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횡포에 벤처기업 ‘휘청’
2007-09-18 정하성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그 진실은 무엇인가’. LG그룹 계열사인 실트론이 최근 협력업체였던 퀄리플로나라테크(이하 나라테크)로부터 3,00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다.이에 앞서 지난해 9월 실크론도 계약을 어겼다며 나라테크를 상대로 129억원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차원에서 파트너 관계를 유지했던 LG실트론과 나라테크. 두 회사가 맞소송을 제기하는 등 앙숙관계로 돌아서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세계시장에서 반도체 소재를 둘러싸고 각 기업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사생결단식 싸움을 벌이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반도체 단결정 실리콘 성장장치(이하 그로워) 생산과정에서 파트너로서 지난 2000년부터 서로 협력의 길을 걸었던 LG실트론과 나라테크. 하지만 두 회사는 서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앙숙관계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소자용 제조장비 그로워를 생산하는 벤처기업인 나라테크는 최근 LG계열의 실트론를 상대로 “계약위반 및 영업비밀 침해, 부당제소 등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으므로 3,000억원을 배상해라”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또 나라테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실트론과 회사 대표이사를 형사고소 했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이에 앞서, 실트론측도 지난해 9월 “계약위반 등에 따른 배상금 129억을 지급하라”며 나라테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처럼 ‘그로워’를 둘러싸고 실트론과 나라테크가 법정까지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두 회사는 ‘그로워’개발을 두고 시각차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나라테크는 ‘독자개발 기술’이라는 주장인데 반해, 실트론은 ‘독자개발이 아닌 실트론이 기술 이전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두 회사의 악연은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실트론은 국내 장비기술력의 한계로 인해 ‘그로워’를 일본 M사로부터 전량 수입하고 있었다. 이에 실트론측과 나라테크는 ‘그로워’개발을 위해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라테크측은 “실트론의 요청으로 8인치와 12인치 반도체 소자용 ‘그로워’를 자체개발하게 됐고, 개발에 성공하자 실트론과 전략적 제휴협약서(이하 협약서)를 체결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실트론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본 M사로부터 기술 노하우를 이전받아 중소기업인 나라테크에 인·물적으로 100% 기술지원을 해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워’, 독자개발이냐 아니냐
나라테크측 주장은 이렇다. 2000년초 유상증자를 통해 자체적으로 조달한 연구자금과 축적된 기술로 8인치 반도체 소자용 그로워 국산화에 성공했고, 2002년 10월에는 세계 4번째로 12인치 반도체 소자용 그로워 개발에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나라테크는 “그로워를 개발하는 동안 실트론은 어떠한 물적, 기술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며 “나라테크가 개발한 기술이 정부로부터 신기술로 인정받을 때 이를 심사한 사람중 한 명이 실트론 직원이었으며, 신기술임을 인정하는 ‘국산화 그로워 평가 결과’라는 문건까지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실트론 관계자는 “나라테크가 신기술 선정 추천 공문을 받았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으며 마치 그로워를 자신들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며 “이는 더 큰 국제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일본 M사를 통해 실트론이 기술이전을 받고 이를 다시 나라테크에 제공한 만큼, 일본 M사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는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자개발 논란’과 함께, 양사간 체결한 ‘협약서’를 놓고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 2003년 ‘그로워’의 연구·개발에 대한 전략적 제휴협약서를 체결하면서, 안정적인 수요·공급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제3자 판매와 구매 금지조항’을 넣었다.
협약서에는 ‘나라테크는 협약기간 뿐아니라 협약해지 후에도 실트론의 동의 없이 제 3자에게 그로워를 판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테크측은 “이 협약서는 실트론이 대기업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명백하게 불평등하게 체결한 것”이라며 “여기에 실트론이 나라테크가 자체개발한 그로워 기술을 빼앗으려 협약서 내용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테크는 “이 협약서에는 국내 유일의 발주처인 실트론이 의무적으로 구매할 물량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만일 실트론이 반도체 소자용 그로워를 구입하지 않을 경우 회사는 도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실제로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것이 나라테크의 주장이다.
