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직격탄 식약처, 식품·의약품 분리론 재부상

불안한 식품 안전 컨트롤 타워 ‘기능 강화’ VS ‘업무 분리’

2017-08-25     오두환 기자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살충제 계란 사태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공분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류영진 식약처장의 잇따른 말실수로 정치권에서는 사퇴까지 압박하고 있어 식약처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당장 식약처가 처리해야 할 사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살충제 계란 사태에 이어 생리대 안전성 논란 등 국민 생활 건강과 밀접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식약처의 대처는 늘 사후약방문 식이다. 제대로 된 대처를 못하니 식약처 영역 중 식품과 의약품 분리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류영진 식약청장 ‘국민건강 책임질 적임자’ 평가 무색
곽노성 전 원장, 국무조정실·식품안전정책위원회 역할 주장


류영진 식약처장은 임명 당시부터 ‘코드인사’ ‘정치약사’로 불리며 논란이 많았다. 류 처장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부산대 제약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부산시약사회 회장, 대한약사회 부회장을 지냈다. 약사회 활동을 제외하고는 기관 등에서의 행정 경험이 전무하다.
 
농업·식품 VS 의약품
합쳐야 하나 나눠야 하나

 
류 처장은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여의도 입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비례대표 20번을 받았다. ‘정치약사’로 비판받는 이유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류 처장 임명 당시 “국민보건 향상과 서민의 권익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매진해 왔으며 안전한 식의약품 관리를 통해 국민 건강을 책임질 적임자”라고 평가했지만 최근 사태 대처 능력만 놓고 보자면 ‘적임자’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식약처의 뒷북 행정이 질타를 받으면서 자연스레 식품 진흥·안전관리 업무와 의약품 업무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식품 진흥과 안전관리 업무를 일원화해 농업·식품 부처로 통합하고 의약품은 분리하자는 얘기다.

사실상 해외에는 분리된 사례가 많다. 캐나다의 경우 식품안전관리는 농업농식품부의 식품검사청이 맡고 있다. 덴마크는 식품농수산부의 수의식품청, 독일은 소비자식품농업부의 소비자보호식품안전이, 스웨덴은 소비자보호농업식품부의 식품청이 맡고 있다.
식약처는 1998년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처음 출범했다. 이후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3월 23일 식약처로 승격했다.

식약처 본부 조직은 1관 7국 1기획관으로 짜여 있다. 1관은 기획조정관, 7국은 소비자위해예방국, 식품안전정책국, 수입식품안전정책국, 식품소비안전국, 의약품안전국, 바이오생약국, 의료기기안전국이다. 1기획관은 식품기준기획관이다. 이 밖에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과 6개 지방청을 두고 1천8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이원화된 식품안전 시스템
프로답지 못한 식약처

 
살충제 계란 사태가 발생하면서 식약처가 전 국민의 비난을 받은 것은 식약처와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로 이원화된 식품안전 시스템 때문이다. 현행 체제에서는 당연히 식약처가 각 부처를 아우르는 ‘식품안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식약처 내 식품 진흥·안전관리 기능 분리론이 등장한 배경이다.

현행 식품안전관리 체제는 생산단계에서는 농식품부가 유통단계에서는 총리실 산하 식약처가 각각 담당한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문에서 정부 관리의 아쉬움이 컸다. 농식품부가 산란계 농가의 살충제 사용에 대한 사전 대응이 있었더라면, 또 식약처에서 유통단계로 올라온 계란을 대상으로 잔류물 검사 등 강력한 검사를 실시했더라면 이번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부처 모두 할 일을 하지 못했다.

과거 보건복지부 외청이었던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국무총리실 소속 식약처로 격상된 이유는 식품·의약품 안전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 등에서 식약처의 대응은 실망 그 자체였다.

식약처와 농식품부의 이원화된 식품안전 시스템은 대처 과정에서도 문제였다. 각 부처에서 발표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부적합 농장 개수 발표에 혼선이 온 것이다. 농장에 있는 계란의 주무부처는 농식품부고, 판매 중인 계란은 식약처가 담당하기 때문에 자료 취합 과정에서 차이가 있었다.

살충제 계란 사태를 겪으며 현행 생산과 유통으로 이원화된 관리체계의 일원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그러나 식약처에서는 아직도 농축산물과 해산물에 대한 생산단계 안전관리는 농식품부와 해수부에 집행권한을 위임해 놓고 있는 상태다. 국민들과 정부가 요구하는 식품안전관리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존 체제를 더욱더 확고히 해야만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리체계 일원화 주장과 함께 식품안전·관리 영역과 의약품 영역 분리 주장 또한 계속되고 있어 향후 정부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스템 개혁 시급”
“국무조정실 안 보여”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살충제 오염 달걀 사태를 계기로 본 식품안전시스템’을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곽노성 전 식품안전정보원장은 영역 분리보다 식품안전관리 시스템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곽 전 원장은 살충제 계란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식품사고가 터졌을 때 신속, 정확하게 종합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 전 원장은 “사고 대응에서 총리는 보이는데, 국무조정실은 보이지 않는다”며 “법률상 컨트롤타워인 국무조정실에서 부처 간 미묘한 불협화음을 조정하고 식품사고 시 긴급대응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식품안전기본법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이 법률상 컨트롤타워로 되어 있고 사무기구인 식품안전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총리로 규정돼 있다. 곽 전 원장은 이번 사태에서 초기 농식품부와 식약처 간의 발표 혼선이 일어나 국민들에게 혼란을 제공한 점을 지적하면서 국무조정실이 조정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법률상 총괄기구인 식품안전정책위원회를 안전사고 발생 시 개최하고 위원회와 별도로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 식약처 국장, 농식품부 국장 등으로 구성된 실무대응팀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식품사고 발생 때 부처 간 협의가 늦어지면 식약처가 생산단계 농어가를 상대로 단독으로 직접 조사할 수 있게 현행 ‘특별사법경찰제도’를 활용해 추적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살충제 계란 파동과 관련해 문제의 최초 발생부터 정부의 대응 과정 전반을 종합적으로 다룬 백서를 발간할 것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교훈을 삼아야 한다”며 “이번 사태 전 과정을 정확하고 소상히 기록해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백서를 발간하라”고 지시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