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자리 공석, 서울시 교육 표류하나
곽 교육감 놓고 여야 다른 해법 찾기
2011-09-20 전수영 기자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선의’로 2억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곽노현 교육감이 추석연휴 시작인 10일 새벽 전격 구속됐다. 추석연휴에 묻혀 곽 교육감 관련 파장이 크게 퍼지지는 않았지만 여야는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곽 교육감 파문은 여야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때리기’와 ‘구하기’를 해야할 판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결국 구속됐다. 검찰은 추석연휴가 시작된 지난 10일 새벽 곽 교육감을 후보자 매수 혐의로 구속 수감했다.
법원은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곽 교육감은 지난달 8일 검찰이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자료를 받아 수사한 지 33일 만에 영어의 몸이 됐다.
곽 교육감은 검찰청사를 떠나면서 “실망스럽다. 하지만 시련이 닥친다고 해서 진실이 변하지는 않는다”고 심경을 밝혔다.
곽 교육감이 변호를 맡고 있는 김칠준 변호사는 “재판과정에서 진실과 무죄를 밝히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혀 향후 치열한 법적공방이 예상된다.
서울시교육감이 자리를 비운 것은 2009년 10월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선거법 위반으로 판결이 확정되면서 처음 있었고 당시 김경회 부교육감이 권한을 대행했다. 하지만 행정과 교육을 책임지는 서울시장과 교육감 두 사람이 모두 자리를 보존하지 못하게 된 것은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이래 처음이다.
곽 교육감이 구속됨에 따라 교육감 업무는 정지되며 임승빈 부교육감이 권한대행을 맡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향후 곽 교육감 측과 검찰의 지난한 법적공방이 예상되기 때문에 권한대행체제로 1년 이상 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이대로 멈춰서나?
곽 교육감이 구속됨에 따라 서울시 교육은 당장 2학기부터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물론 지금까지 교육정책의 상당 부분이 윤곽을 드러낸 상태이기 때문에 크게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속도와 추진력에 있어서는 곽 교육감이 있을 때보다는 더딜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곽 교육감이 강력하게 추진하고자 했던 학생인권조례와 자율형사립고, 학업성취도평가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곽 교육감이 검찰조사를 받고 나온 다음 날 조례안을 발의하며 강력하게 실시의지를 밝혔지만 권한대행체제 하에서는 아무래도 탄력을 받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가족과 변호인단을 제외한 일반인 접견은 금지를 해놓은 상태지만 곽 교육감은 기소가 되기 전까지 옥중에서 결재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기소가 이뤄지기 전까지 결재업무 등을 수행할 수 있는 현직 교육감의 법적 권한을 수사 편의를 위해 사실상 정지시키는 것으로 부당하다”며 “기소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교육청의 긴급한 업무보고, 결재 등을 위해 교육감에 대한 접견을 허용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도 결재를 받으러 올 사람을 정해주면 그 사람만 접견하고 결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공무에 한해 접견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일반인 접견은 여전히 금지돼 시민단체가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새사회연대는 곽 교육감에 대한 검찰의 일반인 접견금지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직권조사를 촉구했다.
새사회연대는 곽 교육감의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함에 따라 인격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이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까지 검찰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결국 곽 교육감은 인권위의 결정이 있거나 검찰이 전향적인 검토를 하기 전까지는 지인 또는 자신을 옹호하는 사람들과는 접견을 할 수 없으며, 옥중에서 중요사안에 대해 결재를 하면서 교육 공백을 최대한 막으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유력한 증거는 무엇?
그동안 검찰은 이미 구속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의 증언에 따라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에 따르면 박 교수가 받은 2억 원은 지난해 치러진 선거과정에서 후보사퇴의 대가이며 서울교육자문위원회 자문위원 자리까지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박 교수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검찰이 박 교수를 조사했던 내용을 토대로 수사를 벌였지만 박 교수의 변호인단은 검찰과는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박 교수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박 교수는 검찰 조사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으로부터 받은 돈의 대가성을 인정한 적이 없다”며 “실무진 차원에서 선거비용을 보전하겠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맞지만 그것이 후보단일화의 선제 조건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변호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곽 교육감이 지금까지 주장했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전달한 2억 원은 ‘선의의 지원’이 된다.
실제로 검찰은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전달한 2억 원의 성격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 2억 원의 출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2억 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돈이 섞여 있을 가망성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한 박 교수가 이중으로 작성한 차용증 12장을 확보하고 이를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돈을 받은 박 교수가 차용증 6장을 써준 뒤 돈을 빌려준 사람을 곽 교육감이 아닌 곽 교육감의 측근인 강모 교수의 이름을 대신 써넣고 차용증 6장을 강 교수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결국 곽 교육감이 선의로 돈을 빌려준 것이라면 굳이 차용증에 돈을 빌려준 사람의 이름을 바꿀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 교수의 이름으로 바꿔 차용증을 준 것은 뭔가 석연치 않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주장하고 있다.
이 부분은 곽 교육감과 박 교수가 법정에서 그 이유를 명쾌하게 밝혀야지만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
특히 박 교수 본인이 곽 교육감의 주장대로 곽 교육감이 선의로 돈을 빌려준 것이라고 말하면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후보사퇴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실제로 곽 교육감이 선의로 박 교수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해 2억 원을 빌려준 것을 일부러 처벌 받을 것을 각오하며 거짓말로 ‘대가’로 받은 것으로 주장했다면 그 이면에는 말 못할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박 교수는 해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검찰이 곽 교육감과 박 교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충분히 수사하고 박 교수를 추궁했다면 검찰의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변호인 측에서도 대가로 받은 돈이 아니라고 하는 마당에 검찰의 주장이 얼마나 신뢰성을 가지느냐는 결국 검찰 자신이 수사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여야 모두에게 필요한 ‘곽노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사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곽 교육감마저 구속된 상황에서 여야는 모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 문제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를 고민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서울시장 후보단일화를 이루면서 야권은 크게 고무됐다. 심지어 안 원장은 대선 후보지지도에서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을 벌이면서 정치권을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야권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놓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권에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당 내부 인사보다는 외부에서 영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 해서든 곽 교육감 문제를 길게 끌고 가야한다는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 야권 전체의 단일화 내지는 통합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이번 선거에서 여권이 노릴 수 있는 전략은 후보단일화의 폐단을 지적하는 것과 함께 야권으로 쏠려 있는 기대감을 끌어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곽 교육감과 검찰의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곽 교육감 구하기’를 진행해 야권 단일화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야권과 곽 교육감을 발판으로 해 야권에 대한 공세를 펼쳐야 하는 여권 모두 법적 공방 진행과정에 눈과 귀를 모으고 있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