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한 ‘친필 편지’라더니
SBS 초유의 오보사태, 대국민 우롱극
2011-03-21 박주리 기자
SBS는 지난 3월 16일 ‘8시뉴스’를 통해 “이날 오전 발표된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수용하며,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게 돼 시청자께 사과드린다”며 공식 입장을 전했다. 결국 첫 보도가 나간 지 11일 만에 오보를 인정한 것이다.
‘단독’ 욕심에 허술함 드러나
SBS는 “법원 촉탁을 받은 민간 필적감적 기관에 의뢰했지만 언론사의 한계가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취재 과정의 허술함이 드러났다. 경찰이 2009년 사건 조사 당시 입수해 검토를 마치고 재판 문서에까지 첨부한 문서를 ‘단독 입수’라며 호들갑스럽게 보도한 것으로 SBS는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지상파 뉴스로서 망신살이 뻗친 셈이됐다.
경찰은 이날 공식 브리핑을 통해 “탄원서로 제출된 50통의 편지에는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 외에 고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나 비공개 사실이 기재된 편지는 없었다. 수사개시에 필요한 특정 사실이나 구체적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SBS는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고 장자연 씨 유족들에게 심적 고통을 안겨준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 한다”며 “편지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장 씨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겠다”고 덧붙였다.
31명 추측에 마녀사냥 난무
하지만 SBS는 오보라는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장씨가 지인에게 보낸 자필편지 50통 230쪽을 확보했다”며 “장씨가 연예기획사 관계자와 대기업·언론사 간부 등 사회 저명인사 31명에게 100여 차례에 걸쳐 술접대와 성상납을 강요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31명 성상납 리스트’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떠돌았고, 장씨의 자살이 술접대와 성상납과 관련한 소식이 돌며, 사건은 소문과 진실을 오가며 일파만파 확산됐다.
전모씨가 만들어낸 '장자연 가짜 편지'는 2년 전에도 똑같은 ‘오보 소동'을 일으켰다. SBS는 이미 오보로 판정 난 ‘전씨의 가짜 편지'를 2년 뒤 다시 똑같이 보도한 것이다. 이 오보로 SBS는 신뢰성에 타격을 입게 됐다. SBS는 책임자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SBS는 지난 18일 홈페이지에 최금락 보도본부장 명의의 공지를 띄워 “이번 징계는 사실 확인을 기본으로 하는 언론의 원칙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깊은 반성에 따른 것”이라면서 “SBS는 이번 보도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우상욱 SBS 기자와의 대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50통에 달하는 230쪽 짜리 편지(일명 ‘장자연 편지’)가 세간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분명 2년 전 이 편지는 존재했고, 경찰 수사 결과 ‘교도소에 수감 돼 있는 전모씨가 만들어낸 가짜’라는 판명이 났다. 그런데도 SBS는 이 편지를 마치 새로 접하는 문건인 것처럼 보도를 한 것일까. 국과수의 결과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 17일 [일요서울]은 ‘장자연 편지’를 첫 보도했던 우상욱 SBS 기자와 전화통화를 했다.
우상욱 기자는 “올 초 한 후배기자가 ‘고 장자연씨가 남긴 편지가 수원법원에 있다’는 첩보를 전했다”며 “문제의 편지 사본이 수원지방법원의 장자연씨 사건 담당 재판부에 탄원서 형식으로 제출된 것을 파악하고 문건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경찰이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문건에 대해 전혀 수사를 착수 하지 않은 채 보관만 했던 사실도 확인했다”고 보도 경위를 전했다.
그렇다면 장씨의 편지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무었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우상욱 기자는 첫 방송이 나간 다음날인 7일 모 언론사와의 전화통화에서 “(편지의 필적이) 확실한 장씨의 친필이라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요서울]이 우 기자에게 “‘장자연 편지’가 친필이라고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힌바 있는데 어떤 경로인지 말해 달라”고 하자, 그는 “어제 저녁 뉴스에서 밝히지 않았나. 공인 문서감정가에게 필적 감정을 했고, 함께 입수한 장씨 관련 수사기록과 편지 내용을 정밀 대조한 뒤 장씨가 직접 쓴 글이라고 파악한 것” 이라고 밝혔다.
우 기자는 “국과수의 결론을 존중한다”면서도 “(경찰이 밝힌 것과 같이) 수감 중인 전모(31)씨가 3년 넘는 일상을 정확히 기록한 편지 230페이지를 며칠 만에 썼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욱이 그렇게 세세히 적었다는 것 또한 상식적으로 불가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편지가 가짜라고 경찰이 밝힌 근거는 4가지다. 경찰이 지적했던 영화제목 같은 경우를 포함 겨우 그 네 부분이 달라 장씨의 편지로 보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머지 230여 장에 나온 내용은 맞는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고 덧붙였다.
통화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우 기자는 “상식적으로 이해를 하지는 못하겠다”고 강조했다.
소문으로 나돌고 있던 SBS 보도부장 및 사회부장의 보직사퇴서 제출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나는 모르는 일이다”며 전화를 끊었다.
[SBS는 지난 18일 '장자연 편지' 보도와 관련,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사회부장에게 징계 조치를 내렸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ㆍ사회부장은 각각 수 개월의 감봉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