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추진 목적 땅 투기였나”
2003-08-14 정하성
이번엔 자연재해가 아닌 대기업과의 한판 ‘힘 겨루기’다.강원도 향토 기업을 자처하는 두산그룹과 강릉시민들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인은‘경포지구 종합위락시설’사업 때문. 두산은 지난 94년부터 경포대 일대 33만6,000여평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부지에 골프장, 콘도미니엄 등 대단위 레저타운 조성사업을 진행해 왔다. 2004년말 완공 예정이었던 이 레저타운에는 18홀규모의 회원제골프장과 6홀규모의 퍼블릭골프장(24만여평), 24종의 놀이기구를 갖춘 어린이 유희시설(4만2,000여평), 300실 규모의 콘도미니엄(5,000여평) 등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산은 지난 4월 사업을 포기하고, 부지와 사업권을 (주)승산레저에 매각했다.이에 강릉지역 시민들과 사회단체에서는 “그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강릉시민들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사업권을 매각한 것은 대기업의 횡포”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게다가 시민과 사회단체 등에서는 “두산의 갑작스런 사업권 포기에 숨겨진 저의가 있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시민들에 따르면, 우선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공사가 지연된 이유’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두산측이 사업을 추진한다며, 강릉시 및 시민들의 협조를 얻어 강릉시유지 및 시민소유의 토지를 매입해 놓고, 갑자기 사업을 포기한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 강릉시민들의 주장인 셈이다.강릉시의회, 시민단체 등에서 사업 시행을 촉구할 때마다 두산측은 “진입도로 등의 토지매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업 계획을 마무리하는 대로 곧 추진할 예정이다”라고 밝히며 사업추진 의지를 밝힌 바 있다.이와 함께 지난해 5월에는 기공식까지 치르는 등 마치, 두산이 끝까지 사업을 추진할 것처럼 시민들에게 믿음을 심어줬다. 또 올초‘사업 매각’소문이 돌 때도 두산측은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며 일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두산이 마치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처럼 강릉시민들에게 설명해놓고 이를 어긴 것은 기업 윤리에 벗어나는 행위”라며 비난하고 있다.이에 대해 두산측은 “사업을 추진해오다 경기불황으로 회사의 수익성이 저하되는 현실에서 향후 예상되는 막대한 사업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며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경우 회사 존립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에 부득불 사업권을 매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이런 두산의 해명에도 불구,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한 상태다. 시민들은 “관광진흥법 등이 개정되며 투자여건이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두산이 애초부터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사업추진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가 원래 목적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사업부지는 ‘보존녹지지역’에서 ‘자연녹지지역’으로 형질이 변경되면서 땅값이 크게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부 시민들은 “두산측이 토지의 용도 변경 등을 통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겼다”며 “차익 규모가 50억∼150억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강릉시의회의 한 관계자는 “두산측이 사업부지를 매각할 때 받은 금액 등 사업 투자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알수 없지만 토지매각 과정에서 차익이 발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이에 대해 두산측은 “땅 투기 의혹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는 입장이다. 두산 관계자는 “지난 94년 강릉시로부터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회사가 사업에 투자한 금액은 419억원에 이른다”며 “하지만 토지 등 사업권 일체를 (주)승산에 매각하며 받은 돈은 237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매각손실 182억원이 발생했다. 회사측이 막대한 이익을 실현했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이어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조속히 완공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사업권을 매각한 것”이라며 “우량기업인 (주)승산이 승계받는 것이 지역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시민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골프장 등에 나무 몇 그루 심었다고, 그런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갔다는 두산측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렇다면 두산측은 사업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 내용을 소상히 밝혀야 할 것. 또 자본금이 수십억원에 불과한 승산이 2,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전했다.이처럼, 사업권 포기에 따른 강릉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두산측은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강릉을 중심으로 ‘두산’제품 불매운동이 일고 있는 것.실제로 두산 ‘산소주’등은 강원지역에서 외면당하며, 매출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향토기업으로서 강원도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두산으로서는 위기에 몰려 있는 셈이다.불매운동이 거세지면서, 두산측은 “그간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20억원을 후원했으며 각종 재해복구기금을 내는 등 강원도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이라며 “향토기업인 두산에 사랑과 배려를 부탁한다”고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있다.한편, 최근 강릉시민들과 두산측간 공방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강릉시의회와 시민단체에서는“박용성 회장 등 경영진의 공개적인 사과”등을 요구하는 서한을 두산측에 전달했고, 두산측은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