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문재인 정부 여론조사 특정 기업 ‘몰아주기 정황’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정부에게 여론조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겉으로는 ‘여론조사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내심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촛불세력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이기에 민심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촛불민심을 대표할 수 있는 게 그나마 여론조사다. 그런데 최근 심채절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비인가 행정정보를 취득한 자료 중 청와대 지시로 실시되는 여론조사업체 관련 내용이 담긴 문건이 유출됐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집권 여당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거론된 다수의 여론조사업체가 친정부적인 회사로 문 정부에게 유리한 민심만 듣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와 여론조사에 대해 알아봤다.
- W·T·K 여론조사기관 친정부 성향 업체로 ‘유명’
- 심재철 비인가 정보 800만건중 여론조사업체명과 비용도?
문재인 정부가 대국민여론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대표적인 것이 탈원전을 논의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대학입시제도를 결정할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다. 국가 중대사를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결정하는 게 아닌 전문가와 시민단체 외부 인사들에게 맡기고 국민여론으로 몰아가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청와대의 직접정치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 운영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어떤 청원이든 한 달 동안 20만 명의 국민들이 한 청원 안에 찬성 내지 동감을 표할 경우 정부는 공식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수많은 청원안이 하루에도 수백개씩 올라오지만 실제로 공식답변과 정책으로 연결되는 것은 극소수다.
여론조사에 ‘울고 웃는’
집권 여당과 청와대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이해 2017년 8월 17일 개설된 이후 1년간 26만4461건(17일 오전 9시 기준)의 청원이 올라왔다. 하루 평균 724건의 국민 청원이 제기된 셈이다. 청와대는 46개의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최다 인원이 참여한 ‘난민 신청 허가 폐지 및 개헌(71만4875명)’ 요구에 ‘난민 신청자의 신원 검증 강화, 박해사유 및 강력범죄 여부 엄정 심사, 난민브로커 처벌 조항 명문화’ 등을 약속한 답변이 그나마 유의미한 청원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개선점이 많다.
이뿐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대국민 지지율 역시 청와대가 여론조사를 반기는 대목이다. 집권 초부터 60%대를 웃돌다가 1차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70%선까지 넘으면서 허니문을 보냈다. 지방선거 전 잠시 최저임금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돌아서고 청년실업에 부동산 급등으로 지지율이 50%대까지 떨어졌지만 3차 평양정상회담이후 다시 60%대 중반으로 회복하면서 여전히 고공 행진 중이다.
통상 청와대에서 대통령 지지율과 각종 정책과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부서는 크게 정무수석실, 홍보기획.국정홍보 비서관이 있는 국민소통수석실 그리고 시민사회수석실이다.
또한 국내외 여론조사 업계 순위 10위 안에 있는 기관을 선정해 여론조사를 돌린다 게 전 청와대 근무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청와대가 주관하는 만큼 여론조사 기관명이나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 인사들의 공천을 위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청와대 특활비와 국정원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이모씨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음모씨가 함께 총선전 설립한 아젠더 센터가 담당했다. 박 전 대통령은 여론조사를 통해 친박 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친박 후보들의 지지도 현황을 파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를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재인 정부를 ‘포퓰리즘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에서는 청와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청와대가 수용하는 모습을 내비쳤지만 시간이 적잖이 소용될 전망이다. 일단 청와대는 야당의 요구에 따라 지난 9월3일 국회 운영위에 2017년 8개월간 소요된 여론조사 비용 17억9000만 원을 밝혔다. 또한 여론조사를 약 100~150회 정도 실시했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여론조사기관에서 어떤 내용으로 실시됐는지는 비밀로 했다. 이에 재차 야당에서는 여론조사 기관에 대해 공개를 요구했고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그런 방안을 내부에서 고민하고 가급적이면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마지못해 답했다.
하지만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여론조사 기관을 공개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며 “앞으로 방법을 찾아보기는 하되 뭉뚱그려서 몇 회 정도 이런 것은 할 수 있어도 어느 여론조사 회사에서 몇 회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은 활동에 너무 제약이 많다”고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기재부 차관, ‘여론조사 업체
공개’가 대통령 신변 치명적?
