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경기도의 古城’을 만나다

-2017 경기도 1000년-

2017-03-21     수도권 강의석 기자
[일요서울 | 수원 강의석 기자] 옛 부터 경기도는 산업과 교통의 요충지이었다. 그러기에 쟁탈전을 위한 숱한 전투가 빈번이 일어나곤 했다.
 
역사적인 바탕위에 경기도의 성들은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 기틀로 성장했다.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 조선을 잇기까지 경기도는 수없이 많은 쟁탈전이 벌어졌다.
 
경기도는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함으로써 위로는 북진정책 아래로는 남하정책을 행할 수 있는 중추적인 지역이었기에 경기도는 역사와함께 동반성장을 이루었다.
 
많은 성들의 축성은 그 땅을 보존하기위한 방편이었고, 백성을 보호하기위한 크나큰 역할이었다. 또 그 성들은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한 우리민족의 얼이었고, 내면과 외면적인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이에 일요서울은 2017년 경기도 1000년을 기리면서 한반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경기도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깨닫고 우리 민족과 함께 역사를 지켜온 경기도의 성들을 재 조명해 본다.

▲ 독산성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사적 제 140호로 시대적 사명으로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독산성은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권율이 왜적을 물리쳤던 산성이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은 독산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산성을 포위한 왜군은 나무가 없는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권율장군에게 보내 물 부족을 조롱하려 했다.
 
그러나 장군은 흰쌀을 말에 끼얹으며 물로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며 물이 풍부한 것처럼 왜군을 속였다. 결국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길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생각했기에 퇴각했다고 한다. 이 일화로 독산성의 서장대는 ‘세마대’로 불린다.
 
      2009년부터 독산성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매년 그날을 기리고 있다. 또한 그곳에는 독산성 산림욕장이 있다. 독산성 산림욕장에는 전망대와 휴게공간. 숲속교실. 피크닉장. 수목관찰로 등을 갖추고 있다.
 
독산성안에 자리한 보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 전통사찰 제34호이자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돼 있다.
 
▲ 남한산성
 
조선시대의 성으로써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됐다.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했다. 이는 2014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 서. 남문루와 장대. 돈대. 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남아있다.
 
▲ 수원화성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효와 부국강병을 위해 축성된 성으로써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19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 제 3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CNN 선정 ‘한국에서 가봐야 할 50곳’ 중의 하나이다.
 
화성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이다. 처음부터 계획하여 거주지로서의 읍성과 방어용 산성을 합하여 성곽도시로 만들었다.
 
전통적인 축성 기법에 과학적 기술을 활용했으며, 이전의 성곽에 흔치 않았던 다양한 방어용 시설을 많이 첨가했다.
 
    당대 동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성과가 총결집됐고,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예술가들, 번암 채제공과 실학의 거두 정약용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화성은 근대 초기 성곽건축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매년 10월에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며 경축타종, 정조대왕 능행차연시, 사도세자와 혜빈홍씨 가례의식, 화성 깃발전, 궁중문화체험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북한산성
 
고대, 삼국, 백제시대의 성곽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75/ 서울특별시 은평구, 강북구 일대에 위치한 성으로써 사적 제 162호로 지정됐다.
 
   백제가 위례성을 도성으로 삼았을 때 도성을 지키는 북쪽의 방어성으로 132년(개루왕 5)에 쌓았다.
 
이곳은 고구려. 신라 사이에 위치한 접경지이었기에, 삼국이 여러 차례 서로 바꾸어가며 점유했다.
 
   현재 산성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흙으로 된 성벽이 약간 남아 있다. 하지만 조선 숙종 때 쌓은 성벽 대부분이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이 무너진 채 잘 남아 있고, 대서문과 함께 행궁터. 장대터. 우물터. 건물터로 추정되는 시설의 일부가 확인되고 있다. 이는 분한산을 따라 총 14개의 문으로 연결돼 있다.
 
▲ 행주산성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26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56호이다.
 
덕양산 정상에 축조된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승명을 포함한 2천3백명으로 왜군 3만 여명을 크게 물리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일어났던 곳이다.
 
  선조 26년(1593)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둔 곳이었다.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했다고도 한다.
 
정확한 축성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나, 성 안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과 토기 등 유물이 많이 나와 아마도 백제 때 처음 축성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행주산성 내에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셔놓은 충장사가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행주나루터 안마을에 정면3칸, 측면1칸의 규모로 행주기공사가 있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고 1970년 대대적인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곳에 다시 짓고, 정자와 문을 세워 경역을 조성했다
 
충장사, 전사청, 대첩기념관, 충의정(영상교육관), 행주대첩비, 권율장군동상, 행주대첩기념탑, 충훈정(궁도장), 덕양정, 강정 등을 볼 수 있다.
 
현재 문화관광해설을 진행하고 있으며, 관광해설 신청은 전화, 인터넷, 당일 매표소에서 할 수 있다. 매년 행주대첩제를 진행하고 있다.
 
▲ 죽주산성
 
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보존돼온 성으로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 111-71에 위치하고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69호로 축조 후 단 한 번도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죽주산성은 ‘한국의 마추픽추’로 불릴만한 그야말로 철옹성이다.
 
 조선 선조 때 이덕형은 죽주산성을 가리켜 ‘단 한 명의 군사로도 적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 국왕에게 보고했다.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남과 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군사 전략적인 요새였던 이곳을 아군의 기지로 삼으려는 시도는 나라마다, 전시마다 치열했다.
 
 이에 성 전투에 강했던 우리 민족은 성들을 축성함으로써. 적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하고 그들의 영역을 보존하려고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