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보이는 SK텔레콤의 영입인사
2007-09-27 박지영
SK텔레콤이 공정거래위원회 현역 공무원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업계 불공정 행위를 조사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물리며 경우에 따라 검찰에 고발까지 하는 공정위 출신을 새식구로 영입함으로써 사내의 각종 불공정거래 혐의를 요리조리 피해보겠다는 심산이 아니냐는 것.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학용 의원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올 1월 공정위 서울총괄을 맡고 있는 김순종 과장을 영입해 전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김 과장은 ‘민간근무 휴직제도’에 따라 회사를 잠시 휴직하고 SK텔레콤에서 근무하기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근무 휴직제는 공무원이 1~2년간 휴직하고 민간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민간부문의 경영기법과 업무수행 방법을 습득해 공무수행의 질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지난 2002년에 도입됐다.
하지만 취지가 좋다고 그 결과도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업계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는 공정위 직원이 언제든지 그런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민간 기업에 나가서 근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끊이질 않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현역 검사가 형사피고인을 수사하다 잠시 휴직하고 바로 그 형사피고인의 변호사로 일한 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는 식이나 다름없다.
로비에 힘쏟은 SKT
이러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올 1월 SK텔레콤이 공정위 서울총괄의 현역 공무원인 김모 과장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업계의 시기와 부러움을 동시에 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의 통신업체들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요금을 조정할 때도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사업에 실패해 문을 닫을 때도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정부가 통신시장에 대한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고, 현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수천억원의 매출이 왔다 갔다 함은 물론, 회사의 생존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
때문에 통신업체들은 통신시장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거나 규제를 담당하는 정통부 및 공정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리 알고 손을 써야 한다. 가입자를 아무리 많이 늘려봤자 대외협력에서 무너지면 그해 사업은 ‘말짱 도로묵’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SK텔레콤의 이번 인사를 로비 창구로 적극 활용할 것이라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텔레콤이 김모 과장을 영입한 것은 보나마나 뻔하다”며 “그를 ‘바람막이’로 쓰려는 속셈”이라고 귀띔했다.
이상한 휴직제도
공정위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 이와 관련한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법무법인을 민간 근무 휴직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대기업 쪽은 여전히 무풍지대다. 공정위가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1월 이후 최근까지 민간 기업 근무를 위해 휴직한 직원은 모두 5명이다.
자료에 따르면 공정거래제도발전센터 한모(3급) 전 소장은 지난 2월 28일 퇴직해 그 다음날인 3월 1일 한국공정경쟁연합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한 전 소장과 같은 곳에서 근무했던 김모(4급)씨 또한 같은 날 퇴사해 3월 1일부로 하이트맥주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3월 1일 퇴사한 공정위 소속 조모(4급)씨는 현재 중앙대학교 부교수로 근무 중이며, 3월 22일 퇴사한 서울 건설하도급 조모(4급) 전 과장은 한솔케미칼 감사로 재직 중이다. 공정거래재도발전센터 김모(3급) 전 소장은 지난 4월 30일 퇴사해 그 다음날인 5월 1일 삼성물산 고문으로 위촉됐다.
또 휴직한 이들 공무원은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공무원 봉급의 2~5배에 달하는 보수를 받는다. 실제로 지난 2005년 1월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인 김&장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송모 과장은 상여금을 포함해 1년간 1억6000여만원을 받았다. 이는 공정위 재직시절 받았던 급여의 4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와 관련, 대통합민주신당 신학용 의원은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던 사람을 별다른 하는 일 없이 고액의 연봉을 줘가며 고용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자칫하면 한화그룹이 전 경찰청장을 고문으로 위촉했던 것과 유사한 용도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이어 “공정위는 대기업의 부당, 불공정 행위를 감독해야 하는 기관인데도 민간근무 휴직제도를 대기업에 편중되게 운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민간근뮤 휴직제의 의미를 살리려면 차라리 중소기업에서 일하게 해 하도급 비리 등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