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싸움에 개미투자자만 ‘쪽박’

2007-08-16     박지영 
롯데그룹 도덕적 해이 논란

롯데그룹의 온라인유통업체인 롯데닷컴은 일본 최대 여행사인 제이티비와 함께 자본금 50억원의 ‘롯데제이티비(주)’를 설립, 지난 7월 1일 본격적으로 여행사업에 뛰어들었다. 제이티비는 85년의 역사와 연간 10조원의 매출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 여행사다.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이 알려지자 한국관광업중앙회, 한국일반여행업협회 등 여행업계는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그룹에 여행업 진출 유보를 선언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여행업계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 롯데제이티비가 정상적으로 영업을 개시하자 한국관광협회중앙회는 급기야 대기업의 여행업 진출을 제한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관광협회 VS 롯데그룹

관광협회중앙회는 진정서를 통해 “롯데제이티비는 2011년에 국내 인구 120만명의 해외여행 알선을 영업 목표로 내세웠다”며 “이는 국내 업계가 연간 취급하는 인원의 3분의 1로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영세 여행업체들은 줄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관광협회중앙회는 이어 “롯데제이티비 설립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외국의 거대 기업까지 끌어들여 국내 시장을 무너뜨리는 것이 재벌 그룹이 해야 할 일인지 분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로 여행업계가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인 곳은 다름 아닌 롯데관광개발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씨의 남편이 대표이사로 있는 롯데관광개발은 예기치 못한 처남의 반격에 ‘얼’이 빠진 모습이다.

1971년 설립 때부터 줄곧 ‘롯데’라는 브랜드를 써온 롯데관광은 롯데제이티비의 출현으로 난처하게 됐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 롯데제이티비의 여행업 진출로 인해 두 개의 ‘롯데’ 브랜드가 나란히 여행업 시장에서 세력을 다투게 된 것.

이에 롯데그룹은 제부의 회사인 롯데관광개발을 상대로 소송도 불사했다. 롯데그룹은 최근 롯데관광개발을 상대로 알파벳 ‘L’이 3개 겹쳐있는 롯데의 심볼마크 사용을 금지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측은 “꾸준히 롯데닷컴을 통해 관광사업을 해오는 등 그동안 롯데그룹이 여행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며 “롯데관광이 그룹 계열사도 아닌데 롯데라는 상호를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라는 브랜드 회수와 관련, 그룹 관계자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선 큰 방향이 잡혀 있진 않다”면서도 “기본적으로 롯데라는 브랜드가 그룹측에 있는 만큼 언젠간 그룹차원에서 ‘롯데’라는 브랜드를 회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그러나 롯데관광개발측은 “아직 소송 중으로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며 “판결이 나오기까지 앞으로 약 4~5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답했다.


롯데 부도덕성 도마 위

한편, 롯데그룹과 롯데관광개발간 가족 분쟁으로 가장 큰 손실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개인투자자들이다. 지난해 6월 롯데관광개발이 신규 상장되자 그동안 롯데그룹 계열사인 줄로만 알았던 개인투자자들이 롯데관광개발에 대거 주식투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5월 롯데그룹이 “롯데관광개발은 사실상 아무 관계도 아닌 회사”라고 발표하면서 롯데관광개발의 주식은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6월 롯데관광이 상장되면서 대주주들은 막대한 상장차익을 남긴 반면, 개미(개인)투자자들은 거의 쪽박을 찼다”면서 “작년 6월 개미투자자들은 롯데관광이 롯데그룹 정식 계열사인 줄로만 알고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증권 관계자는 이어 “롯데그룹이 이제와 롯데관광이 자기네 회사가 아니라며 집안 싸움에 들어간 것은 도덕적 문제가 크다”며 “또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장 절차를 통해 롯데그룹 대주주들이 막대한 상장 차익을 얻은 것은 일종의 증시자금 수탈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롯데관광개발 주가는 지난 6월 14일 3만6400원까지 올랐다가 8월 10일 오후 5시 40분 현재 2만6000원 대로 대폭 하락했다. 이는 ‘롯데’라는 프리미엄이 빠지고 있는 국면이라는 것이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 관계자는 “몇 년 전 롯데관광측이 북한 관광사업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도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롯데관광은 롯데그룹 계열사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며 “이번 롯데 랜드마크 사용 금지 소송을 낸 이유 또한 일반인들이 롯데관광개발을 롯데그룹 계열사로 알고 있기 때문에 제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 M&A방식 ‘베팅’없이 ‘소문’만 무성