불평등한 협약서?
나라테크는 “실트론은 현재까지 당초 약속한 73대의 그로워 발주물량 중 겨우 15대만 발주했다. 또 13여억원에 구매를 약속했지만 11여억원에 판매할 것을 강요했다. 실트론은 과거 일본업체로부터 30억원에 납품받았으면서, 국내업체에게는 부당하게 저렴한 가격을 강요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나라테크는 100억원 가량을 개발 및 설비비로 지출했음에도 실트론이 그로워를 구매하지 않아 2005년에는 적자폭이 47억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나라테크측은 이와 같은 실트론의 행위에 대해 ‘기술 탈취’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라테크는 “실트론이 제품의 검수를 빌미로 설계도면 및 부품업체 정보를 요구했고, 때문에 어쩔수 없이 정보기술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위기에서 ‘제 3자 판매금지 대상’이 아닌 태양전지용 및 식각장비용 그로워를 판매한 것을 가지고 실트론측이 계약위반 운운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나라테크는 자금난에 빠지자, 지난 2004년과 2006년 미국 등의 회사에 태양전지용 및 식각장비용 그로워 4대를 판매했다. 이를 빌미로 실트론은 지난 2006년 협약서상 ‘제 3자판매 금지조항’를 들어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특히 실트론은 후속조치로 H사에 그로워 제작기술을 이전한 뒤, 그로워를 제작하게 하고 납품을 받고 있다.
때문에 나라테크측은 “실트론이 나라테크의 기술을 탈취해, H사에 이를 무단으로 유출시켰고, 여기에다 협약 위반이라며 129억원의 손해배상까지 제기하고 있다”며 “이같은 소송제기 등은 배상금을 지급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대출기관으로부터의 대출중단, 대출자금 회수, 계약파기 등을 노려 나라테크를 고의로 도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나라테크는 여기에 “실트론의 P사장과 H사의 C사장이 LG전자 등에서 근무를 함께 했다”며 실토론이 H사에 특혜를 주기 위해 나라테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실트론측은 나라테크측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트론은 “총 190억원에 달하는 그로워를 구매하는 등 나라테크를 전폭 지원했다”며 “하지만 나라테크가 자사의 이익을 위해 계약을 위반하며 제 3자에게 그로워를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트론 P사장과 H사 C사장이 과거 LG에서 같이 근무한 적은 있지만, 이를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로워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나라테크와 마찬가지로 협력사였던 H사에 그로워 기술을 이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LG실트론은
반도체 소자 웨이퍼 생산…시장점유율 세계 5위
실트론은 LG그룹의 계열사로 반도체 소자용 그로워를 이용해 만들어진 ‘잉곳(하나의 결정으로 이뤄진 기둥 모양의 실리콘 덩어리)’을 얇은 두께로 절단해 반도체 소자용 웨이퍼를 생산하는 회사다.
실트론의 지분율을 보면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동부그룹의 계열사인 동부제강과 동부건설이 각각 32.1%, 5.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실트론은 12인치 웨이퍼를 매달 17만장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계 5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5905억원, 순이익은 853억원이다.
한편 실트론은 웨이퍼를 반도체 소자 제조업체인 삼성전자 및 하이닉스 등에 공급하고 있다.
##퀄리플로나라테크는
‘그로워 생산’ 벤처기업
퀄리플로나라테크는 반도체 단결정 실리콘 성장장치(그로워)를 생산하는 벤처기업이다.
나라테크측은 2001년 8인치 그로워의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이어 2002년 12인치 그로워를 세계 4번째로 독자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트론측은 이에 대해 “실트론을 통해 해외의 기술을 이전받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나라테크측은 2005년 신기술(NT) 인증, 대통령표창, 세계 일류화 상품과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에 선정된 바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