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LG와 결별 수순

2006-09-10     이범희 
추적 LG그룹 위기설

LG필립스LCD(대표이사 구본준)가 위기에 빠졌다. LG필립스LCD의 공동투자자인 LG와 필립스LCD가 결별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립스는 최근 영문 보도 자료를 통해 LCD사업을 정리하고 헬스케어와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밝힌바 있다. 또한 지분매각 등을 통해 LG와의 본격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LG는 파주LCD공장 신설과 R&D투자를 늘려야 하는 시점에서 필립스와의 결별로 자금난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LG위기설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99년 LG전자와 합작으로 시작한 LG필립스LCD를 세운 필립스 전자가 LG필립스LCD에서 손을 뗄 의사를 밝히면서 LG전자와 필립스전자가 결별 수순을 밟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회사인 필립스는 지난 1999년 9월 LG전자와의 50대50의 지분참여로 LG필립스LCD(LPL)를 세워 활발한 경영활동을 전개해왔다. 7년간의 상호공조를 통해 최강의 기업으로 발돋움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최근 필립스측이 영문 보도 자료를 통해 “경기 순환형 테크놀로지 기업에서 헬스케어와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경기변동에 따라 수익이 불완전한 사업부문에 대해 매각할 예정이다”라고 발표했다. 특히 경기순환형 사업 성격이 짙은 LPL지분을 0%까지 줄일 것이며,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MSC의 지분 참여에서도 빠질 뜻을 내비쳐 파장이 예상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필립스가 지금까지 지분 철회에 대한 간접적 의사전달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상당한 의지를 보여준 것은 처음이다. 주주 간 계약 등의 절차에 따라 투자지분을 완전히 매각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어 LG필립스LCD의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필립스의 결정에 따라 LG그룹의 LCD사업전략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LG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LG는 새로운 투자자를 찾거나 단독으로 LCD사업을 전개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지배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기다 LG의 성장사업인 LCD사업 전략에 대한 전면 재검토까지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LCD사업이 LG계열사 가운데 LG전자 다음으로 매출액이 좋았고, 올해에만 3조원이 넘는 투자금액이 예정돼 있었을 정도로 각광받던 사업이었기에 이 같은 시선이 더욱 주목받는다. 또한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는 LCD사업의 특성상 파트너 없이 시장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LCD시장의 경우 가격 하락은 물론 대규모 투자부담에 따른 수익악화율의 변동이 커 갈음하기가 어려운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과 일본을 대표한다는 삼성전자와 Sony가 손을 잡고 경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필립스가 경기변동사업의 부담을 느껴 철수를 희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Sony가 8세대 투자를 가속화할 전망이어서 부담감은 물론 대외신뢰도와 장기적인 투자전략 수립에서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필립스가 회사명도 기존 `로열 필립스일렉트로닉스에서 전자 부문 ‘일렉트로닉스’를 빼고 `로열필립스(Royal Philips)`로 단순화하기로 하는 등 중장기 전략계획을 수립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LG가 철회 취소를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개라인 당 4조~5조원 가량이 투입되는 대규모 투자와 위험이 동반하는 LCD사업의 구조상 LG그룹이 단독으로 LG필립스LCD를 감당하기에는 큰 부담이 따를 것이다. 이에 새로운 파트너 영입을 통해 부담을 줄이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 시기는 내년 7월
다만 초기 LG와 필립스가 합의한 사항이 있어 당장엔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다. 필립스는 LG와 “기업공개(IPO)이후 3년이 경과(2007년 7월)할 때까지는 LPL에 대한 보유지분을 30%미만으로 낮출 수 없다”는 내용에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단기간 내에 지분을 매각하기는 어렵다. 필립스측이 LG와의 합의를 통해 지분을 매각할 뜻을 밝혔다고 하지만 LG가 합의해 주지 않으면 2007년 7월까지는 별 탈 없이 가야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필립스는 LG필립스LCD의 지분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7년 전 50%씩의 지분으로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IPO와 구주매각을 통해 지분을 37.9%로 줄인 데 이어 지난해 말에 추가로 5%를 매각해 현재 32.9%로 줄어든 상태다. 필립스는 2.9%의 지분에 대해서는 언제든 매각할 수 있지만, 나머지 30%는 LG전자가 합의해주지 않을 경우 팔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LG의 합의 없이 필립스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내년 7월 이후에는 로열필립스가 LG필립스 LCD로부터 완전히 손을 뗄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필립스가 당장 팔 수 있는 물량은 2.9% 수준에 불과하지만, 궁극적으로 30%의 지분 전량을 내년 7월 이후 정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며 “LG LCD의 향후 전망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LG가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설 경우 LCD 업계에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자의 성격에 따라 발전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종목이 바로 LCD종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