진로·에쓰오일·우리홈쇼핑·까르푸 등 앞서 밝힌 기업들의 공통점은? 그동안 롯데그룹이 인수합병(M&A)을 추진했던 기업들이다. 그러나 정작 롯데가 인수에 성공한 기업은 우리홈쇼핑뿐이다. 진로 인수전의 경우, 롯데는 가장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데다 유통망까지 보유해 강력한 인수후보자로 꼽혔다. 하지만 낙찰자인 하이트맥주보다 무려 1조원이나 적은 금액을 써내 인수후보자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또 에쓰오일의 경우, 신동빈 부회장이 직접 울산 에쓰오일 공장을 방문하는 등 인수와 관련해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냈지만 막판에 대한항공의 베팅에 밀려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나마 인수에 성공한 우리홈쇼핑의 경우도 인수과정에서 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2대주주 태광그룹과 마찰을 빚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두 그룹 사이의 앙금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다.

이 같은 ‘롯데그룹 표’ 인수합병 스타일에 대해 업계는 ‘베팅이 약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보수적인 기업문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업계의 판도를 좌우하는 대형 인수전에서 항상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면서도 흐름을 읽지 못해 경쟁자보다 낮은 금액을 써 떨어지곤 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롯데는 원가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제과업으로 시작한 기업문화 특성상 대규모 투자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진단했다.


##바람 잘 날 없는 롯데그룹 롯데 “정말 되는 게 없네”

제2롯데월드 건설사업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가장 실망한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다. 제2롯데월드를 500m의 초고층타워로 지어 서울의 랜드마크로 삼겠다는 구상은 신 회장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신 회장의 염원을 뒤로한 채 최근 “잠실에 초고층 건물을 지을 경우 비행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국방부 측 의견을 받아들여 새로 지을 건물 높이를 203m로 제한했다.

하지만 신 회장이 이를 받아들여 초고층타워를 포기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초고층 제2롯데월드 건립안은 신 회장이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 때부터 20년 가까이 일궈온 평생의 숙원이자 오랜기간 준비해온 관광입국 구상 중 가장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롯데가 일본의 세계적 여행사 JBT와 제휴해 ‘롯데JBT’란 여행사를 만든 것이나, 신 회장의 또 다른 숙원으로 알려진 계양산 골프장 건립도 그의 관광입국 구상 중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신 회장 또한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의 평소 성품으로 볼 때 이대로 물러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롯데 측 역시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 건립은 매우 크고 복잡한 사안”이라며 “서울시에서 아직 공식 통보가 온 것도 아니고 행정소송을 포함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2롯데월드 건립의 장애물이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고령인 신 회장의 나이(84세)가 변수다. 장시간이 소요되는 소송으로 가기엔 부담이 따를 것이라는 지적이다.

후계자인 신동빈 부회장의 의중도 관건이다. 신 부회장은 평소 “잠실 금싸라기 땅에 굳이 랜드마크 빌딩을 짓느니, 그룹 수익에 도움이 되는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가 롯데 계양산 골프장 조성사업 최종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이 사업 역시 지역ㆍ환경단체가 크게 반발해 2003년 이후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만일 롯데 계양산 골프장 사업마저 무산될 경우 신 회장의 평생 숙원 두 가지가 모두 장벽에 부딪치는 셈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