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편법 3세 경영권 승계 어렵다

2005-11-28     조경호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다. 엄격히 따지면 재벌총수 일가에 대한 곱지 않은 눈초리다. 여전히 투명하지 못한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와 경영권이 문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편법 증여가 유죄판결을 받자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증여방식이 아닌 비상장 기업의 상장·합병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정의선 체제가 확고해지기까진 CEO로서 경영 실적 등이 검증되어야 하고, 노조와 시민단체의 반발, 국민여론 등 각가지 암초가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향후 기업 경영방향을 추적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35)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현대차에서 기아차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제 기아차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그룹 후계 과정을 통해 정의선이 사장으로 있는 기아차가 부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전체가 정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라서 기아차가 그룹의 지주회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정의선이 기아차 사장으로 등극하면서 오너 3세 경영구도를 확정했다. 정의선의 공식적 직함은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 현대차 구조조정본부 사장, 현대모비스 기획담당 사장이다.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경영승계를 위한 플랜은 ▲그룹지배권 확보를 위한 정의선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사 상장·합병 ▲정의선 경영실적 부풀리기 ▲정의선의 경영자로서 이미지 메이킹 등으로 집약된다.

기아차 중심 그룹 지배권 확보전략

우선 경영권 승계가 초읽기에 들어간 정의선은 그룹을 지배할 만한 지분이 없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기아차를 통해 정의선의 그룹 지배권 확보전략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이다. 기아차는 모비스의 지분 18.19%를 가지고 있고, 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11.24%를, 현대차는 다시 기아차 지분 38.67%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편법적인 경영 승계가 봉쇄된 마당에 정 사장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기아차 지분을 사서 늘리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정의선은 올 2월 7일과 11일, 14일 세 차례에 걸쳐 기아차 주식 350만주(1.01%)를 사들였다. 이어 지난 1일 정 사장은 다시 기아차 주식 340만4,500주(0.98%)를 사면서 지분을 1.99%로 늘렸다.정의선이 기아차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영권 승계는 물 건너간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정의선의 경영자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영권 승계의 실탄창구 비상장 계열사

경영권 승계를 위한 기아차 지분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가 동원되고 있다.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 회사들을 주식시장에 상장한 후, 배당금이나 지분 처분 등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은 비상장 계열사인 글로비스 상장, 상장기업 현대오토넷과 본텍의 합병 등을 추진하고 있다.지난 11월 16일 물류계열사 글로비스가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글로비스는 750만주(20%)의 공모(공모가액 1만 9,000∼2만 1,000원)절차를 거쳐 이르면 연내 상장하게 된다.글로비스는 현재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35.15%,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39.85%를 갖고 있으며 나머지 25%는 노르웨이 해운사 빌헬름센이 보유하고 있다.상장 후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지분율은 현재 75%에서 60%로 줄게 된다. 상장을 한뒤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51%를 넘는 지분 9%포인트를 예정 공모가의 상한선인 2만 1,000원에 매각할 경우 706억원의 현금이 들어온다. 이 정도 금액이면 현재의 기아차 주가를 기준으로 지분율을 10%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기아차는 현대차의 최대 주주인 현대모비스의 지분 18.19%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 사장이 기아차만 장악하면 그룹 지배력을 대폭 강화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이다.더구나 글로비스는 현대오토넷에 합병되는 본텍의 지분도 30% 보유하고 있다. 합병은 현대오토넷이 본텍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합병비율은 주당 액면가액 500원 기준으로 1 대 2.599이다.합병비율의 기준이 되는 주당 평가액은 현대오토넷이 8,984원(액면가액 500원), 본텍이 23만3,553원(액면가액 5,000원)이다.비상장사인 본텍과 상장사인 현대오토넷의 합병 비율이 본텍에 유리하다는 논란이다. 본텍의 주당 평가액 23만3,553원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지멘스에 지분 30%를 매각할 때 받은 주당 9만5,000원보다 월등히 높아 정 사장과 지멘스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 정의선은 올초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실상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리기 위해, 전장부품 계열사 본텍과 현대모비스와 합병해 후계 구도를 구축하려다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합병이 무산된 바 있다.

정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사와 지주회사를 합병시켜 편법 경영권을 승계하려다 실패한 대표적 사례이다.참여연대는 “정의선 사장이 소유한 비상장사들은 현대차 그룹의 관련 일감 거의 대부분을 수주받아 회사가치를 극대화시키고 있다”면서 “결국 이를 바탕으로 주식 가격을 몇 십 배로 증폭시켜 경영권 세습에 필요한 주식 매입 비용을 확보하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현재 정의선 사장은 상장을 앞둔 글로비스 39.85%, 건설회사 엠코 25%, 자동차 부품업체 본텍 30%, 종합광고대행사 오노션 40%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서로 상호 지분을 인수하여 연결고리를 강화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은 “정의선 사장이 이들 4개 비상장회사에 594억 원을 투자하고 불과 2~3년 만에 4,000억 원 이상의 이득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아무튼 비상장 계열사들은 정의선이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는 실탄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정의선 경영 능력 키우기 위해 주가 높이기

현재 기아차는 ‘투톱 최고경영자(CEO)’ 체제이다.대외적으로 김익환 사장이 안방을 책임지고, 정의선 사장이 해외공장 프로젝트와 기획, 해외 영업을 맡는 구도이다.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은 99년 현대자동차 자재본부 이사로 회사에 들어왔다. 이후 2001년 상무로, 2002년 전무로 국내영업본부 영업과 기획을 담당했다. 올해 들어서는 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획총괄본부 사장으로 올라섰다. 정의선은 35세로 일반 회사원으로 치면 대리급에 불과한 나이지만, 오너의 3세라는 점에서 승승장구한 것은 사실이다.

