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정치적 빅딜 ‘비책’있다

2003-11-20     홍성철 
특검정국이 청와대와 야3당간의 정면충돌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10일 국회를 통과한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16일 거부권 행사 의지를 재천명한 반면 야3당은 재의결 강행 카드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 대통령이 재의결 정족수(국회 재적의원 2/3)를 초과하는 184명이 찬성한 특검법안에 대해 무리하게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온 배경과 관련한 갖가지 억측도 나돌고 있다. 야당측의 ‘수의 논리’에 맞서 법리논쟁을 통한 국민여론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나 정치권 일각에선 “뭔가 또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의도 정가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노무현-DJ 빅딜설’도 이러한 노림수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정가 주변에서 이른바 ‘노무현-DJ 빅딜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3일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에서 노 대통령과 DJ(김대중 전대통령)가 회동한 이후 두 사람간의 정치적 빅딜설이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던 것.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한동안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두 사람은 이날 회동을 통해 상호 서운한 감정과 정치적 앙금을 해소하려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특히 노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와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정찬용 인사보좌관 등 참모진을 대거 대동해 DJ에 대한 예우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또 노 대통령이 축사에서 “DJ는 세계적인 지도자”라고 칭송하자 DJ는 “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와 남북간의 협력증진 정책이 더욱 성공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화답하며 참여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4월22일 청와대 부부동반 만찬 이후 6개월여 만에 다시 회동한 두 사람은 도서관 5층 DJ의 사무실에서 문희상 실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환담을 나눴고, 테이프 커팅식 전에는 배석자 없이 5분간 독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또 이날 행사장에는 ‘통일의 선구자 김대중, 햇볕정책의 계승자 노무현’이란 플래카드가 내걸려 두 사람간의 암묵적인 화해분위기를 돋우었다.이처럼 6개월여만의 회동을 통해 두 사람간의 불편했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조짐이 일자 정치권 일각에선 ‘노무현-DJ 빅딜설’이 나돌기 시작했다.또 이날 회동이후 두 사람의 정치적 행보도 이러한 빅딜설을 부추겨왔다.

노 대통령은 7일 광주를 방문, 호남 민심 끌어안기를 시도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광주·전남 시·도민과의 간담회’에서 “광주에 올 때마다 제 고향보다 더 고향처럼 느껴진다”며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그는 또 “전 정부에서 정부산하단체에 임명된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어려울 때 상의할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며 DJ정부와의 연속성을 강조하기도 했다.퇴임이후 동교동 자택에서 칩거해 온 DJ도 3일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 이후 정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DJ는 14일 방한중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북핵 등 대북문제와 관련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10월 브루나이에서 열렸던 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 이후 3년만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날 김대중 도서관 5층 접견실에서 북핵 등 평화 문제를 주제로 45분간 환담을 나눴다.또 독립운동지사 고 이강훈 선생의 명예장례위원장을 맡은 DJ는 16일 영결식에 참석, 애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이처럼 노 대통령과 DJ가 3일 회동이후 화해전선을 구축하며 상호 보완적인 정치행보를 걷자 두 사람간의 정치적 빅딜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16일 특검 거부권 행사를 재천명한 배경에도 두 사람간의 빅딜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0일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안이 재의결 정족수를 초과했는데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거부권’이란 초강수 카드를 꺼내든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 또 노 대통령이 노리고 있는 믿는 구석이란 다름 아닌 민주당 표심이란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비록 10일 통과된 특검법안이 재의결 정족수(182명)를 2명이나 초과했지만 반대로 3명만 반대표로 돌리면 재의결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따라서 노 대통령과 청와대측은 DJ와의 포괄적인 화해·협력구도를 내세워 민주당 의원들의 표심 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10일 특검법 국회 통과 직전까지 찬·반 논쟁이 뜨거웠던 민주당도 특검법 통과이후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 결과 정당지지율이 열린우리당보다 뒤처지자 ‘찬성당론’에 대한 비판론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 재의결에 부쳐질 경우 민주당이 또다시 찬성당론을 고수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긴 것.이처럼 민주당내의 변수를 최대한 활용해 DJ와 호남민심을 끌어안을 수 있는 복안을 제시한다면 특검정국을 빠져나갈 수 있는 돌파구도 보일 것이란 게 청와대의 구상이다.또 청와대의 이러한 구상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주변에서 제기되고 있는 ‘총선 제휴설’과도 맞물려 있다. ‘총선 제휴설’은 내년 총선에서 양당이 양보없는 전면전을 벌일 경우 수도권 등에서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한다. 부분적 ‘연합공천’ 내지는 ‘후보 안내기’ 등 현실적 대안론이 양당 주변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

이러한 ‘총선 제휴설’이 실현될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그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견해다.따라서 ‘특검’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한 노 대통령의 구애 손길에 대해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여부에 따라 ‘총선 제휴설’ 윤곽도 어느 정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또 ‘DJP연합’과 ‘후보단일화’ 카드로 불리한 대선정국을 뒤집어 결국 대권을 거머쥔 경험이 있는 노 대통령과 DJ가 내년 총선정국을 겨냥해 어떤 카드로 대반전을 시도할 것인지 두 사람의 향후 정치행보도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