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낙마 위해선 대안이 필요하다”

2003-10-30     홍성철 
“불신임 돼도 혼란오지 않는다는 확신 국민들에 심어주면 승산,전국적으로 고른 지지율 보이는 고건 총리를 후보로 추대하자”최근 여의도 정치권과 관가 주변에서 ‘고건 총리 대안론’이 나돌고 있어 그 배경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야권이 고 총리를 대안으로 재신임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넘어간 정국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겠다는 게 ‘고 총리 대안론’의 골자다. 즉 재신임 국민투표 강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그 대안을 마련해 놓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 한동안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한나라당이 최근 ‘선 측근비리 규명, 후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당초 입장으로 선회한 배경도 이러한 대안론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민주당도 차기 대권 1순위로 부상하고 있는 고 총리 끌어안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폭탄선언을 처음 접한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최병렬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조속히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맞장구를 치며 여유와 자신감을 보였다.하지만 재신임 문제와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재신임 여론이 불신임 여론보다 높게 나오자 한나라당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노 대통령은 10월13일 시정연설에서 하야 가능성과 함께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하며 순수 재신임 투표를 제안하는 강펀치를 날렸다.각종 악재로 수세에 몰려 있던 노 대통령은 ‘재신임’ 카드로 정국주도권을 손에 쥐게 된 반면 한나라당은 숨겨진 가시를 보지 못하고 고기를 덥석 물어버린 꼴이 됐다.당사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지도부는 대책마련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후 한나라당은 고육지책으로 “정책에 연계한 국민투표는 반대한다”는 입장과 함께 ‘선 측근비리 규명, 후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대응 카드로 재신임 정국을 버티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애매모호한 카드로는 노 대통령의 비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당내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 ‘대안론’ 등 재신임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할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재신임 국민투표를 성사시켜 노 대통령을 낙마시키기 위해서는 호남과 충청 표심을 끌어안을 수 있는 후보를 대안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게 소장파가 주장하고 있는 대안론의 골자다.

이들 소장파들은 호남과 충청권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여론이 높게 나오고 있는 배경에는 노 대통령이 무능하고 싫지만 한나라당에 정권이 넘어가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소장파들은 호남과 충청권이 우려하고 있는 이러한 위기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안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관련 남경필 의원은 “도덕 재무장과 정치개혁을 부단하게 실시하면서 대통령을 불신임하더라도 혼란이 오지 않는다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명확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홍준표 의원도 “재신임 국민투표에서 이기고 야권이 국민후보를 내세우면 대선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 의원은 특히 재신임 정국 해법으로 △노 대통령 본인과 가족, 측근 비리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인 공격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 부족과 리더십 부재에 대한 실상 알리기 △노 대통령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론 등을 제시하고 있다.홍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최도술씨 300억원 수수 의혹’을 제기하는 등 노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한 공세를 강화한 것도 이러한 해법 구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한편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대안론 대상으로 고건 총리가 오르내리고 있다. 고 총리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이처럼 고 총리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권후보군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풍부한 행정경험과 경륜, 신선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고 총리는 호남과 충청, 수도권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영남권에서도 큰 거부감이 없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인 셈이다.

‘대안론’이 나돌고 있는 한나라당 주변에서 고 총리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배경에는 고 총리의 이러한 명성과 대중적 인지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홍 의원도 “대안론에 고 총리도 포함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해 ‘고건 대안론’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열어놨다.민주당도 ‘고건 대안론’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이 구상하고 있는 ‘대안론’이 본격 가동되고, 그 대상으로 고 총리가 낙점될 경우 정국주도권은 일순간에 한나라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또 민주당이 재신임 정국에서 ‘국민투표 절대 불가’라는 막연한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 것은 대안 부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논리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따라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재신임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할 보다 구체적인 논리 개발과 동시에 노 대통령을 대신할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그 대안으로는 고 총리가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과 고 총리의 과거 인연이나 정치적 성향에 비춰볼 때 한나라당 보다는 민주당과 코드가 일치한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이처럼 정가 주변에서 ‘고건 대안론’이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고 총리가 최근 과감한 행보를 자주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총리는 지난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현 국정혼란의 책임 문제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 그리고 내각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또 22일에는 이라크 파병문제와 관련해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는 일부 청와대 비서진과 강금실 법무장관, 노 대통령 측근 국무위원들을 싸잡아 강하게 질책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고 총리가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적극적인 언행이 잦아지자 정치권과 관가 주변에서는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재신임 정국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려는 전략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고건 대안론’과 연계하는 시각 △노 대통령에 대한 섭섭한 심사 표출 △‘큰 뜻’을 염두에 둔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 등이 대표적인 억측들이다.이러한 억측들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고 총리의 국정 챙기기를 흠집내고 청와대와 총리실을 이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며 일축하고 있다. 고 총리도 “노 대통령과 국정에 대한 동반책임을 지고 언제든지 물러날 수 있다”며 정치적 욕심이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고 총리의 최근 일련의 행보에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재신임, 정치비자금, 이라크 파병 등 복잡한 현 정국상황에 비춰볼 때 고 총리의 향후 행보를 둘러싼 억측은 더욱 난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