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의 북한 진출 야망 전주곡
2007-05-23 박지영
롯데그룹이 여행업 진출을 선언함에 따라 국내 여행사들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뜻하지 않았던 대기업의 반격에 국내 여행사들은 밤낮으로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대응방안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다. 특히 ‘롯데’라는 브랜드를 사용해 온 롯데관광개발은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자칫 ‘남매간 밥그릇 싸움’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에 대해 알아봤다.
롯데그룹이 여행업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국내 여행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자금력과 인지도면에서 월등한 롯데가 해외 유명 업체를 등에 업고 여행업계에 뛰어들 경우 그에 따른 시장 변화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온라인유통업체인 롯데닷컴은 최근 일본 여행사인 JTB와 ‘롯데제이티비(주)’를 설립, 오는 7월부터 여행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JTB는 연 매출액 1조3,000억엔 규모의 일본 최대 여행사로, 유럽·미주·아시아 등 전 세계 31개국에 80개의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여행 전문기업이다.
남매간 ‘여행업’ 놓고 격돌
‘롯데제이티비’를 설립함으로써 JTB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게 된 롯데그룹의 등장에 국내 여행사들은 달갑지 않은 눈치다.
사실 롯데그룹은 롯데닷컴을 통해 2001년부터 여행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전체 매출의 5%에도 못 미쳐 기존 여행업체들에‘무시’를 당해왔었다.
그러나 그룹 자본금을 적극 활용, 세계적 여행사와 손을 잡음으로써 그동안의 설움을 씻을 수 있게 된 것.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롯데제이티비가 여행업의 노하우를 갖추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롯데그룹이 연매출 10조원이 넘는 JTB와 손잡았다는 점에 대해선 장기적인 위협세력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로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인 곳은 롯데관광개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씨의 남편이 대표이사로 있는 롯데관광개발은 예고치 못한 처남의 반격에 ‘얼’이 빠진 모습이다.
1971년 설립 때부터 줄곧 ‘롯데’라는 브랜드를 써온 롯데관광은 ‘롯데제이티비’의 출현으로 난처하게 됐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 ‘롯데제이티비’의 여행업 진출로 인해 두 개의 ‘롯데’ 브랜드가 나란히 여행업 시장에서 세력을 다투게 된 것.
뿐만 아니라 롯데관광은 브랜드 공유로 인해 영업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동안 롯데그룹은 호텔 및 유통 부문을 맡았고 롯데관광은 여행업을 분담했는데 롯데그룹이 면세점에 이어 여행업까지 욕심을 냄에 따라 롯데관광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측은 “꾸준히 롯데닷컴을 통해 관광사업을 해오는 등 그동안 롯데그룹이 여행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며 “롯데관광이 그룹 계열사도 아닌데 롯데라는 상호를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라는 브랜드 회수와 관련, 그룹 관계자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선 큰 방향이 잡혀 있진 않다”면서도 “기본적으로 롯데라는 브랜드가 그룹측에 있는 만큼 언젠간 그룹차원에서 ‘롯데’라는 브랜드를 회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한편,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을 두고 전혀 다른 시각이 대두돼 이목이 집중된다. 여동생과의 ‘한판대결’을 위해 굳이 세계적 여행사인 JTB와 손을 잡았겠냐는 것. 즉, 개성관광이나 백두산 관광 같은 대북 여행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이와 관련, 한 재계 관계자는 “여행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후 롯데그룹이 기존 여행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임원급 인사들을 대거 스카웃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신격호 회장이 죽기 전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대북사업을 정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이러한 대북사업 진출 논란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걸음마도 못하는 아이한테 뛰어가라고 하는 격”이라며 “신격호 회장은 북측에 어떠한 관심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못 박았다.
#롯데, 혈육보다 사업 우선
농심과 롯데관광개발 등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던 기업들이 신동빈 부회장의 영향력 확대로 움찔하고 있다. 신 부회장이 중국사업, 여행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사촌간인 이들 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 부회장은 롯데중국 투자사인 유한공사 출범식에 직접 참석하는 등 중국 식음료 사업에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또 세계적 제과 브랜드인 허쉬, 프리토레이 등과 사업 제휴를 성사시킴으로써 제과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자신이 진두지휘하던 롯데닷컴을 통해 여행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하지만 신동빈 부회장이 ‘야심차게’ 시작한 이들 사업은 혈육으로 얽힌 농심·롯데관광 측과의 충돌을 야기한다.
신격호(롯데그룹 회장)-춘호(농심 회장) 형제는 그동안 롯데제과가 껌과 아이스크림을 농심이 라면과 스낵 부분을 맡는 등 가급적 생산품목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왔었다. 하지만 신동빈 부회장이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는 이전 같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 부회장의 고모부 부부가 대주주로 있는 롯데관광도 상황은 마찬가지. 설립 초기부터 신동빈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그룹 경영권 승계의 교두보로 삼았던 롯데닷컴이 일본의 최대 여행사인 JTB와 합작해 롯데제이티비를 설립하면서 직·간접적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