에서 이뤄진 향응과 성접대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2004년 7월 27일 늦은 오후, 서울 시내 모 유명 한식집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소속 서기관 A씨 등 3명과 국내 재벌 계열사 D사의 고위임원 B씨가 자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공정위 고위 간부들과 대기업 부사장은 1인당 6만원상당의 고급 한정식을 주문해 놓고 2시간가량 술잔을 돌렸다.
대기업 임원은 음식값과 술값 40만원을 카드로 결제한 뒤 공정위 해당 간부들에게 2차를 제의했다. 이후 일행은 인근에 위치한 유흥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에는 유흥주점이 고용하고 있는 접대부 4명도 합석했다.
술자리가 익어갈 무렵, 해당 임원과 동행한 서기관급 공무원 2명이 귀가를 하면서 A씨와 B씨만 남게 됐다.
둘만 남게 되자 대기업 고위임원은 공정위 간부에게 다른 제의를 했다. 접대부와 함께 주점 인근에 위치한 모텔로 향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술값 92만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접대부 비용 50만원은 현금으로 지불했다.
해당 공정위 서기관은 이날 자정 무렵 귀가하기 위해 모텔을 나오는 과정에서 정부합동점검반에 의해 적발됐다. 여기까지가 지난 2004년 8월에 작성된 정부합동점검반 조사 보고서 내용이다.
부당내부거래의 진실, 공정위 은폐 의혹
하지만 공정위는 A 서기관에 대해 ‘너그러운’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는 해당 서기관에 대해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행동강령을 적용하고 있다.
공정위의 조사보고서는 향응수수의 경위가 저녁식사의 술자리로 인한 우발적 사안인 점과 금품수수가 없었다는 점, 통상 법원에서 향응수수를 관대하게 처벌된다는 점 등을 내세워 징계 회부가 과중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 과거 사례를 볼 때 금품수수가 아닌 향응접대의 경우 1인당 50만원정도의 금액으로 징계를 받은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날 사건은 단순 인사조치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공정위의 징계조치내용을 보면 성접대 정황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해당 서기관이 모텔에서 접대부와 함께 있다가 귀가를 위해 나오다가 적발된 점 등을 고려하면 공정위 감사팀이 성접대 정황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더욱이 공정위 감사팀은 해당 서기관의 향응수수 등이 ‘1회성’과 ‘우발적’ 등으로 판단하고 있는 등 성접대부분에 대해 쉬쉬하려했다는 의혹마저 사고 있다.
특히 그가 향응수수를 받은 시점이 제공자 B씨가 근무 중인 그룹의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었던 시점인 것도 또 다른 의문을 남기고 있다.
D사가 계열사로 있던 모 그룹은 공정위로의 그룹 내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였다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공정위는 모 그룹에 대해 대량 주식 거래를 통해 부당 내부거래를 한 혐의를 적발했지만 시정명령만 내렸다.
또 혐의는 있지만 계좌추적권의 시한이 만료돼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시정명령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D사 고위급 간부가 공정위 조사담당 간부에게 향응을 제공한 시점과 관련 계열사들의 부당거래 혐의에 대한 조사 결과가 비슷한 시점에 이뤄진 점은 상호간 조사와 관련 의견 조율이 있지 않았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공정위가 성접대 정황이 있는 향응을 수수한 고위 간부에 대한 내부 징계와 부당 거래 혐의가 있는 대기업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경제검찰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무색케 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는 비위 공무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난에 대해 해명자료를 내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공무원 행동강령, 민간근무 휴직제 운영지침 개정 등과 같은 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직원들의 일반적인 부주의에 의한 복무규정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내부감찰 등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본지는 D사 고위 임원 B씨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공정위 간부 향응제공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공정위↔대기업 대전쟁 막전막후
거대자본 앞세워 공정위 칼날 무력화
지난해부터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에 대한 대기업의 이의신청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한해 접수된 신규 이의신청건수가 전년과 비교해 갑절이상 늘어났다.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비율은 절반수준으로 최근 5년간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전문가 등을 영입, 공정위의 처분에 대한 법률적 검토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정위가 최근 발간한 2007 공정거래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 처분에 대한 신규 이의신청건수는 53건에 이른다. 이월된 이의신청건수까지 합치면 70건이다.
이는 2005년 이의신청건수 34건의 갑절이상 수준이다. 연도별 이의신청건수를 보면 2001년 88건, 2002년 62건, 2003년 68건, 2004년 64건 등 지난 5년간 소폭 감소하거나 제자리를 지켰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의신청 기각률도 크게 줄었다. 2004년 80.3%의 기각률은 이듬해 64.7%로 줄어들더니 지난해 52.4%로 큰 폭의 하향세를 그렸다.
공정위 과징금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지난해부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최근 5년간 공정위 처분에 대한 평균 전부 패소률은 15.5%다.
지난해 공정위의 전부 패소률은 22.9%다. 평균보다 7.4% 높은 수치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대응은 공정위의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국감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6년간 과장금 부과와 검찰 고발 등의 처분과 관련 280건이 넘는 소송을 당했다.
또 소송 과정에서 지출한 변호사 수임료에 21억원의 예산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사 수임료 중 지난해에만 사용한 예산이 5억7400만원에 이른다.
이는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중공업,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들과의 소송이 진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정위는 전부 패소률이 높아진 이유에 대해 불공정거래행위나 경제력 집중억제위반행위, 표시·광고나 하도급 관련사건 등이 패소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로 보고 있다. 또 처분에 대한 불복비율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공정위의 과징금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기업들이 과징금에 대한 부담과 이미지 손상 등을 우려,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기업들의 달라진 대응 자세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기업들은 심결과정에서부터 소송을 염두에 두고 치밀한 자료관리와 법리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와 대기업간의 소송과정을 보더라도 대리인과 관련 전문가들을 활용, 법리·경제분석 자료를 제출해 공정위 처분을 반박하고 있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공정위는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경쟁법과 관련분야 변호사와 전문가 등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는 등 대기업들의 반격에 대비하
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의 소송이 장기간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변호사 수임료, 담당자 변경 등 예산과 인적 구성 등의 내부적인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과징금이 재정적 부담도 클 뿐만 아니라 대외적 이미지에 큰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가급적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