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대 대형 M&A 지지부진 “왜”
2007-09-17 장익창
올해는 외환위기를 맞은 지 만 10년이 되는 해다. 개발과정에서 불거진 병적인 외형성장과 집권 정부의 안일한 대응 속에 빚어진 이 사태로 수많은 기업들이 법정관리나 화의, 청산절차를 밟았다. 이후 한동안 버티던 기업들도 격랑을 이기지 못하고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 나온 사례도 부지기수다.
IMF 10년이 지났지만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조선해양, 대우일렉트릭, 우리금융지주, 외환은행 등 초대형 M&A 건이 참여정부에서 매듭짓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주인 없는 상태가 장기화될수록 해당 기업들과 국가 경제에는 크나 큰 손실임엔 틀림없다. 이들 M&A건이 향후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현 정권이 정치적 계산아래 이를 차기정권으로까지 떠넘기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이후 올 들어 우리나라 초대형 M&A는 단 한건도 성사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금융 뿐 아니라 정치나 재계에 모두 민감한 사안이라 정부 역시 쉽사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들 M&A는 집권말기인 이번 정권에서 줄줄이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과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로비 사건으로 인해 재정경제부 공직자들이 연루돼 법원에 계류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외 초대형 M&A매물 건 역시 현 정부의 골치 덩어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초대형 물건들이 M&A 시장에 나올 때는 매각시기를 분산시켜야 경영내용 확인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현대건설 1년 4개월째 지지부진
몇 해 전까지 우리나라 최대의 건설사였던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을 졸업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대우건설의 M&A성사 직후 현대건설의 M&A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아직까지도 향후 일정이 표류하고 있다. 매각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구 사주 문제와 관련한 채권단의 의견 취합 등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등 일부 채권단이 구사주의 부실 책임 문제 선해결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매각 주관사 선정 등 매각 논의가 중단된 채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예금보험공사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지만 최종 판결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또한 최근 증시 활황으로 이달 현재 시가총액만 10조원에 달하고 있어 지난해 사상최대의 인수가격이 제시된 대우건설 보다 훨씬 고가에서 인수가격이 형성될 것이라는 점도 인수희망기업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M&A 6년째 표류
대우조선해양은 20001년 8월 워크아웃을 졸업한지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주인을 못 찾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전형적인 정치에 의한 희생양으로 평가받고 있는 기업이다.
우량한 경영실적을 보유한 기업임에도 DJ정부시절 정치적 논리와 부실덩어리였던 대우그룹의 공중분해 이후 워크아웃이란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대우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종합기계로 쪼개지는 아픔을 겪었고 일부분이었던 대우종대우종합기계는 2004년 말 두산그룹에 인수돼 두산인프라코어로 사명이 바뀌었다.
단,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일정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펴고 있어 올 4/4분기에는 구체적인 매각플랜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거론되는 인수 후보로는 POSCO, GS그룹, 두산그룹 등이며, 현대중공업의 참여 여부도 초미의 관심거리다. 누가 인수하던 대우조선해양의 인수는 재계의 판도를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 국가 전략 차원에서 M&A 이뤄져야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함께 우리나라 주력 수출산업의 하나인 반도체 분야를 이끌고 있는 양대 산맥이다. 반도체는 IT산업 전 업종에 감초 역할을 하고 있으며 조선, 자동차, 철강 등과 함께 국가 성장엔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반드시 국내 자본에 의해 인수한다는 여론이 압도하고 있다.
이달 들어 9개 하이닉스 공동관리협의회(채권단)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지난 4일 대형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를 지분 매각을 위한 금융 자문사로 선정해 일보 진전이 이뤄졌다.
