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벗는 역대 퍼스트레이디 경제생활 (上)

2007-08-14     백은영 
복부인부터 내조형, 운동가까지 천태만상

프렌체스카, 공덕귀, 육영수, 홍 기, 이순자, 김옥숙. 이들은 우리나라의 가장 깊숙한 안방 살림을 책임졌던 대통령 영부인들의 이름이다. 항상 국민들의 관심대상이지만 그만큼 알려져 있는 사실 또한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작게는 청와대, 크게는 나라의 가정 살림을 걱정하며 작지만 큰 가정 경제에 대해 노력했다. 하지만 퍼스트레이디들의 경제활동에도 특징은 있다. 조용한 내조형이 있는가하면 활발한 운동가, 재태크, 귀재형 등 다양하다. ‘연희동 빨간 바지 복부인’, ‘매일 가계부 쓰는 영부인’, ‘베개 속 영향력’ 등 이들을 부르는 애칭 또한 다양하다. 어떤 영부인이 어떤 경제개념을 가지고 있었을까. 기자생활을 거쳐 청와대비서관을 역임한 조은희 한양대 겸임교수가 펴낸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통해 ‘장롱 속 경제생활’을 들춰보았다.


‘매일 가계부 쓰는 영부인’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이다. 프란체스카는 절약정신이 투철했다.

이 전대통령과 함께 살던 이화장 전시장에 가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와이에서 쓰던 식탁과 옷장, 50~60년이 넘은 냄비와 밥그릇, 20년 된 빨래판, 기워 입은 속옷, 40년 입은 한복 등이다.

특히 40년 입은 결혼 예복을 며느리인 조혜자씨에게 물려주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고 북한 동포들을 구하려면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졌다.


공덕귀 여사 부엌일에 세재 안 써

물과 전기, 세제를 아끼기 위해 손빨래를 했고 난방시설을 수리하는 대신 늘 담요를 덮고 살았고 추우면 ‘72도 작전’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사람의 체온이 36도, 서로 껴안으면 72도라는 것.

‘자주적 사회운동가’는 우리나라 2대 대통령인 윤보선 부인인 공덕귀 여사를 칭하는 말이다.

공 여사는 결혼 전 선교사의 길을 걷기 위해 프린스턴 대학 신학부에서 유학을 준비하는 등 여성운동가의 길을 걷기 원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된 공 여사는 주부 역할은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가족 예배를 인도하거나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등의 역할을 즐겼다. 공 여사는 집안 살림은 시어머니나 며느리에게 거의 맡기다시피 했다.

또한 성격이 단순하고 대장부기질이 있어 자신이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편이었다. 식단이나 식탁을 장식하는 꽃의 종류나 수까지 윤 전 대통령이 정하는 대로 따랐다.

또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아 79년 당시, 합성 세제의 수질오염 문제를 걱정해 부엌에서 절대로 세제를 쓰지 못하게 했으며 식탁에 앉기만 하면 소말리아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공 여사는 집안의 살림살이보다 환경문제나 국제사회 등의 사회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 공 여사는 임종직전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다.”,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며 자아실현의 길을 걷지 못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했다.

‘개 팔고, 죽 끓였던 대한민국의 국모’ 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를 칭하는 말이다.

그녀는 만석꾼의 딸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과 결혼 당시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렸다. 어머니 이경령과 동수 육예수까지 함께 살았기에 더욱 어려웠다. 육 여사는 친정에서 살던 부유함은 잊고 쌀이 떨어지면 옷을 팔아 죽을 끓여 생계를 유지했고, 집에서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으면 강아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홍 기 여사 직접 김치 담고 다림질

또한 영부인시절 공식행사에서 안감으로 쓰던 나일론 천을 한복으로 만들어 입어 비서관들을 놀라게 했던 일화도 있었다.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첫날부터 굶는 동포가 있는 한 번영은 바랄 수 없다며 밥을 짓는 쌀에서 한 줌씩을 따로 모아 절약하는 습관을 실천하기도 했다.

‘펌프질 했던 보통 주부’ 최규하 대통령의 부인인 홍 기 여사를 두고 칭하는 말이다. 홍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이전과 다른 생활을 하지 않았다.

김치는 손수 담궜으며 식사준비와 빨래, 다림질도 직접 해결했다. 특히 세탁의 경우 다른 사람들을 쓰지 않음은 물론 세탁기를 쓰지 않고 직접 손세탁했다.

50년이 넘은 일제 선풍기, 구식 에어컨, 고무신과 슬리퍼, 30년이 넘은 라디오 등 골동품 같은 생활용품을 사용했다. 부엌에는 남편이 외교관 시절 사용했던
유리잔들이 그대로 있으며 샘물가에는 손빨래를 하기 위한 물 펌프도 설치했다.

또한 가계부도 직접 썼는데 표지에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06, 국무총리 공관, 국무총리 부인 홍기 일기장이라고 남겼다.


#역대 대통령 9명, 퍼스트레이디도 9명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59년 동안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까지 9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따라서 퍼스트레이디도 9명이다.
이 책은 현직인 권양순 여사를 제외한 8명의 영부인들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형식으로 다뤘다.

어떻게 남편과 결혼했으며 결혼생활은 어떠했는지, 이들이 가졌던 자식과 남편, 조국에 대한 열정과 고뇌는 무엇이었는지, 이들이 대통령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 우리 역사에 기여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등이다. 그들의 인간적 측면과 활동 및 공과 등에 대해 자세히 다룬 재미와 깊이를 모두 갖춘 책이다.

저자 조은희(46·행정학 박사·한양대 겸임교수)는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 서울대 대학원(석사), 미국 아메리칸 대학 고위선거캠페인 과정을 수료했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청와대에서 행사기획비서관, 문화관광 비서관을 지냈으며 여성저널인 우먼타임스의 편집국장, 국가이미지위원회 실무위원, 국무총리 정책자문위원, 감사원장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20 여 년간의 언론인 생활과 청와대 비서관의 경험을 통해 역대 영부인들을 다양한 경로로 직접 만나거나 취재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