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외교안보라인’ 송영무vs문정인 保革 ‘코드 충돌’ 막후
2017-09-22 홍준철 기자
- 강경화·정의용·임종석 ‘비둘기’ 다수파 vs ‘나홀로’ 매파
- 문 대통령 ‘대화파’ 손 들어줘… 송 장관 ‘부글부글’
송 장관의 문 특보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나온 직접적인 배경은 3일 전인 15일 문 특보의 발언이 단초가 됐다. 문 특보는 한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에서 송 장관이 ‘유사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 제거 역할을 하는 소위 참수부대를 창설할 것’이는 발언을 두고 “아주 잘못됐다”며 “용어부터 정제된 것을 사용해야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 줄 거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송장관 ‘작심발언’ 알고 보니 ‘누적된 불만’
이어 문 특보는 “12월1일 부대 창설을 앞두고 참수작전의 개념을 정립중인데 decapitation이라는 영어를 번역하면 ‘참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건 ‘궤멸’이나 ‘와해’로 번역하는 게 더 적절하다”며 “지난 정부에서 ‘참수’라고 해놓고 군에서 보편적 용어로 통용하고 그걸 잘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부적절한 표현이다”고 비판했다. 문 특보는 “북한이 우리 대통령에 대해 참수작전을 펼치겠다고 하면 우리도 적대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문 특보가 ‘참수’라는 용어가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지난 18일 송 장관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면 반박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날 송 장관은 정부의 800만 달러 규모 대북 인도적 지원 계획에 관해서 “지원 시기는 굉장히 늦추고 조절할 예정이라고 통일부로부터 들었다”고 해 통일부 공식 입장과도 차이를 보였다.
송 장관이 안보뿐만 아니라 외교·통일분야까지 넘나들며 위험한 발언을 쏟아내자 청와대가 지난 19일 사태 수습에 직접 나섰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례적으로 출입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청와대는 송 장관의 국회 국방위원회 발언과 관련, 국무위원으로 적절하지 않은 표현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정책적 혼선을 야기한 점을 들어 엄중·주의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에 송 장관은 다시 출석한 국방위회의장에서 “발언이 과했다”며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한 정부는 송 장관의 발언과는 달리 9월21일 유엔아동기금(UNICEF)와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모자보건·영양지원사업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800만 달러 지원을 심의·의결했다. 다만 실제 시기와 규모는 남북 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진하기로 통일부가 밝혀 송 장관의 입장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청와대는 ‘대북 강경파’인 송 장관 입장보다는 ‘온건파’인 문 특보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단 외교안보 라인의 갈등이 더 확산되기 전 발등의 불을 끈 셈이다. 하지만 여권에서조차 북핵 해법과 대북 인식 관련 기본적으로 코드가 다른 송 장관과 문 특보 간 앙금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송 장관은 한반도가 북한과 미국의 초강경 대치 국면에서도 “북한이 성동격서식 도발을 할 수 있다. 빈틈없는 대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며 단계적 군사 대응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반면 문 특보는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멈춰야 교섭에 나올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또한 문 대통령이 미순방전 문 특보가 “북핵 동결 땐 한미훈련 축소” 발언에 대해서도 송 장관은 동의하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송 장관은 2012년 대선 당시 문 대통령 지지그룹인 ‘담쟁이포럼’ 창립 멤버로 참여하면서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국방 브레인 역할을 맡았다. 당시 송 장관은 사석에서 북한을 ‘북괴’라고 부를 정도로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다. 올 대선에서 송 장관은 문 대통령의 안보 분야 자문그룹에서 활동했다. 반면 문 특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고 2012년 대선캠프에서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을 짜는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강경화 역시…靑 외교안보 라인 ‘비둘기파’ 압도
외형상 송 장관이 국무위원이고 한명은 특보로서 활동하고 있어 송 장관의 위세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 특보가 더 세다는 게 여권 내 정설이다. 일단 청와대가 송 장관에 ‘엄중 경고’를 할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상의한 뒤 공개적으로 경고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차 해외 순방 중으로 ‘사후보고’했다.
또한 여기에 노무현 정부 1기 내각 출신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문 특보와 마찬가지로 ‘대북 제재’보다는 ‘남북·북미 대화’를 선호하는 인물로 외교안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 전 장관도 19일 한 토론회에서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대통령 옆에 있는 것 같다”며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 중 강경파 인사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뿐만 아니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비둘기파’로 분류되고 있다. 강 장관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전화통화를 통역한 것이 인연이 돼 1998년 외무고시를 거치지 않고 외교통상부 국제전문가로 입부했다. DJ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도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내 외교안보 라인이 대북 관련 평화적인 해법을 선호하는 인사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나홀로 매파’인 송 장관의 입지는 향후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