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기다린 숙원사업 곳곳에 지뢰밭
2007-07-03 장익창
지난해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대우건설의 인수와 아시아나항공의 인천~파리 노선 취항을 이뤄내겠다고 선포했다. 지난 1월 우리나라와 프랑스 정부는 아시아나항공의 10년간 숙원이던 파리노선 운항을 2008년 3월부터 인가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도 파리노선은 종지부가 찍어지지 않고 있다. 국회가 국내법 저촉 여부를 놓고 심의중이며 필요시 법개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국회가 위법이라고 판단한다면 양국 정부
의 이번 결정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지난 1월 25일 건설교통부와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은 정부과천 청사에서 회담을 갖고 아시아나가 인천~파리 노선에 2008년 3월부터 주 3회, 2010년 3월부터는 주 1회를 추가해 모두 주 4회 운항하는 데 합의했다.
쌍무적 항공협정에 따라 에어프랑스와 27개 유럽연합(EU)회원국 항공사 중 1개가 서울~파리 노선에 추가돼 파리 노선에 투입돼 운항하는데도 합의했다.
말 많은 파리 노선 들끓는 잡음
대한항공은 1973년 이후 우리나라 항공사로는 유일하게 파리노선에 대한 독점운항권을 가져왔다.
2005년 한·불 수송승객 수는 32만5000명, 지난해 37만8000명으로 매년 10% 이상 성장하며 연 좌석 점유율도 81.4%에 달하는 등 성수기에는 표 구하기도 힘든 황금노선이다.
박삼구 회장은 파리 노선 취항이 결정 난 당시 “올 7월부터 파리 노선 취항을 목표로 만반의 준비를 해왔는데 또 1년이나 기다려야 하느냐”며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지난 한·불항공회담 결과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97년부터 5차례에 걸친 한ㆍ불항공회담에서 이 노선의 양국 정부의 복수항공사 운항 쟁점은 수송승객 40만명이었다.
그간 추세로 볼 때 올 연말이면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양국 정부는 정식 발효 1년 후인 2008년으로 미루면서 지난 1월 서둘러 결정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열렸던 한·독 항공회담과 한·핀란드 회담에서는 국내법과 상충하는 문제 때문에 유럽연합 지정항공사 조항(EU Community Clause)을 수용하지 않았다. 불과 2달 만인 한·불 회담에서는 외교통상부가 동의함에 따라 건교부는 이 조항을 전격 수용했다.
‘EU 클로즈’는 EU를 하나의 국가로 간주해 협상 당사국 이외에 26개 회원국의 항공사도 국적 항공사로 지정할 수 있는 제도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주요국들이 자국 항공법에 따라 이 조항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EU 클로즈의 국내법 위반 소지는 다음과 같다. 항공법 제150조 4항에서는 ‘주식 과반수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이 외국인 운송업자가 국적을 가지는 국가 또는 국민에게 속하지 아니하게 된 때 건설교통부 장관은 이 운송사업자의 운항허가를 취소하거나 사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협정 당사국의 국적 항공사가 아니면 해당 노선에 취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건교부와 외통부는 지난 한·불 항공회담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법 절차 개정을 거친 후 협정이 발효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EU 클로즈의 조기수용으로 유럽 모든 국가들에 인천공항 취항 길을 열어주게 돼 연 2000억원대의 시장잠식으로 국부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까지 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빚어지는 논란에 대해서 아무런 입장도 없고 양국 정부에서 내려진 결정이니 만큼 노선 운항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는 건설교통위원회를 중심으로 한·불 항공회담 결과에 대해 항공법 위반 여부를 놓고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구성해 3일까지 계속되는 임시국회에서 심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결론은 나지 않아 9월 정기국회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행정부가 입법기관 무시해도 되나”
건교위 의원들의 입장은 이러하다. 항공협정과 항공법규의 상충 문제가 엄연히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 정부가 프랑스 정부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은 ‘선 행정·후 입법’이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절차라고 밝히고 있다.
윤두환 한나라당 의원실은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 비준이란 절차가 있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으나 항공협정은 국내법보다 하위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실은 “이번 임시국회가 열리기 직전에야 건교부 항공기획관 실에서 입장을 정리한 채 찾아와 상황을 고려해 달라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말 바꾸는 건교부ㆍ외통부
지난 2월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대정부 질의에서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은 이용섭 건교부 장관을 상대로 항공협정과 국내 항공법과의 상충과 관련 절차상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당시 이 장관은 변변한 답변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건교부와 외통부는 국회 심의중임에도 한·불항공회담 결정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건교부 국제항공팀 관계자는 “항공법 제 150조 4항의 ‘건설교통부 장관은 운항허가를 취소하거나 사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는 명시는 장관 재량사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향후 이와 비슷한 사례로 논란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외교통상부 경제안보과 관계자는 “공급확대로 국민편익증대라는 점에서 이해가 필요하다”며 “기간을 1년 뒤로 한 것은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재경 의원실은 “정부가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면 왜 국회에 심의를 의뢰했느냐”며 “일관성 없는 정책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