올초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들어 왔지만 아직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이다.현대차그룹이 적극적으로 경영능력 키우기에 매달리는 것은 오너 3세의 경영 승계라는 사회적 정서를 불식시키는 한편 전문 경영인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경영 경험이 전무한 정의선이 현대차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선 이미 성장한 현대차보다는 IMF때 부도를 경험한 기아자동차를 통해 경영성과를 보여주게 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기아차 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현대차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아차의 경영 성과를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또한 현대차 노조는 현대차가 개발한 오피러스, 쏘렌토 등을 정의선의 경영실적을 높이기 위해 기아 브랜드로 출시했다는 주장을 한다.

이 같은 브랜드 갈아타기가 가능한 것은 IMF로 부도가 난 기아차를 현대가 인수한 뒤 연구소를 통합하여 현대차와 기아차 모델을 개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현대차그룹의 기아자동차 중심의 실적 올리기에 대해 현대모비스의 한 주주는 “현대모비스나 현대차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이다. 정몽구 회장이 아들 정의선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기아차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주주들의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이며 편법이다”고 지적한다.

정의선의 ‘정몽구 닮은꼴’ 이미지메이킹

현대자동차 그룹은 정의선을 그룹 경영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다. 컨셉은 부친인 ‘정몽구 닮은 꼴’. 지난 3월 기아차 사장으로 취임한 정의선이 매달 두 번씩 해외 자동차 시장의 동향 파악을 위해 해외 출장을 다니는데, 즉석에서 경영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 정몽구 회장과 같다는 것.한 일간 신문은 현대·기아차 관계자 말을 빌려 “고 정주영 명예회장부터 정사장까지 정씨 집안엔 현장을 찾아야 직성을 풀리는 DNA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또한 “정의선 사장은 정몽구 회장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눈으로 확인·관리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있다.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할 때도 조용히 듣는 편이지만, 한번 입을 열면 핵심을 꼭 집어 지적하기 때문에 임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면서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잘못을 수정하는 열린 마인드를 가진 CEO”라고 강조했다.

정의선 경영권 승계 곳곳에 암초

정의선의 경영권 승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첫 번째는 과도한 다각화로 인한 부실기업 양산우려이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경영권을 쥔 뒤 M&A, 해외투자 등 공격적인 경영을 해 왔다는 것. 특히 2008년이면 현대차그룹은 중국 미국, 동유럽 진출을 통해 글로벌 생산규모 559만대로 생산규모면에서 빅5에 진입하게 된다. 세계 경제흐름이 원활할 때는 문제없이 성장가도를 달릴 것이지만, 해외진출 공장이 실패하거나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 대우처럼 좌초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두 번째는 정몽구에서 정의선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하던 도중 정몽구 회장이 유고할 때를 가정한 것이다. 정몽구는 전문 CEO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정의선은 아직 CEO로서 부족하다. 이런 일이 오면 정의선 체제보다는 전문 경영인이 현대차를 맡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 번째는 정부의 금산법 재정과 노조의 ‘소유와 경영분리’에 대한 반발이다. 그간 노조에선 오너의 경영과 소유 분리를 주장해 왔지만, 정몽구 체제에서 경영성과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등 전문 경영인으로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정의선이 경영권을 승계할 경우 또다시 노조와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다.노조 관계자는 “국민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정의선 체제로 경영이 승계되는 것은 막을 것이다. 정의선은 전문 경영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너3세라는 특권으로 경영에 대한 검증 절차도 없이 기아차 사장으로 부임했다”고 말한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재벌들의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져 온 것은 사실”이라며 “무엇보다 재벌 총수 오너의 결정이라도 해당 계열사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면, 계열사 경영진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사회전반에 걸쳐 투명성이 크게 확대되고 시민의식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계열사 사장이 기존 주주 이익과 배치되는 결정을 하게 되면 이제는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외국 대기업엔 경영세습 전무

외국 대기업에는 창업주의 2·3세의 경영권 승계는 거의 없다. 미국 스탠더드 오일의 록펠러 가문, 포드 자동차의 포드 3세, 휴렛패커드(HP)의 패커드 일가가 대주주로서 최고경영자(CEO) 선임에 가끔 개입할 뿐, 경영은 철저히 전문경영인의 몫이라는 것. 디지털 혁명으로 세대교체가 빨라진 미국의 신임 CEO들은 예외 없이 전문경영인들이다. 시가 총액 기준 세계 최대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AT&T의 데이비드 도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브 발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CEO 지명자인 케네스 체놀트 등은 한결같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기업의 진화를 추구해온 기술경영자들이다.

이들의 정통성은 무엇보다 실적으로 뒷받침된다.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한 사람은 사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고, 외부 투자가들을 상대로 기업 가치를 방어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GE의 잭 웰치, 소니의 오가 노리오,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가장 먼저 들이댄 잣대도 실적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창수 수석연구원은 “서구 기업들은 종신형 오너 혈통주의가 경영상의 리스크라고 보는 반면, 우리는 검증된 전문경영인 부족으로 경영권 세습을 수용하는 상황”이라며 “그 대안은 실력 있는 CEO의 양성”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