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영광 만큼 숱한 비극들

2003-08-06     정하성 
왕회장 자녀 9남매중 3명 자살·사고사로 유명 달리해‘왕자의 난’으로 형제간 우애 큰상처 … 정치와 악연도‘현대가’의 비극은 어디까지 이어지는 것인가.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자살로, 현대가의 비극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과 함께 한국 재계를 이끌었던 현대. 그러나 화려한 영광 뒤에는 비운이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하 왕회장)의 8남1녀 가운데 3명이 자살 또는 사고로 사망,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영광 뒤에 숨겨진 비극을 되짚어봤다.“화려한 명성만큼이나 끊이질 않는 현대가의 비운들”. 지난 4일 오전 정몽헌 회장이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서 투신자살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로써 한국사회에 숱한 화제를 뿌렸던 왕 회장 일가의 비극적인 사건이 또다시 집중 조명 받고 있다. 왕 회장은 지난 1938년 경일상회라는 쌀가게로 출발해 현대를 국내 최대 기업으로 키웠다. 또 왕회장은 슬하에 8남1녀의 자녀와 30여명에 이르는 손자를 두는 등 대가족의 가장으로서 행복도 누렸다. 그러나 이런 영광 뒤에는 왕 회장 일가의 비극도 함께 했다.왕 회장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지난 62년. 왕 회장은 평소 “아우들 중 가장 똑똑하다”며 가장 아끼던 넷째 동생 정신영씨를 교통사고로 잃어야 했다. 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제직하던 중 지난 62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특히 왕회장은 신영씨를 잊지 못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신영언론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왕 회장은 생전에 동생 외에도 아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아픔도 두 번 겪어야 했다. 지난 82년 4월 인천제철 사장으로 근무하던 장남 몽필씨가 경부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함으로써 왕회장 일가의 비극이 또다시 재연됐다.

그리고 지난 90년 4월에는 정신질환을 앓던 왕 회장의 4남 몽우씨가 강남의 모 호텔에서음독 자살해 현대가를 비탄에 잠기게 했다. 왕 회장 일가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91년에는 몽필씨의 부인이자 왕회장의 첫째 며느리인 이양자씨마저 암으로 사망했다. 장남부부가 모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비운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번에 정몽헌 회장마저 지난 4일 투신 자살해 한국 최고의 재벌가로 꼽히는 왕 회장 일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왕회장은 생전에 다섯째인 정 회장과 여섯째 아들인 정몽준 의원을 끔찍히 사랑했다는 전언이다. 왕회장은 못다 이룬 ‘대권’의 꿈은 정 의원이, 그리고 ‘대북사업’은 정 회장이 각각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반영하듯 왕 회장은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제치고 자신의 후계자로 정 회장을 지목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금강산 육로관광사업 등을 성사시키며 한 때 승승장구했다. 여기에 아버지의 후광으로 현대아산, 현대전자, 현대증권 등 금융·전자사업 등의 경영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공백이 컸던 것일까.정 회장은 지난 2001년 왕 회장이 사망하고 그해 5월 현대건설이 유동성위기를 겪으며 사실상 현대 계열사들에 대한 경영권 포기가 이어졌다.

또 최근 대북송금 문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정 회장은 5억달러 대북송금의 핵심인물로 거명되며, 특검과 검찰의 강도높은 조사를 받아야 했다.그리고 결국 이런 심적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4일 투신 자살을 했다. 이번 자살로 인해 정 회장은 그토록 갈망했던 아버지 ‘대북사업’ 등의 유지를 받들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왕 회장은 자식들 중 가장 사랑했던 아들을 이제 ‘하늘나라’에서 곁에 두게 됐다.현대가의 안주인도 10여년째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기도 하다. 애지중지하던 다섯째 아들의 불행한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 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는 10여년 전부터 협심증 등으로 현대아산병원에 장기 입원, 호흡기를 늘 달고 있었다. 이처럼 왕 회장의 8남1녀 가운데 3명의 자녀가 자살 또는 사고사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고 있다. 왕 회장 일가의 또 하나의 슬픔은 ‘형제’간 우애에 금이 갔던 사건.지난 2000년 3월 불거진 이른바 ‘왕자의 난’이 바로 그것. 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간 벌인 싸움으로 왕 회장 일가는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당시 이익치 현대증권 사장의 전격적인 경질로 촉발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의 유동성 위기와 함께 현대 그룹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던 것이다. 또 현대가는 ‘정치’와도 인연을 맺지 못하고, 계속되는 불운을 겪었다. 지난 92년 왕회장은 대통령에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 왕 회장은 “경제와 국가를 살리려면 기업인이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재벌의 정치 참여·금권정치 등 비난을 면치 못했다.그리고 10여년 뒤, 그의 아들 역시 정치와의 악연을 끊지 못했다. 정몽준 의원은 월드컵 4강이라는 호재를 만나, 선거 직전까지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아버지의‘대권 꿈’을 이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그러나 노무현 현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패배, 그리고 대선 전날 ‘대선 공조 파기’ 등의 무리수를 두며 정치인으로서 치명상을 입었다.이처럼 계속되는 현대가의 비운에 세간에서는 “한국 경제에 많은 업적을 남긴 현대그룹에 더 이상 비극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