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의 개막과 감성정치

2004-04-28      
탄핵 역풍이 휘몰아치면서 이대로라면 기존의 야당들은 이번 4·15총선에서 간판을 부지하기 조차 힘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역시 생물임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박풍(朴風)이 영남권을 집어 삼키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정당지지도가 열린 우리당 지지율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박빙의 접전 끝에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한나라당 후보자들은 당선의 영광이 전적으로 박근혜대표의 치마 회오리에 힘입은 것임을 스스로도 부인할 처지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박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17대 총선을 계기로 엄청나게 달라져서 차기 대권경쟁의 강력한 후보군에 자연스럽게 편입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더욱이 향후 여의도 정국이 여성 의원들의 대거 포진으로 과거 정치의 힘겨루기 양상을 벗어나 국민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감성 정치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보면 박근혜대표의 정치력은 더 한층 탄력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4·15총선을 전후해서 한꺼번에 갑자기 밀어닥친 듯한 여의도 여성시대 개막은 말할 것 없이 그 동안의 이 나라 정치상황이 국민에게 준 혐오감 때문에 정치권의 위기의식에서 출발된 결과임에 틀림없다. 즉 남성 우위 정치를 더 이상 방관해서 나라 망하는 꼴을 볼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가 여성 정치의 본격화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이 무턱대고 감성정치에 국가의 미래를 맡겨보자는 것도 아니었다. 밥그릇 싸움은 용서치 않는다민주당의 추미애의원이 3보1배의 고행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전통야당의 명맥을 지키도록 해달라고 유권자들의 감성에 호소했지만 결과는 무참한 참패로 끝났다.

만약 민주당이 탄핵안 가결에 따른 조순형 대표와의 불협화음을 접고 똘똘 뭉쳐서 열린우리당과의 정체성 대결을 벌였다면 총선 결과가 그렇게 까지 허망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표심은 이제 당내 분란을 획책하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따위의 짓을 절대로 용서치 않으려는 속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말하자면 상생정치를 외면하는 정치판의 그 어떤 이전투구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4·15 민심은 50년 전통 야당인 민주당 지도부의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은 채 모두를 장외로 밀어낼만큼 단호했다는 사실을 새로운 정치권이 교훈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들 또한 언제든 그 같은 운명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열린우리당이 상생정치를 다짐하고 있고 한나라당이 당리당략을 떠나 민생투어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앞으로 지켜 볼 일이지만 만약에라도 비대해진 열린우리당이 제 살 깎는 소리를 내고 한나라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또 다시 계보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배신당한 민심은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성 정치인들의 과제이런 연유에서도 여성 국회의원들의 대거 등장이 필연적인 시대적 요구가 아닌가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니 좀더 일찍 여성시대를 열었다면 이 나라 정치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마저 일어난다.

이는 여성 예찬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정치인의 감성 정치가 남성우위의 권위주의 확산을 억제하고 부패정치의 오염을 차단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자못 크다는 뜻이다. 또한 상생을 위한 대화정치가 한결 용이해질 것이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 일뿐 아니라 국민과 정치권 사이에 멀기만 했던 거리가 이제 확연하게 가까워질 것이란 기분 좋은 예감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 정국을 거치면서 갈갈이 찢기고 갈라진 국민 갈등이 여성시대의 감성 정치에 의해 봉합되고 계층간의 앙금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