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놓고 한양대 학생 vs 주민‧임대업자 삿대질하는 사연

2년 걸친 싸움, 결과는 ‘오리무중’

2017-12-15     조택영 기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저희도 오늘이 최고 추운 날이란 걸 알지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추위보다 무서운 건 보증금, 월세 걱정이다. 우리 대학생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지난 5일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의 주거 빈곤 문제를 해소할 기숙사 신축을 허용해 달라는 이유다. 한양대 학생, 학교 인근 주민‧임대업자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학생 측, 한양대 인근 “주거비 비싸고 안전 취약하다”
주민‧임대업자 측, 생계 위협받아 “무조건 안 된다”


지난 5일 오후 한양대학교(이하 한양대) 총학생회는 시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이하 도계위) 위원들의 중도 퇴장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기숙사 신축이 심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며 ‘한양인의 기다림’ 돌입을 선언했다.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양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현재 한양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11.5%다. 실제 대학 관련 정보공개 포털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올해 기준 한양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12.5%로 서울 지역 대학 평균인 16.1%(사이버대‧방송통신대 제외)를 밑돌았다.

한양대 인근 사근동, 마장동, 행당동 일대는 주거비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등으로 높은 반면, 가로등과 방범창 등이 부족해 안전에 취약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인근 주거비는 보증금 없이 월 18만~26만 원(2인실 기준) 정도인 학교 기숙사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상황.

높은 보증금과 월세로 인한 고통은 계약기간 2년 내내 쫓아 다닌다고 학생들은 호소한다. 수업 받으며 아르바이트하는 걸로는 월세를 감당하기 벅차고 부모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미안함만 크다고 토로한다.

학교 측은 지난 2015년 학생 2000명을 추가로 수용할 외국인 학생용 ‘6기숙사’(540명)와 한국 학생용 ‘7기숙사’(1450명) 신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학교 인근 주민과 임대업자 등의 잇단 반발이 있었다.

학교 측의 상생 방안 제안에도 ‘기숙사 신축은 무조건 안 된다’면서 맞서고 있다. 한꺼번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가 들어서면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논리다.
 
시의원
중도 퇴장?

 
앞서 기숙사 신축 안건은 2차례 주민설명회와 1차례 주민간담회 등을 거쳐 지난 6월 처음 도계위에 상정됐으나 현장 검토(높이 조정 및 차폐감 최소화 검토)를 이유로 보류됐다. 이후 지난달 15일 재상정됐으나 이때는 정족수 부족으로 심의 자체가 무산됐다. 위원 일부가 총 7개 안건 중 기숙사 안건 이전 5개만 심의하고 자리를 떠난 것.

이에 대해 총학생회는 “중도 퇴장으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학생들에 대한 기만이며 위원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위원회의 시의원 5명 중 4명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의원이며 ‘한양대 기숙사 건립저지 대책 위원회(이하 대책위)’를 만나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시의원도 민주당 소속”이라며 “대학 기숙사 입주 인원을 5만 명으로 늘리겠다던 여당의 정책 방향은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도계위에 기숙사 신축 심의를 촉구하며 시청 앞 광장에서 밤새 대기하기도 했다.

결국 서울시는 지난 6일 제22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성동구 행당동 17 일대 한양대에 대한 도시계획시설(학교) 세부시설조성계획 변경 결정(안)을 ‘수정 가결’했다고 밝혔다.

이 결정으로 한양대는 2캠퍼스 내 총면적 2만405㎡,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 국내 학생용 7생활관을 2020년까지 신축한다. 여기에 지난 2002년 심의를 통과한 외국인 학생용 6생활관을 함께 조성해 총 1990명의 학생을 추가로 수용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제7생활관은 물론 대운동장 지하주차장(2만8064㎡), 연구센터(2만6024㎡) 등을 신축해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건축 인허가
산 넘어 산

 
한양대는 기숙사 신축 계획이 도계위를 통과하면서 한숨 돌렸으나 학생들은 문제가 남았다고 지적한다. 대책위의 2년여에 걸친 반대로 건물은 지상 10층에서 7층으로, 수용 인원도 800명 정도가 준 것.

이처럼 기숙사 규모가 계획보다 후퇴했으나 임대업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총학생회에 따르면 기숙사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 30~40명이 지난달 15일 심의가 무산되자 심의 통과를 바라는 학생들 앞에서 환호를 질렀다고 한다.

한양대 학생들의 기자회견에 동참한 서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물과 땅이 있고 자기 집이 있는 기성세대들이 세금도 내지 않고 편안히 먹고 살겠다고 가난한 다음 세대 등에 빨대를 꽂고 있는 상황”이라며 “새롭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같이 갑시다”라고 힘을 보태기도 했다.

앞으로 한양대는 성동구청이 건축 인허가를 결정하는 대로 기숙사 신축에 들어간다. 그러나 문제는 신축을 반대하는 주민‧임대업자의 반발이다.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는 주민 모임인 대책위 측은 사전 절차인 교통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통해 제동을 걸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이제 시청이 아닌 구청 앞에 자리를 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