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에 부는 ‘무기력’ 직무···‘진급 기피’ 현상까지

“진급 시 전 정권 인사로 찍힐 텐데 어떻게 진급 생각을···”

2017-02-24     조택영 기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공직사회는 충격의 진폭이 컸다. 결국 공무원들이 많은 실패를 맛봤고 당장 앞에 놓인 불을 끄려 급급했다. 이후 검찰 수사와 특검, 탄핵 가결과 국정조사 등을 거치며 ‘늪’속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오는 듯 했으나 공직사회에서는 위기의식·책임의식·목적의식을 잃어버린 ‘3실의 시대’라는 이야기가 내부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곧 사라질 조직’이라며 진급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어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부, ‘4차산업혁명’아닌 ‘세종행’에 관심 집중
경제부처, “민원에 응답하는 업무 외에는 특별히 할일이···”


탄핵 심판을 앞두고 정치권과 공직사회는 이미 4월 말, 5월 초 조기 대선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은 3월 초 탄핵 선고를 확정한 듯 ‘대선 레이스’에 돌입했으며, 공직사회는 탄핵에 따른 기존 경제정책들이 대부분 스톱될 것으로 관망하며 일손을 놓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진다.

또 일각에서는 3월 초 탄핵이 인용으로 결정되면 사실상 공직사회의 업무가 ‘올 스톱’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책 자체가 2달 후 들어설 새 정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추진 동력 자체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모든 중앙부처는 지금 관심 상황이 대선 이후 정부조직개편에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조직 자체가 이합집산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난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돼 가뜩이나 힘을 잃은 일손에서 남은 동력마저 잃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특검이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입증을 위해 고위 공무원 소환조사 혹은 추가 압수수색 등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설 가능성까지 엿보이며 공직사회는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다.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서 “최순실 수사와 직접 연관된 부처만 8개에 산하기관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가 만만찮다”며 “수사 결과에 따라 정책결정 라인 고위직의 거취가 갈릴 텐데, 이 와중에 중대한 정책 집행 혹은 새로운 정책 개발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모든 정책 지난 정부의
정책 되는 셈”

 
이번 정부의 주요 국정기조인 ‘창조경제’의 주무부처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탄핵 가결 이후 조직 개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미래부 내부의 관심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세종행’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또 이번 정부에 신설됐던 ‘정부 3.0 추진위원회’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반년만 버티면 되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에서 업무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3.0 추진위원회에 참여한 외부 인사는 언론을 통해 “이번 정부를 끝으로 ‘정부 3.0’이라는 어젠다 자체가 폐기될 것을 위원회 스스로 염두에 두고 있어 모든 문제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정부를 투명하게 운영하자는 것은 이번 정권이 끝나고서라도 계속 추진해야 할 가치인데 이렇게 중단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도 최대 관심사항이 조기 대선 이후의 조직 개편이다. 이미 내부적으로 ‘경제정책과 국제금융 파트에 금융위원회까지 합친 경제부, 예산과 국고 및 공공정책 파트 등을 합친 재정부 등으로 분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공직사회의 공통 관심사인 ‘진급’도 기피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기재부의 국장급 한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진급하면 ‘전 정권 인사’로 찍힐 것이 당연할 건데,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진급 생각을 하겠냐”며 “정책도 마찬가지다. 탄핵이 되는 순간 이미 모든 정책들이 지난 정부의 정책들이 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또 경제부처 관계자는 “올해 업무보고를 준비하면서 ‘소홀히 하면 태만, 열심히 하면 기만’이라는 말이 나왔다”며 “그런데 여기서 대선모드까지 겹치면 정책을 밀어붙이는 자체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고 전해졌다. 그는 “민원에 응답하는 업무 외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나 부처 간 업무 조율이 마비된 상황에서 새로운 업무를 능동적으로 처리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직무 감찰 통해
소극 행정 잡는다

 
이런 공직사회에서 감사원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감사원이 제 역할만 해준다면 무너진 공직 기강을 언제든 다시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국민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고, 직무감찰을 통해 부정부패를 척결한다. 대통령에 소속돼 있으나 직무에 관해서는 독립된 지위를 갖게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밖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직무 태만, 소극 행정 등 공직 기강 감찰을 강력 추진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경기침체, 축산 관련 각종 질병 확산 등 불안한 정국에서 공직기강을 확립하고 현장의 목소리 반영을 위한 소통 감찰 활동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주도는 지난 15일 직무를 태만하거나 소극적 행정을 한 공무원에게 최대 파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