외환은행은 “올해 말까지 자문사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경영 진단을 마치고 세부적인 지분 매각 시기는 경영 진단 결과를 토대로 협의회에서 최종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이닉스반도체의 지분 매각이 실제로 성사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하이닉스는 시가총액만 이달 현재 14조원에 달하고 있고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우리나라에서 이를 한꺼번에 선뜻 인수할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대한통운, 매각 주관회사 선정
법정관리 중에 있는 대한통운 매각의 경우 최근 법원이 매각 작업을 허가함에 따라 매각 주관회사 선정 작업에 착수하는 등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통운은 그간 M&A에 있어 채권단 보다는 장기간 법원의 관리를 받아오고 있었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STX그룹, CJ그룹 등이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공개적인 대한통운 인수 의지를 표출하는 곳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의 거듭된 대한통운 인수 표명에 대해서 재계는 DJ정권 이후 온갖 특혜 의혹 속에서 성장해 온 그룹이 어쩌면 대한통운 인수가 대형 기업 인수의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한편, 최근 채권단이 대한통운의 매각 방식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자금력 면에서 우위에 선 제3의 후보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올 초 새 주인을 찾은 국제상사도 법원이 당시 절대 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이랜드그룹을 배제하고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력이 우월한 E1으로 넘어간 바 있다.
외환은행, 우리금융도 첩첩산중
외환은행을 5조9400억원에 인수키로 한 HSBC는 10일부터 정밀실사에 착수, 본격적인 인수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재 외환은행에 대한 HSBC측의 실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이 “법적인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법원 판결전 승인 불가 입장을 표명하고 있고 법원 판결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법정 공방이 장기화할 경우 내년 4월까지 시한을 못 지킬 가능성도 있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금융도 내년 3월말로 예정된 민영화 일정을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행 금산분리법상 국내 자본의 우리금융 인수는 불가능하며 외자의 경우 정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예금보험공사의 지분 5% 매각으로 23%로 줄어든 소수지분은 내년 3월말까지 매각할 수 있겠지만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지배지분(50%+1주)의 매각을 위해서는 매각 시한의 재연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초대형 M&A 참여정부에서 손 털고 가야
최근의 외환은행 사태에서 보았듯이 부실 대 기업들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투자자들은 분명 사모펀드로 헐값에 인수해 여러 가지 구조조정이나 지배구조에 대한 파격적 개선책을 통해 침몰하는 `부실 기업`을 살려 놓은 후 다시 웃돈을 붙여가며 시장에 되팔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이들에 대한 M&A를 주저하는 이면에는 초대형 기업들이 국제 투기 시장에 기업 매물로 상장한다는 것 자체가 껄끄럽고 자칫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머뭇거릴 수 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부 소유의 국책은행이 관여하고 있거나 법정 공방의 영향을 받는 매각 건들은 여
론이나 정치권의 입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편으로 초대형 M&A 건이 차기 정권 출범 이후인 내년으로 넘어가면서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주인 없는 회사로 운영될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고 대기업의 M&A 지연으로 국가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만일 초대형 물건들이 차기 정권의 의지에 따라 M&A방향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인수 희망기업들에게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2의 IMF 올 수도 있다
IMF사태가 발생한지 10년째를 맞고 있다.
장기간 군사 정권 집권시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고속성장을 구가해 왔다. 이러한 외형적인 경제성장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무역대국, OECD 가입국,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는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각광받았고 제3세계의 발전 모델로 연구되기까지 했다.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등 고질적인 우리 경제의 병폐가 있어 왔으며 그 후유증은 지난 1997년이 되서 급격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권 집권말기인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 대외신인도 추락이 발발했다. 이후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과 변동성의 급등 및 외환보유고의 급감 형태가 표출됐다. 급기야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 부도유예협약, 화의, 법정관리, 계속되는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 한은 외환보유고의 고
갈 등 일련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당시 정부는 1997년 11월 21일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요청하기에 이르고 1997년 12월 3일, IMF 구제금융 합의 이후 공황에 의한 경기후퇴가 더욱 심화됐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만 나섰더라도 IMF로부터의 구제금융은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 외환 위기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정부의 감독 소홀, 경제 정책의 실종, 정재계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 기업의 과다차입과 과잉투자 등으로 인한 금융기관이 부실화를 꼽고 있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교역조건의 악화, 동남아외환위기의 전염효과 및 과대평가된 환율과 과도한 경상수지 적자를 꼽고 있다.
전문가들은 언제라도 제2의 IMF외환위기가 올 수 있기에 항시 긴장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