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경제5단체 중 누가 주도할까
경제 영토 확장 기대감…민간 교류 구심점 잡기 나서
2018-05-04 강휘호 기자
대한상의, 상공인 교류사업, 북한 경제 조사 등 주목
전경련, ‘한반도 신경제지도’서 경제계의 역할 논의
중기계 “중소기업, 중요 참여 주체로 명시할 필요 있어”
무협·경총도 북한 진출 등 기업 동향 연구 준비 과정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벌써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등장을 전망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우선적으로 개성공단 재가동 및 확장 조치가 단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서울과 베이징을 잇는 고속철 건설이 포함된 서해권 산업·물류·교통 벨트 건설 등 구체적 청사진도 그려지고 있다.
아울러 동해권은 에너지·자원 산업, 서해안은 산업·물류·교통 산업, DMZ 지역은 환경·관광 중심의 경제 구역을 설정,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전략안까지 회자되고 있다.
또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대기업을 비롯한 경제계는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를 주도할 주요 경제 단체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를 필두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등이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주목되는 곳은 대한상공회의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정권 때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의 후폭풍으로 영향력이 줄어든 현재 민간 차원의 실질적 경제협력을 이끌 가장 적임자가 대한상공회의소라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부터 환영의 뜻을 밝히고 향후 여건 조성 시 경제 협력에 앞장설 뜻을 밝힌 바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7일 논평을 통해 “남북 간 ‘긴장과 대립’의 시대가 종식되고 ‘평화와 공존’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새로운 지평이 펼쳐지기를 희망한다”며 “향후 대북제재가 완화되는 등 경협여건이 성숙하게 되면 남북간 새로운 경제협력의 시대를 개척하는 일에 적극 앞장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상회담 이후 가시적인 행보도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민간 싱크탱크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남북 상공인 교류와 경협 사업, 북한 경제 조사 등을 첫 연구과제로 선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민간 싱크탱크 소장에는 한국은행 최초로 여성 임원에 오른 서영경 전 부총재보(고려대 특임교수)가 내정됐다. 후문으로는 남북경협위원회를 부활시키는 방안과 북한의 경제단체인 조선상의와 민간 차원의 교류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수장인 박용만 회장도 대북제재 해제 시 급진전될 남북 경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박용만 회장은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남북경제협력 미래상에 대해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과거를 따지자면 할 말이 많겠지만 지금은 미래를 바라볼 때”라며 “앞으로 경협과 교류가 가능해지는 시기가 오면 정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함께 번영하는 길을 가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때가 올 때까지 많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토론도 해서 제대로 경협을 전개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바쁘다”는 소회를 전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미래를 위한 정말 큰 디딤돌을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중소중견, 대기업을 포함해 주요 경제단체중 가장 많은 17만 회원사를 두고 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논의가 나온 지난 3월, 회원사를 대상으로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변화상을 진단하는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또 하나의 대표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대북 사업 준비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으로 입지가 좁아졌지만, 지난 수십년 간 경제단체를 대표해 온 만큼 남북경협에 대한 역할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014년 설립한 통일경제위원회를 ‘통일경제위 2.0’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등의 남북경협 사전 작업에 한창이다. 통일경제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 ‘통일대박론’에 따라 출범, 2015년 ‘북한경제개발 마스터플랜’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통일경제위원회는 2014년 출범 당시 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관련 기관 대표 23명과 전문연구자(자문단) 9명으로 구성됐다. 남북관계 개선이나 교류 협력이 먼저라는 정부의 기조에 맞춰 위원회 명칭을 남북경제교류특별위원회(가칭)로 변경한다는 계획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북한경제 개발 마스터플랜에는 전경련의 평양사무소 개설도 중요 골자로 포함돼 있다. 경제단체들의 양국 대화 채널 복원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반도 신경제 비전 세미나’도 준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8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한반도 신경제비전 세미나를 실시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성사 등으로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응해 민간 경제계의 역할과 과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다.
같은 자리에서 컨설팅·회계법인인 삼정KPMG에서 단계별 진출전략도 제시한다. 세미나 개최 한참 전부터 100곳 이상의 업체가 참가 의사를 밝혔을 만큼 관심도 높다. 대기업들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하기보다 경제단체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있는 모양새다.
