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냐 ‘약’이냐 두고 저울질
2007-08-23 박지영
‘영업이익 1등’으로 쾌재를 불러도 시원찮을 포스코가 어찌된 영문인지 울상을 짓고 있다. 누구의 편도 들어 줄 수 없는 ‘샌드위치’ 신세에 놓였기 때문이다. 포스코를 궁지로 몬 것은 다름 아닌 계열사 포스코건설.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관련된 도곡동 땅을 매입한 게 화근이었다. 기업 입장에선 정치인, 그것도 유력 대권주자와 함께 언론에 오르내리는 게 달가울 리 없다. 그렇다고 당장 다음 대선 당선자가 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논란의 정점에 선 포스코건설의 의중을 살펴봤다.
기업과 정치인의 관계는 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여기에다 대권의 고지에 가까이 있는 인사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잘 맺은 인연이 향후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기업들은 대선시즌이 다가오면 늘 똑같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어떤 대선후보를 간택하느냐는 것. 만약 해당 인사가 대권을 잡기라도 하면 적어도 임기동안은 두 다리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선택이 전부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햇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자칫 잘못했다가는 임기 내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두 얼굴의 포스코건설
이 ‘무모한 도전’에 포스코건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나라당 경선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처남 김재정씨와 친형 이상은씨가 공동으로 소유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을 거액에 매입한 것. 또한 이명박 후보가 이 과정에 연관됐을 가능성이 점쳐져 논란이 일고 있다.
김재정·이상은씨가 문제의 땅 가운데 일부를 현대건설로부터 매입한 시점은 1985년 6월, 당시 현대건설 사장은 이명박 후보였다. 이 후보가 사장으로 재직했었을 때 처남과 친형에게 회사 땅 일부를 매각한 셈이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포스코가 특정 대권주자에게 줄 대기를 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포스코건설이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인연을 맺기 위해 거액의 차액을 안겨주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
특히 포스코건설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 또한 재계의 이러한 시선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이 또한 “단순한 정기세무조사일 뿐”이라며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포스코건설이 이 후보의 도곡동 땅 강제매각 의혹의 중심에 있는 만큼 특별세무조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 측과 포스코건설 측은 이러한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후보 캠프 측은 처남의 말을 빌러 “당시 현대건설 대리급 정도 되는
사람과 교섭해 내부 결재를 받아 땅을 사들였다. 이 후보에게는 그때 말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말한 적 없다”고 전했다.
포스코건설 또한 ‘사옥부지 마련’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외부의 의혹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서울에 흩어져 있는 계열사들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 사옥이 필요했다”며 “이후 강남 포스코센터 건물을 지으면서 필요 없는 부지가 됐지만 아파트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서 모델하우스를 짓는 등 용의하게 사용했다”고 말했다.
또한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땅을 매입할 당시 등기부등록 상에 이명박 후보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도곡동 땅 매입과 관련해 전혀 외압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도곡동 땅 왜 매입했나
도곡동 땅 매입과 관련,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실무진이 반대했는데도 포스코 수뇌부가 도곡동 땅 매입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동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최근 지난 98년 포스코건설(당시 포스코개발)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 과정에서 “박래권 팀장이 상층부의 강권으로 도곡동 땅을 매입했다”는 내용의 진술 보고서를 공개했다.
또한 김 의원이 공개한 보고서에는 포스코건설이 이 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낱낱이 소개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 땅은 일반주거지역이어서 건폐율과 용적률의 제한이 큰데다, 토지의 1/7은 도시계획시설도로에 나머지 1/10은 도시계획도로에 편입돼 사업 타당성이 없다.
이와 관련, 김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포스코개발 개발사업본부의 박래권 팀장은 감사원 문답서에서 전금석 본부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도곡동 부지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됐다”며 “수익이 적어 사업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전 본부장으로부터 ‘이거 해야 되는 거
야’라며 꼭 추진해야 할 사업이라는 암시를 받은 끝에 기본계획을 작성해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김만제 당시 포철 회장의 문답에서도 도곡동 땅의 실질 소유자가 이명박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이번 실무자들의 문답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오래된 일이라 대부분 퇴임을 하셨거나 심지어 돌아가신 분도 계신다”며 “박래권 팀장 또한 지난 96년에 퇴임해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발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