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측근 “차라리 손학규 돕겠다”
2007-08-23 김승현
무더운 여름날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던 한나라당 경선이 끝났다. 하지만 ‘경선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한나라당 지도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다.
경선 기간 사상 유례없는 비방전을 펼쳤던 이명박(MB) 박근혜 두 후보 진영의 공방은 사태 수습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후보 경선은 내전이었지만 너무도 치열했다”며 “내일의 큰 싸움을 위해 부상병은 치료를 하고 무기들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선 이후 최대 관심사는 단연코 박 전대표에게로 모아진다. 그 동안 ‘경선 승복’을 수없이 반복해왔지만 쉽사리 이 후보와 손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일각에서는 MB의 향후 지지율과 대선 구도 변화에 따라 박 전대표가 또 다른 승부수를 띄울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루비콘강은 건넜다”.
박 전대표측의 한 인사는 경선 기간 깊어질 대로 깊어진 양측의 악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경선 후유증 차단에 올인할 태세지만 여전히 ‘당 분열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높기만 하다. 서로를 향한 막말 수위가 일치감치 위험 수준을 넘었고 법정 공방 논란이 일 정도로 대결 국면은 긴장됐다.
경선 이후 당 지도부는 양측 화해 주선을 목적으로 각종 이벤트를 준비 중이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박 전대표측 의원들의 불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경선 기간 양 캠프에선 ‘공천 살생부’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이인제의 악몽, ‘모락모락’
박 전대표가 국민들 앞에서 수차례 공언했던 만큼 당장 강수를 띄우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친박 진영의 홍사덕 선대위원장도 “박 후보는 지금까지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며 “설사 잘못된 선장 때문에 좌초해 침몰한다 해도 결코 배에서 내릴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경선 직후의 반발은 당내에서 집중 포화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이미 전신인 신한국당 시절,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이인제 의원의 대선 독자 출마로 고배를 마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다고 경선 기간의 대결 국면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당 지도부도 감정을 정화할 수 있는 시간으로 대략 한 달 정도 잡고 있다.
경선 기간 홍 위원장은 이 후보를 겨냥해 “BBC 사기사건, 산악회 불법 사전 선거운동 때문에 후보로서 법적 지위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하는 위험한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캠프 내 최경환 종합상황실장은 “이 후보가 수감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했고 유승민 의원은 “부정부패 연루자의 경우 당원권이 정지되면 후보 자격도 박탈된다”고 거들었다.
누구보다 박 전대표의 입장 변화가 쉽지 않다. 박 전 대표는 경선 막판 합동 연설회에서 “매일 의혹이 터지고 변명하는 후보를 뽑았다가 나중에 땅 치고 후회한다”고 했었다. 때문에 경선 승복은 가능하겠지만 적극적인 선거 운동은 힘들지 않겠느냐는 게 친박 진영 인사들의 말이다. ‘후보 사퇴론’을 부르짖었던 박 전대표측 인사들의 태업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일부 박 대표 측 인사는 “이명박 후보를 위해 대선을 준비하느니, 차라리 손학규 전지사를 돕겠다”는 극한 말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의미다.
박 지지자 절반 ‘MB 외면’
향후 정국에서 최대 변수는 이 후보의 지지율 변화가 될 전망이다.
경선 기간 몇몇 중대한 논란이 제기됐던 만큼 치명타를 입고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2002년 민주당처럼 ‘후보 흔들기’가 노골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중앙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가 이길 경우 박 전 대표 지지자 중 48.9%가 본선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만큼 양측 지지자들의 간극도 치유가 어려울만큼 커졌음을 보여준다.
MB 측에서 이미 ‘공천 살생부’가 나돌았던 만큼 친박 핵심 인사들은 ‘이명박 흔들기’의 중심에 자리잡을 개연성이 높다.
한편에서는 내년 총선을 겨냥, 박 전대표를 중심으로 ‘영남신당’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야당행’의 모험을 감행할지는 의문이다.
경선은 끝났지만 이 후보의 또 다른 순항을 위해선 박 전대표의 도움이 절실하다. 최소한 끌어안고 가는 모양새는 돼야 반한전선에 맞설 수 있다. 맞대결에선 패했지만 또 다른 키를 쥐게 된 박 전대표가 어떤 결단을 내릴 지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MB 살생부’ 실체는?
경선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깊은 것은 무엇보다 내년 초 총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들은 대선도 대선이지만 무엇보다 ‘국회 배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근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전대표를 누르고 승리함에 따라 친박 진영 의원들의 불안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이 후보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박 전대표측 의원들인 이혜훈 곽성문 의원을 겨냥해 “다음 선거에서 출마 불가능한 상황이 될 정도로 비방이 너무 심하다”고 발언해 이른바 ‘공천 살생부’ 논란을 빚었다.
정 의원 외에 몇몇 다른 MB측 인사들도 박 전대표를 지지하는 현역 의원들과 지자체장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공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경선 이후 양측의 화해가 최대 이슈로 떠오른 만큼 여기에 언급됐던 당사자들이 어떤 정치적 결정을 내릴지도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