야당이 청와대 여론조사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9월5일부터 심재철 의원은 기재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에 접속해 비인가 행정 정보를 800만 건 이상 빼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기재부는 48만 건이라고 발표했다가 수정해 ‘100만건+알파’라고 밝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심 의원실에서는 대통령 비서실 등 특정기관의 정보는 거의 모두 다운로드 한 상태였기에 남북정상회담 식자재 업체 등 유출이 가능했던 이유가 밝혀지기도 했다.
이에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기재부가 심 의원을 검찰에 고발하기 이틀 전인 9월15일 심 의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심 의원이 공개한 문자를 보면 김 차관은 “‘법적 책임을 사정기관에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문자를 보내면서 그 배경으로 “특히 대통령행사 정보나 보안상 특별 보안관리중인 식자재업체, 시설관리업체, 여론조사업체 등 정보가 공개될 경우 대통령 신변 안전 및 경호 등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관련 업체는 모두 바꿔야 하는 등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여론조사 업체도 심 의원이 취득한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집권여당 측에서는 경제 분야 심재철 의원의 대정부질문장에서 여론조사 기관명이 실명으로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10월2일 진행된 대정부 질문장에서 심 의원은 이와 관련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에 정통한 한 인사는 “청와대와 민주당과 친분이 깊은 여론조사기관으로 W사, K사, T사, I사 정도는 파악되고 있다”며 “심 의원이 갖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깔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W사의 경우 청와대가 지시해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업체로 업계에 알려져 있는데 지난 대선이 끝나고 바로 어젠더 센터를 인수합병해 자칫 업체 실명을 밝힐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친박계 인사들까지 엮일 수 있어 공개하는 데 찬반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특히 W사의 이모 대표의 경우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과 서울대 동기로 매우 친분이 깊은 사이인 데다 지난 대선 당시 부사장 박모씨와 문재인 캠프에서 전병헌 전 정무수석과 함께 전략단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어 친정부 여론조사 업체로 알려졌다.
T사 박모 대표 역시 민주당 정기 여론조사를 담당하고 있어 친여 성향으로 분류되는 업체다. 반면 K사의 경우 과거 김모 대표가 3철 중의 한 명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친분이 깊어 대리인으로 여당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발 여론조사를 비공개로 실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W사와 T사의 매출이 급성장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비공개로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친여 성향이나 친정부 성향의 여론조사기간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것을 숨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청와대 발 여론조사가 친정부·친여 성향의 기관에 몰려 있다면 자칫 여론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청와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대국민여론조사에 대한 인식 역시 도마위에 올랐다. 유은혜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 임명에 대해 야당에서 대통령의 임명철회를 요구했지만 강행하면서 국민 여론에 대한 판단기준이 논란이 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는 10월2일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자 “교육부총리는 가급적 하자가 없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면서 “정권이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 채 오만과 독선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정례브리핑 자리에서 야당이 ‘국민’운운하며 비판을 가한 것에 대해 ‘불쾌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대변인은 ‘국민은 국회가 대변한다고 하는데 국회가 안 본다면 어디서 본다고 청와대가 판단하시느냐’는 기자 질문에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일반론적으로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절차에서 야당이 반대한다고 그게 일반 국민의 여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재차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하면 청와대 국민 눈높이 판단 근거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느냐’는 묻자 김 대변인은 “국회에서 반대하는 여론이 야당을 중심으로 있지만 그게 절대 다수인가. 거기에 대해서 의문이 있는 거다. 그리고 절대다수라고 하는 과반이라고 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게 (야당이 말하는) 국민의 여론이라고 다수의 여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의겸 대변인, “야당 국민
운운은 다수의 여론 아냐”
청와대가 국민을 앞세워 국회를 공격하고 나설 경우 자칫하면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반의회주의로 흐를 공산이 높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사고라는 게 야당의 지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주된 요인이 야당과 자신을 반대하는 시민들을 적으로 여기면서 비극의 씨앗이 시작됐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현 청와대 인사들이다.
이에 대해 야당의 한 인사는 “결국 청와대가 자신들이 보고 싶은 여론만 여론이고 야당이 보는 국민 여론은 여론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협치에 대해 국민 여론이 높은 상황인데도 청와대가 조사하는 여론은 그렇지 않나 보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 의원이 만약 여론조사 기관명과 조사 내용을 갖고 있다면 공개하는 게 낫다는 게 한국당내 시각이다.
또 다른 한국당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재판 중이고 더 이상 망가질 게 없고 친박 의원들 역시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제1 야당으로서 청와대가 잘못된 국민여론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공개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