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공룡 태광·CJ의 횡포
2007-08-14 김종훈
재벌기업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및 시정명령’을 둘러싼 공정위와 방송위의 날카로운 대립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양측의 대립은 지난달 29일 공정위가 태광티브로드계열 및 CJ계열의 SO에 대해 ‘독과점지위를 남용해 소비자 부담을 늘렸다’며 과징금 및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비롯됐다. 그러자 방송위가 공정위의 시정명령 등은 ‘이중규제’ 이자 ‘SO에 대한 감독권 침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SO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케이블TV협회도 공정위의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태광티브로드, CJ 계열 SO도 공정위 처분에 불복,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케이블TV사업자는 전국을 77개 권역으로 쪼개 권역별로 한 권역에 한 SO가 영업을 하고 있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태광티브로드 계열 15개 SO가 2005년 12월부터 단체 계약 상품의 계약 갱신을 거부한 데 대해 “수신료 증대를 목적으로 소비자들이 케이블 TV의 경쟁 회사인 스카이라이프 전환이 쉽지 않은 점을 이용해 고가인 개별 상품으로 시청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독점시장에서의 시장 지배적 남용”이라며 2억 1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77개 권역 케이블방송 독점
SO의 일방적인 방송프로그램 편성변경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가입자의 이익을 침해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태광티브로드 계열 8개 SO 및 CJ계열 3개 SO는 지난해 4월 MBC, ESPN, SBS 스포츠, 드라마 채널 등 시청률 높은 인기 채널들을 저가형 상품에서 고가형 상품으로 옮겨 편성했다. 이에 공정위는 “저가형 상품의 품질을 인위적으로 저하시키는 행위로 소비자들이 인기 채널 시청을 위해 고급형 묶음 상품 등을 선택해 50~150%까지 수신료를 추가 부담하게 됐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방송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의 일반적인 시정명령 권한을 가진 공정위가 시청점유율과 요금 기준만을 근거로 간섭을 할 수 없다” 며 “SO의 채널편성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시정 명령을 내린 것은 표현의 자유 및 방송이 가지는 문화적 특성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방송위는 “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오히려 케이블 TV시장의 저가 요금 고착화 및 방송 프로그램 품질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태광티브로드, CJ 등의 SO업체도 공정위 처분에 불복,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측은 “당초 정책적으로 지역별 사업권을 부여한 케이블 TV 사업은 독점이 아니다”라며 “또한 재허가 추천 심사 등 방송위의 규제를 받고 있어 이번 공정위 조치는 이중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징금을 부과 받은 SO들은 행정소송까지 제기한다는 방침이어서 독과점을 둘러싼 시시비비는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잦은 채널 변경…시청자 불만 급증
“기본형 상품 볼만한 프로그램 없다”
사실 SO의 임의적이고 잦은 채널 편성변경에 대한 시청자 불만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온 해묵은 문제다. 지난해 방송위가 발간한 2005년도 시청자불만처리 보고서에도 이런 사실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SO에 대한 불만 건수는 2004년 대비 무려 69%나 증가했다. 특히 불만 내용을 유형별로 보면 채널 편성 관련 불만이 1004건(49%)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요금 관련으로 414건(20%)에 달했다. 채널 편성 불만은 예전에는 요금 불만보다 적었으나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발간된 2006년도 시청자불만처리보고서에서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SO 관련 불만 중에 채널 편성 불만이 1035건(4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요금 불만이 600건(25%)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방송위 관계자는 “특히 일부 사업자의 경우 스포츠, 드라마 등 일부 장르 채널을 저가형 상품에서 고가형 상품으로 슬쩍 이동 편성하면서 이에 대한 시청자 불만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현재 케이블TV 채널 편성은 SO와 PP(개별채널사업자) 간의 수신 계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법적으로 채널 편성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채널을 바꿔 편성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재벌 PP들의 로비로 SO들의 일방적이고 잦은 채널 편성 변경이 이뤄진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론도 만만찮다. SO들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채널 숫자가 50여개인 반면 PP는 220여개나 되는 상황에서 채널 편성이 고정화된다면 한 번 배제된 영세한 PP들은 진입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즉 PP들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채널 편성이 시장원리에 맞게 자유로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채널 숫자와 PP 숫자 간의 상당한 간극은 또 다른 부작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채널 편성권을 가져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SO들이 PP들을 상대로 불공정한 거래를 강요할 여지가 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 2005년 한 PP업체 대표가 SO업체들이 PP업체들에 행하고 있는 각종 불공정행위를 담은 진정서가 여당 국회의원실에 접수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진정서에서는 SO들이 채널 공급 계약을 조건으로 PP들에 이른바 런칭비를 포함해 광고비 지원, 마케팅 협찬 등 갖가지 ‘가욋돈’을 요구하고 있는 실태가 적나라하게 언급돼 있었다. 공정위 조사결과, 진정서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나타나 ‘런칭비를 강요하거나 송출장비 구입비용을 제공받은’ SO와 계약 기간 중에 일방적으로 채널 편성을 변경한 SO 등이 적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