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6조 비용 고민 중?
2007-09-11 현유섭
삼성물산의 주가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실적 호조라는 호재가 있지만 내면에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심리가 강하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게다가 최근 삼성은행이 추진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시되는 등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재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에 필요한 자금 마련과 2세 상속을 위한 준비과정이 덜 됐다는 의견까지 갖가지 분석이 난무하고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와 속사정을 짚어본다.
지난해 말부터 삼성물산에 대해 증권사들이 같은 투자의견 분석 자료를 내놓고 있다. ‘사자’이다.
해외시장 수주율 증가와 실적 호조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올 하반기 들어 삼성물산에 대한 분석자료 내용 중 절반이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의견이다.
일부 자산운용사는 지분 비율을 높이는 등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고 있다. 경제 전문가도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증권사와 다르지 않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삼성생명 상장에 따라 현행 법률을 고려,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법과 현재의 소유구조를 유지하면서 지주회사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방법이다.
증권가 공통된 예상 시나리오
그러나 삼성그룹이 현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기에는 어려움 점이 많다. 삼성은 다른 그룹과 달리 금융계열회사가 주요 비금융계열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등 순환출자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지주회사를 금융지주회사와 일반지주회사로 구분토록 명시하고 있다.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증권사들이 삼성물산 등 삼성 주요 계열사의 투자 의견을 통해 공통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올 6월 이후 발표된 증권사들의 투자의견서에 따르면 금융 산업 구조개편을 위한 법률(이하 금산법) 개정안 통과에 따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개편되면 삼성물산의 위상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장이 예정된 삼성생명은 금산법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중 5% 초과분인 2.26%를 매각해야 한다. 자금능력 등을 고려하면 에버랜드 또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초과지분을 매입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배구조를 쉽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은 생명사를 중심으로 한 금융부문 지배구조 개편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비금융부문은 장애물이 많다.
삼성에버랜드는 그룹 내 금융회사들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지분을 19%이상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자회사 지분 요건이 20%로 낮아지는 등 삼성생명이 상장하더라도 추가로 매입할 지분이 1% 미만이다. 금융부문 지배구조 개편은 현재의 지배구조에서 큰 부담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삼성 비금융부문 산 넘어 산
그러나 비금융부분은 자금난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삼성생명 상장이 삼성그룹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할 자금 마련이 핵심이라고 짚었다. 이건희 회장이 비금융회사들의 지배구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삼성생명이 매각하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에버랜드가 비금융부문 지주회사가 되면 삼성생명 보유 주식이 에버랜드 또는 이건희 회장에게 넘어와야 한다. 지주회사를 설립하지 않으면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회사들이 이들 회사의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서는 현재 주가를 감안하면 6조5000억원 이상의 돈이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의 비금융부분 지주회사 전환은 이 회장 등이 삼성전자 등에 대한 현재의 지배권을 유지하고 싶다면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비금융회사 지분 주식을 살 수 있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다른 어려움은 없나?
이에 따라 보고서는 막대한 자금을 확보해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한 삼성은 현행의 소유구조 틀을 유지하면서 일부의 주식이동만으로 지주회사 적용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예상되는 삼성의 지배구조 시나리오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문제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약화다. 삼성은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주식 일부를 팔고 매각대금을 삼성전자 또는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는 삼성생명의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자회사인 삼성생명의 장부가액을 낮춰 지주회사 조건을 피할 수 있고 매각대금으로 비금융부문 회사들의 지분을 추가로 취득,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에버랜드가 매각하는 지분만큼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또 이 시나리오로 개편된다면 이 회장과 계열사들이 분할에 매수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이때 주식의 전체 또는 일부를 매입할 수 있는 회사는 그룹 내 비상장 회사가 가능성이 크다. 삼성 SDS가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경제계 일부의 의견이다.
삼성SDS는 이재용 전무 등이 18%의 지분을 갖고 있고 지난해 말 현재 5000억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주식 매입을 위한 자금이 1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옛 삼성자동차 부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 회장은 지난 1999년 삼성자동차의 부채를 변제할 목적으로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지급했다. 또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채권단에게 부채분담 약속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 상장이 미뤄지면서 채권단은 2005년 그룹 계열사들을 상대로 원금과 이자를 합한 4조7000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은 채권단의 불어나는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생명 상장과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서둘러야 할 형편인 셈이다.
삼성의 차후 선택은?
좋은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삼성의 소유구조 문제는 지배주주들이 적은 자본으로 큰 규모의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려는데 있다고 진단했다.
이 회장과 가족 등 지배주주들이 그룹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에버랜드, 삼성SDS 등이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또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상장 회사들의 상장과 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매각과 개발 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충분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금산법 등에 대한 개정 시도도 점쳐 볼 수 있는 예상이다.
이에 대해 삼성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 예상에 대해 이렇다 할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회사의 지배구조를 개편한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그룹차원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은 신성장 동력사업이다” 며 “경제계 일부에서 나오는 지주회사 설립 등은 자금적인 부분에서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10조 순이익 내는 삼성그룹에서 없는 것
‘삼성은행’설립되나?
최근 일부 언론은 대기업이 은행을 가질 수 없게 한 금산분리 원칙이 논란이 돼 온 배경에 삼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내용에 따르면 삼성이 금산분리 원칙을 폐지하거나 완화를 추진했다는 것이다.
또 보도 근거로 삼성 전략기획실 직속의 삼성금융연구소가 지난 2005년 5월 작성하고 금융부문 최고위 기구인 금융사장단 회의가 내부지침으로 채택한 문건을 들었다.
보도된 문건에는 2005년 하반기에 금산분리 과제가 본격 거론되도록 하고 올해 은행 업무의 일부를 확보한 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에 나서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보도는 바로 정치권으로 번졌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언론 보도 직후 보도 자료를 내고 소문으로 나돌던 삼성은행 로드맵이 확인됐다며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고 있는 대선 후보들과의 관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자료를 통해 참여정부의 정책에 줄곧 반대의 입장을 보여 왔던 한나라당도 금산분리 완화, 출총제 폐지,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과 관련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동일한 입장을 보여 왔다고 밝혔다.
또 참여정부의 고위관료들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들이 삼성의 입김과 로비와의 관련성을 두고 의문을 제기했다. 심 의원은 참여정부의 금산분리 완화과정과 생보사 상장 허용,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 등 일련의 정책 변화가 삼성은행 탄생을 위한 조직적 계획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외환위기 당시 모든 국내 그룹이 은행을 갖고 싶어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삼성의 현재 모습을 볼 때 은행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매년 10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그룹에서 은행이 필요한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며 “금산분리 원칙 폐지 추진 의혹은 전혀 사실 무근이
며 현재 추진되는 부분도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