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는 분명 웃자는 것인데 …

2004-03-05      
말 할 것도 없이 희극과 코미디는 다함께 웃자고 만들어지는 것이다.간혹 코미디를 보고도 웃을 수가 없었다면 그건 내용이 너무 유치해서 썰렁함을 느꼈거나 아니면 남들이 다 웃어도 자신은 도저히 웃지 못할 비감함에 젖어있는 까닭일 것이다. 만약 지구상에 제작비 한푼 들이지 않고 출연료 한푼 받지 않은 명배우들이 연출한 코믹 연기를 역시 관람료 한닢 없이 국민 모두가 신물나게 볼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무슨 뜬금 없는 소리인가 싶을 게다. 행여라도 그런 즐겁고 복된 나라가 존재한다면 기를 써서 이민이라도 가겠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다행히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지금 당장 관광이라도 해 보고싶다는 마음들이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그처럼 기막힌 코미디 천하를 이루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가 숨쉬고 사는 근래의 한국사회가 아닐까 한다.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그 아들 ,현직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사돈의 팔촌까지, 또 국회의원에서 청와대 행정관에 이르기까지, 거기다 모양새가 모호해 보이는 민간 단체가 총 망라되어 언제 저렇게까지 연기 수업을 받았는지 깜짝 놀랄 정도로 그들 모두의 코미디 연출은 아주 수준급 이었다.내용 모르는 사람들 눈물날 정경판사 앞에서 29만원이 가진 돈의 전부라고 통장을 흔들어 댄 전두환씨의 코믹연기는 대를 이어 수백 억의 돈을 떡 주무르 듯 했던 아들이 아예 알거지 차림으로 쉽게 구하기도 어려운 폐차 직전의 고물 차를 타고 언론의 카메라 앞에 나타나 내용 모르는 사람들 정말 눈물 날만한 정경을 연출해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들마저 여배우와의 염문설이 나돌더니 꽤나 연기 지도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동업자로 불러 더욱 유명해진 한 386 인사의 경우 국민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비리혐의 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한 술 더 떠 또 다른 기업들에 손을 내밀어 수억 원씩을 받았다는 아연실색할 대목도 있다.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사람이 빚어내는 해프닝도 그냥 보기가 아까울 정도의 코미디 단막극으로 끝날 공산이 매우 짙다. 또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민을 속 시원히 해주겠다고 서슬 퍼렇게 벼르던 대선 자금 국회 청문회는 마치 정치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 주는 듯했다. 증인으로 불려 나온 기업인이 오히려 신문하는 국회의원을 닦달하는 모습이나 일개 청와대 행정관의 조롱하는 듯한 답변 태도에서는 실소를 넘어 형언키 어려운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인터뷰를 기피하라는 지침을그 참에 또 어떤 시민연합이라는 데서는 낙선운동 대상에 들지 않으려면 멀쩡한 특정 신문과의 인터뷰를 기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미 인터뷰 기사가 실렸으면 충분한 소명 자료를 낼 것과 계획된 것은 무조건 취소토록 공개 요구하고 나서는 정도다.정치 보복이 혹독했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상상 못했던 기상천외한 코미디극이 지금 대명천지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관심을 모았던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수사조차 수사 방해를 받아 더 이상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 특검보의 사퇴성명을 부른 지경이 됐다.결국 국민 혈세를 또 하나의 정치코미디극 제작에 쏟아 부은 꼴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싶다.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비관 층 인구가 급증해서 자살이나 도피성 이민이 늘어나는 이 땅의 현실이 무슨 코미디 엮듯 세상이 온통 돌아 버린 것 같이만 느껴지는 절망감 때문임을 이제 삼척동자도 모르지 않을 터이다. 그럼에도 일부 세력이 희망을 말하고 잘되고 있다는 걸로 봐서는 그들이 모르긴 해도 어느 사이비 종교나 소주회사와 아주 밀접해있는 모양이다. 본래 생활이 힘들어지면 이상한 종교에 현혹되기도 쉬울뿐더러 홧김에 폭음하는 인구가 늘어 술장사 돈벌이가 제일이라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