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구의 세상보기>세상 가장 무섭고 겁나는 것
2003-12-08 언론인. 본지 대
장마철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겁나는 것이 물인가 싶다. 불타고 난 자리에는 남는 것이 있다지만 물이 휩쓴 뒷자리에는 무엇하나 건질 것이 없어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고들 한다. 이제 겨울을 맞고 보니 이제 서민들은 또 불 걱정을 해야할 판이다. 천신만고 끝에 이뤄놓은 내 터전을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꺼진 불도 다시 보고 자나깨나 불조심하면서 무사히 이 겨울을 넘겨야 한다. 아무리 신문을 들여다보고 뉴스화면을 지켜봐도 우리 서민들이 낙관할 만한 무지개 빛 소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에 가진 것마저 잃지 않으려면 어쨌거나 물조심, 불조심은 물론 도둑조심, 차조심에 사람조심까지 그저 모든 것을 조심조심 하고 살 수밖에 없다. 워낙 살림살이가 어렵다 보면 어디 가서 돈벼락이라도 한번 맞아 봤으면 좋겠다는 허망한 생각도 들 것이다.
오죽 해서 그런 생각까지 들까만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겁나는 것이 또한 돈 아닌가. 요즘 뉴스의 머릿기사는 온통 돈벼락 맞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메워진다. 11억 짜리 돈벼락 소식에 서민들만 주눅이 들었는데 곧바로 1백억원 벼락 맞은 곳이 튀어나오고 이제 9백억이 어떻고 저떻고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거기다 29만1천원이 내가 가진 돈의 전부라고 판사 앞에서 통장을 흔들어대던 전두환씨 집 별채 경매 뒷얘기나 뉴스의 관심 밖에 있던 전씨 둘째 아들을 둘러싼 온갖 괴자금 의혹들은 우리네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는 요지부동의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결국 이들 모두는 돈벼락 덕분에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다시 돌이킬 수도 없고 도저히 헤어 날 수 없는 인생 나락을 겪을지도 모른다.
하긴 또 어떤 정치 논리가 개입되고 역학구도에 변화가 올지 조바심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지금의 검찰 행보라면 뭔가 보여 줄 것이란 기대를 가져도 무방할 것 같다. 그래서 돈벼락이 얼마나 무섭고 겁나는 것인가를 확실히 보여 주는 것만이 오늘에 이르도록 이 나라 정치와 경제가 유착하여 만들어 낸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고리를 절단해내는 유일한 물리적 수단이 될 것이다. 정치자금을 주기 위해 대기업이 시중의 금은방, 골프숍 같은 곳을 돌며 헌 수표를 끌어 모아 돈세탁을 했던 사실이 밝혀지고 심지어 로또 복권 1등 당첨권을 웃돈을 얹어 깡을 했다는 소문을 검찰이 확인하고 있다니 앞으로 또 어떠한 돈 천국의 돈 세탁 시나리오가 드러날지 자못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동안 대한민국 졸부들과 부패기업, 부패 권력, 부패 정치인들의 벼락치듯 했던 돈 배팅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병들고 주눅들게 했는지는 여러 설명이 필요치 않다. 급기야는 돈 앞에 가족의 개념조차 허물어지고 돈벼락 전리품을 쟁취하기 위한 골육상쟁을 서슴지 않는 현실이 가진 자들 세계에서 어쩌다가 빚어지는 한 단면에 불과한 사실이 아닐 것이다.
돈벼략 진원지 밝혀내야
돈을 지키고 가지기 위해 신뢰받던 정치인이 협잡꾼처럼 돼 버리고 대통령을 지낸 사람 몰골이 조폭의 보스처럼 비쳐지는 세상에서 돈벼락을 탐낸 패륜 범죄에 골육상쟁이 더 한층 세상을 어지럽힌다면 하늘 아래 가장 무섭고 겁나는 것은 단연 우리가 한번쯤 꿈꿔보는 돈벼락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한탕주의를 부채질하는 돈벼락 진원지를 이 시대는 기필코 찾아내야 하고 무너뜨려야 한다. 모처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보겠다는 검찰의 수사 의지가 국민적 갈채를 받으면서 검찰 사령탑이 더욱 힘내라는 뜻에서 시민 단체가 보약과 햅쌀을 전달한 그 충정을 이 시대 검찰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되면 검찰은 노도처럼 일고 있는 국민적 요구와 역사의 흐름을 배신한 치욕의 검찰사를 또 한 페이지 늘려 놓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