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의 적(敵)은 곧 나의 동지
2004-02-19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감회는 역시 정치가 생물임을 실감 할 것이다. 생물이라 함은 살아 숨쉬고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같은 생물체가 목숨을 보존하고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의 발로로 누구도 나무랄 일이 못된다.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보호색으로 위장하는 것이나, 무리를 지어 강한 적을 기습공격하는 것이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제 목숨을 보호키 위한 수단이라면 모두 용납될 수가 있는 것이다. 생명체의 보호본능을 단죄 할 수는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해도 그정황이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인정되면 살인의 죄를 면할 수 있는 것 또한 생명체의 보호본능을 단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살아 움직이는 정치가 때로 같은 목적을 위해 정당끼리 공조하여 공동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생활 정치의 기본 형태임을 누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형상이 설령 야합의 측면이 짙다해도 그로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국민의 혼돈과 혼란을 수습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정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때문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동발의시킨 대선자금 청문회를 집권세력이 거대 야당의 야합으로 규정해서 간다, 못간다 하여 또다른 분란만을 일으킬 문제가 아닐 듯하다. 오히려 그 보다는 당당하게 청문회 진행에 협조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공조냐 야합이냐의 판단은 국민들 몫온갖 법적 산술적 근거를 들이대어 국회가 통과시킨 청문회 일정을 무력화시켜서 얻어낼 집권세력의 이득은 크게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가뜩이나 헷갈리는 국민들로부터 구린데가 있기 때문이라는 예단을 받기가 십상일 것이고 자칫 비겁한 도망자의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오늘의 청문회가 말처럼 야권공조를 명분으로 한 거대야당의 비열한 야합이든 더 나아가 횡포이든 간에 그 판단은 결과를 지켜보고 난 연후의 국민들 몫으로 돌려야 옳을 것이다. 여야 할것없이 정치권 모두가 오로지 당리와 총선 전략에만 몰두해있는 작금의 나라 꼴을 개탄하는 국민의 소리가 함성으로 모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정치판이 각성을 거부하면 결과는 뻔하다. 정치집단을 적대시하는 국민 저항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어쩌면 시민 단체가 실정법을 부인하고 정치 권력과 맞서는 형국을 빚어내지나 않을는지 조바심이 일 지경이다. 문제는 정치 생물이 움직이는 방향에 달렸다고 본다.
언제 또다시 이해가 엇갈려 물고 뜯는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를 상대가 오늘에 적(敵)의 적(敵)이라고 해서 갑자기 내 동지가 되는 정치 모양새를 놓고도 국민은 헷갈리지만 지금 보면 과연 민주당과 열린 우리당이 찰떡 궁합을 맞춰 노무현대통령을 당선 시킨게 맞는지도 헷갈릴 정도다. 이런 헷갈리는 정치를 보고 있자면 국민은 멀지않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낯뜨겁게 다시 합당하는 야합정치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까지를 분명히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