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중국의 ‘반쪽짜리’ 금한령(禁韓令) 해제
‘사드 보복’에서 ‘롯데 보복’으로 선회한 대륙의 몽니
“롯데호텔·면세점 안 돼” 등 단서 조항 ‘수두룩’
업계 “중국 믿을 만한 시장 못 돼” 여론 확산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중국이 지난 3월 ‘금한령’을 내린 후 8개월 만인 11월 말 한국행 단체 관광을 허용했다. 하지만 국내 관광·유통업계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중국이 베이징·산둥 지역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크루즈·전세기·롯데 금지 등 제한적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쪽허용’ ‘일개 기업을 향한 대륙의 치졸함’이라는 등의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업계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 모집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며, 12월 한중 정상회담을 기해 추가 해제를 기대하는 눈치다. 한편 중국 의존도를 벗어나 새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10월 한중 정부의 사드 갈등 봉합 합의문 발표 후 중국인 단체 관광객 맞이에 돌입했던 관광·유통업계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이 일부 지역에 한해 제한을 허용하면서 중국인 관광객 마케팅에 대한 ‘전력투구’가 난감해졌다.
중국 관광 주무부처 국가여유국은 지난달 28일 베이징·산둥성 지역에 한해 한국행 단체 관광 금지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월 ‘사드 보복’ 일환으로 한국행 관광을 암묵적으로 금지한 후 8개월 만의 일이다.
중국 현지 여행사들은 국가여유국의 발표 직후 곧바로 한국 여행객 모집에 착수했다. 비자 신청도 서둘렀다.
단체 관광 허용 발표 후 韓·中 온도차 ‘뚜렷’
여행사들은 즉각 중국판 SNS ‘위챗’을 통해 한국행 단체 관광 상품을 소개했다. 이 여행사들은 단체 관광 금지 조치가 해제되기 전부터 국내 여행사들과 협업을 통해 상품을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춘추항공·길상항공 등도 제주행 항공편 재개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여행객에 대한 국내 온도는 미지근하다. 중국 당국이 저가 프로모션 금지, 온라인 여행사의 판촉 금지, 전세기 및 크루즈 운영 금지 등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제한적’ 조치인 셈이다. 크루즈 여행객은 제주도 관광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롯데와 관련된 숙박·면세점 이용 등 관광상품 판매는 금지한다고 밝혀 ‘사드 앙금’이 남았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뻔한 속내가 드러났다며 비판이 일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한 보복과 함께 12월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사드보복이 ‘롯데 보복’으로 바뀌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며 “(단체 관광 재개가)제한적으로 허용된 만큼 섣불리 사업 계획도 세울 수 없어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올해 안에 추가 해제가 되면 좋겠지만, 마냥 기다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중 정상회담과 평창올림픽을 기해 단체 관광 허용 지역이 확대될 것이라는 중론에 따라 관련 업계 주가도 강세를 보였지만, 미동이 감지되는 수준이다. 본격적으로 단체 관광객이 유입돼 국내 시장에 실효가 나타날 때까지 업계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 관계자는 “모든 지역의 한국행 단체 관광이 허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운휴했던)노선을 당장 재개하는 것은 고심해야 한다”면서 “현지 여행사를 통해 여행객 수요를 파악한 후 12월 중 부정기편 운항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서울 시내 한 면세점 관계자도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에 대한 금지 여파가 어떻게 미칠지 장담하기 힘들다”며 “단체 관광이 재개된 것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전세기, 크루즈 운항 등이 금지돼 향후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의존도 낮춰라” 새 시장 찾는 업계
한편 업계에서는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제2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미 ‘중국 발 관광쇼크’에 크게 데어봤기 때문에 시장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새 시장 찾기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롯데다. 롯데면세점은 지난달 27일 동남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여행 전문 예약 사이트 클룩(KLOOK)사와 마케팅 고도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 동남아 고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홍보를 펼칠 방침이다.
아울러 롯데면세점은 같은 날 베트남 나트랑 국제공항 신터미널 면세점 단독 운영권도 획득했다고 밝히며 국제 시장 확장에 본격 착수했다. 롯데면세점은 나트랑 및 다낭 시내 면세점도 추진하는 한편, 하노이·호찌민 등 베트남 주요 도시에 추가 출점을 검토하고 있다.
신라면세점도 동남아 선점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10월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제4터미널에 화장품·향수 매장 운영을 시작한데 이어, 12월에는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도 면세점을 연다.
앞서 국내 관광업계는 지난 3월 중국 당국의 금한령 조치에 따라 꽤 큰 타격을 입었다. 국회예산정책처(이하 예정처)에서 발간한 ‘중국 사드 관련 경제조치 영향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과 중국 노선 항공 여객은 전년 동기 대비 27.5% 급감하고, 자동차 및 화장품 업계의 순이익은 반토막난 것으로 알려진다.
예정처는 “관광업과 유통업 등 관련 산업에서 정부 지원을 확대해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면서 “한중 간 직접투자 및 무역은 정세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장기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