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검증카드’에 이명박 지지율 ‘곤두박질’
2007-02-23 김대현
한나라당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MB) 전서울시장과 박근혜(GH) 전대표의 지지율 경쟁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설날 민심을 얻기 위한 ‘고육책’까지 서슴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이 본선을 앞두고 ‘양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양 진영은 정당의 목적보다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에 비유되기도 한다.
GH측에서 제기한 검증론은 단기적 관점에서 ‘이득’을 본 듯하다. MB지지율이 하락한 반면, GH는 대의원과 당원들의 지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정인봉 전의원의 ‘폭로 정치’는 한나라당 전체에 상당한 손해를 입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제 관건은 대세론을 이어온 MB가 GH 등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과연 대세론을 굳힐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정치권 인사들은 MB의 지지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치솟은 지지율이 어느 정도 조정을 받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 단, 반등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
지지율 하락 징후는 ‘한길리서치’가 발표한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포착됐다. 이에 앞서 GH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이 지난 1월 대선후보 검증론이라는 카드를 던졌다.
MB 지지율 30%대까지 빠지나
한길리서치가 지난 7일 공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MB의 지지율은 44.9%로 1월 수치에 비해 적게는 3%포인트에서 많게는 7%포인트까지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지표상 나타난 자료에는 하락폭이 3% 안팎에 불과하지만, 비공개 조사에서 한 때 50%를 넘었다는 점에 비교해 볼 때 7% 이상 하락했다고 지적한 것.
여론조사 발표 당시 MB진영에서 공개를 꺼려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이명박 전시장의 지지율은 당분간 빠질 수밖에 없는 구도”라며 “하지만, 이 틈새를 노려야할 박근혜 전대표 쪽도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지난 15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선 MB의 지지율이 41.4%로 나타났다. 1주일 전, 리얼미터 조사에 비해 1.7%
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매번 조사 때마다 하락하는 모양새다.
반면, GH의 지지율 회복세는 상당하다.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조금씩 치고 올라가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30%대 지지율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27.1%를 기록, 지난달 두 배 이상 벌어졌던 격차를 14%포인트 정도로 좁혔다. 특히, 설연휴가 지나고 나면 GH의 지지율이 추가로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현상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인물이 바로 정인봉 전의원이다. GH의 법률특보를 지냈던 정 전의원은 ‘문건 폭로’라는 낡은 전술을 들고 나와 MB 흠집내기에 일정 부분 성공했다. ‘치고 빠지기식’ 전략을 통해 한나라당 이미지를 훼손하는 ‘악수’를 뒀지만, GH 입장에선 다소나마 위기감에서 벗어났다.
이른바 ‘정인봉 효과’는 한나라당 내부에 적지않은 변화를 불러왔다. 대의원과 당원들의 ‘표심’이 GH 쪽으로 급속히 이동했다는 점이다. 정 전의원의 행태를 비난하면서도 ‘무언가 있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을 확산시킨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여의도리서치가 한나라당 대의원과 당원 1,489명을 상대로 비공개 조사를 벌인 결과, GH가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박 전대표의 지지율은 51.4%, 이 전시장은 34.6%, 손 전지사는 6.7%, 원희룡 의원 1.7%, 잘 모름 5.6% 순으로 조사됐다.
또, 후보 검증론과 관련 ‘가장 큰 타격을 입을 후보’에 이 전시장이 41.3%로 1위에 올랐고, 박 전대표는 19.9%, 손 전지사는 4.8%로 조사됐다. 대의원과 당원들이 이 전시장에 대해 느끼고 있는 심리적 불안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지난 2차례 대선에서 패배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터라, 철저한 후보검증을 통해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배어있다.
이번 조사가 특정 캠프에 유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대의원과 당원들의 성향이 대세론을 있는 그대로 안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내 경선시기와 관련해선 ‘예정대로 오는 6월 22일에 실시하자’는 의견이 43.9%에 달했고, 9월 이후 또는 상대 후보가 결정된 후에 치르자는 여론은 50.8%로 조사됐다.
현행 한나라당 경선 방식은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 국민투표 30%, 여론조사 20% 등으로 결정하게 된다. 대의원과 당원의 표심이 50%에 달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이들의 표심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성향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서 당내 영향력에 있어서 GH가 더 공고함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MB의 지지율 하락이 고스란히 GH에게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내분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기 때문에, 양측의 싸움에 실
증을 느낀 국민들이 ‘제3의 인물’로 시선을 돌릴 수도 있다.
GH의 전략이 ‘네거티브’로 흐른 이상 상대 진영의 반격과 후폭풍도 감당해야 한다.
일부 야권 인사들은 “정인봉 파문은 치밀한 각본에 의해 진행된 게 아닌가 싶다”면서 GH쪽을 겨냥하는 한편, “이렇게 되면 득을 보는 건 결국 여권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이제 MB는 연휴 기간동안 각종 의혹을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시중에 거론되고 있는 루머는 이미 검증된 사안”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의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당내뿐만 아니라, 여권에서도 이번 사건을 기화로 공세의 고삐를 더욱 당길 것으로 점쳐진다.
당내 지지율 GH 51%로 ‘우위’
일부 정세 분석가들은 MB의 하락세가 오는 4월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3월에는 여권에서 대통합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슈를 선점하기 어렵고, 4월에 있을 재보궐 선거는 상대적으로 GH에게 유리하다는 게 그 배경이다.
그럼에도 MB는 이번 사건과 관련, “어떤 검증도 당당하게 임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일부 측근들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마치 무엇이 있는 것처럼 흘리는 아주 비열한 정치공작”이라면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른바 ‘박근혜 X-파일’도 정치권에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