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업계 분위기는

어정쩡한 절충안에 노사 갈등만 증폭

2018-06-01     김은경 기자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국회가 지난달 28일 본회의에서 최저임금에 상여금과 교통·숙식비 등 복리후생비를 포함시키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고용노동부도 연장·야간근로 등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전망이다. 변화된 노동법 시행을 앞두고 어정쩡한 절충안에 노사의 갈등만 증폭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노동계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 알아본다.

노동계 “재벌 대기업 사용자 위한 개정안…즉각 철회해야”
사업자 측 “최저시급 인상 부담 컸는데 숨통 트이는 기분”


# 중소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에 근무하는 H씨(27)는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장면을 TV로 시청하며 분노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정안인지 모르겠다. 대행사 업무 특성상 야근이 잦은데, 포괄임금제가 곧 폐지된다고 해서 오른 최저 시급으로 야근 수당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 인해 이 꿈이 산산이 무너졌다. 상여금과 교통비, 심지어 식대까지 최저임금에 포함하면 사실상 지금보다 급여가 줄어들진 않을까 걱정이다. 조삼모사라고 생각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근무 중인 아르바이트생 K씨(29)는 이번 개정안과 포괄임금제 폐지 모두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동안 급여에는 최저임금 외에도 주휴수당과 교통비, 심야수당 등을 따로 챙겨줬는데 만약 이것들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면 실제 체감하는 임금 상승은 없을 것”이라며 “특히 시급을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경우엔 이런 잔여 수당이 차지하는 비중도 꽤 큰 편인데 (이것들을 받지 못하면)매우 아쉬울 것 같다. 포괄임금제 폐지로 인한 야근 수당 및 임금 상승효과 역시 따로 연봉계약을 하지 않는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급격한 임금 인상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반기는 눈치다.
# 교육기업 A사 관계자는 “중소기업 특성상 야근수당과 식대를 전부 지급하기는 어렵다”라며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는 추세인 데다가 포괄임금제까지 폐지된다고 해서 부담이 컸는데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B씨는 “최근 동네에 우후죽순으로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 결국 오른 최저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하는 야간 아르바이트생 수당을 감당할 수 없어 부부가 돌아가면서 밤샘 근무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식대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생 식대를 따로 챙겨주고 싶지만 요즘은 한 끼에 6000~7000원 하는 터에 부담이 됐다. 점주 입장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달가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개정된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의 산입범위에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에서 월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부분과 매월 현금으로 지급되는 복리후생비에서 월 최저임금의 7% 초과 부분을 포함하도록 했다. 또한, 개정법은 상여금 및 복리후생비 중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되는 부분의 각 25%와 7% 이하를 단계적으로 줄여 2024년에는 전체가 산입 범위에 포함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회 본회의에서 지난달 28일 처리한 개정안은 재석의원 198명 명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으로 통과됐다. 이는 당장 다음 해 최저임금부터 적용된다.
  이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비롯한 전국 거점 도시에서 총파업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소득 주도 성장을 외치며 만 원의 행복을 이루겠다던 정부의 최저임금 공약은 주고 뺏는 배신으로 돌아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역시 지난 29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면서 한국노총 소속 최저임금 위원이 전원 사퇴할 것임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상여금과 각종 수당,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재벌 대기업 사용자들이다. 최저시급 인상으로 중소상인들의 고충은 이해하겠으나, 이는 지나친 임대료 상승 등의 문제부터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이지현 한국노총 실장은 “수많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이 통과돼 매우 허탈한 심경”이라며 “향후 일자리 위원회 등에 전부 불참할 예정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앞으로 정부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고용노동부(장관 김영주·이하 고용부)도 이달 포괄임금제 관련 지침을 예고하면서 사실상 포괄임금제는 폐지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해 11월 포괄임금제 적용 대상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지침 초안을 마련해 검토했었다.

이성기 고용부 차관은 6일 세종시 고용노동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포괄임금제 지침을 마련하고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차관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근로시간 책정이 어려운 경우 유효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 책정이 어려운 곳이 아니라면 포괄임금제 도입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엔 근거가 없지만 대법원 판례로 산업계 내에서 폭넓게 인정돼 왔다. 포괄임금제는 연구개발직, 영업직, 운송직 등 근로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운 업종에서 사용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업종에서도 일반적으로 활용해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지난달 23일 소셜커머스 ‘위메프’가 주요 기업 중 처음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한다고 파격적인 선언을 해 화제다. 위메프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실질급여 축소 우려를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존의 초과 수당을 아예 기본급에 포함시키고 기본급을 올려 이를 보전해주는 것. 위메프는 주 40시간 근무제도 한 달가량 앞당겨 적용한다.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초과 근무는 별도의 수당을 지급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도 발 빠르게 ‘포괄임금제’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로시간 단축 대책 방안을 공개하고 오는 7월 정식 도입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확대해 임직원이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효율적인 근무문화를 조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노동법 개정을 앞두고 기업들이 선행적으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