아울러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조사연구활동을 바탕으로 정부의 한반도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과 비전을 제시한다.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민간 차원의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할도 병행한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북한 관련 산업의 중심이었던 중소기업의 역할이 향후 남북경협에서도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중소기업중앙회의 행보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중소기업계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중소기업을 핵심 주체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긴장 완화 분위기에 따라 개성공단 재개 등 중단된 남북한 경제협력을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상훈·이재호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중소기업이 중심이 되어야’라는 제하의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김상훈 연구위원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중소기업을 중요한 참여 주체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소기업은 남북경협 재개 단계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며 북한에 진출할 수 있는 경제 주체”라고 밝혔다.
특히 “중장기적으로는 북한 내 생산구조 형성에 기여해 생산과 소비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핵심 주체”라면서 “정부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서 중소기업의 역할과 활로를 구체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의 긴장 완화에 따라 선제적으로 남북한 간 경제협력을 위한 법과 제도 정비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그는 “개성공단 사업을 재개하고 고도화하려면 개성공단 임금 인상 상한제, 임금 지급 방식, 등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나 국제 협력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남북경협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 내 생산요소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므로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20여개 경제특구·개발구를 남북한이 공동 조사하고 발전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한반도개발공사(가칭)를 설립해 정경분리라는 경협 원칙에 따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개발 계획을 수행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그는 “중소기업이 첨병 역할을 한다면 경영 한계를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정상회담이 실시된 이후 중소기업중앙회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관계에 새 지평을 여는 남북 경제협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소기업은 남북경협의 상징이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며 “남북경협의 끈이 끊어져 있지만 중소기업계의 대북사업 참여 의지는 여전히 높으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교류 재개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개성공단 조기가동에 힘을 보태고 북한근로자의 중소기업 현장 활용 등 남북경협활성화에 필요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 역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연구·지원하기 위해 남북교류협력실(가칭)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남북 간 경제협력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기업들의 북한 진출과 남북 간 교역을 지원한다는 목적이다.
재계 등에 따르면 1989년부터 남북교역 전담 부서를 설치·운영해 온 한국무역협회는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교류협력실을 설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점은 특정되지 않았지만 미·북정상회담 결과가 나온 뒤가 유력하다는 전언이다.
특히 남북한 경제협력에 대비할 수 있는 전담조직 확대·신설안을 내부적으로 마련해둔 상태로 알려졌다. 무역업계의 시각을 들여다보면 남북정상회담의 성공 개최를 환영하고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남북 교역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크게 환영한다”며 “정상회담이 곧 이어질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의 길로 안내하는 확실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련의 정상회담들을 통해 북핵문제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고 이를 계기로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남북교역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며 “북한이 세계무역의 대열에 합류, 한반도가 동북아 경제협력의 중심으로 변모하길 소원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남북관계에 따라 경제·노동환경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고 관련 기업 동향에 대한 연구를 준비하는 등 준비 작업에 나설 전망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협회 회장은 남북 정상회담이 경제협력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26일 손경식 회장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지고 “이전과 달리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도모하는 남북정상 회담을 하루 앞뒀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은 “남북 경협 활성화는 물론 동북아 전체에 활력이 도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남북 간 경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해 우리나라는 물론 동북아시아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특히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로 소비 및 투자심리가 개선되고 대외 신인도를 향상시킬 것”이라면서 “북한의 사회기반시설 등 각종 인프라 투자 유치, 개성공단 재가동, 관광사업 재개 등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경제계는 이번 회담 이후 구체화될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면서 “책임 있는 경제단체로서 혁신 성장을 이끌고 남북 경제 발전과 공동 변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편 남북간 실질적 경협 추진은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 해제가 절대적 전제이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확인한 이후 남북경협에 대한 구체적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순서라는 이야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남북경협은 평화나 민족 공동 번영이라는 기틀에서도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정체된 산업 성장의 물꼬를 터 줄 수 있는 계기”라면서도 “다만 정치적 현안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