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가늠하기 어려운 배우 이순재

2011-01-25      기자
누가 말하기 전에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분장을 하고 옷을 제대로 차려입은 탓이었다.

배우 이순재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서는 것은 1971년 ‘시라노 드 베르쥬락’ 이후 39년 만이다.

매니저에게 그의 현재 스케줄을 물었더니 드라마 3개를 촬영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와중에 틈틈이 연습 시간을 내어 2시간 40분짜리 연극을 소화한 셈이었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이날 리허설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저녁 먹으러 갈 시간도 없는지 도시락을 배달해 놓았다. 무대 위 삶만큼이나 무대 뒤 삶도 분주했다. 누군가는 그 분주함에 지쳐 젖은 티셔츠처럼 의자에 늘어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에만 오르면 표정과 동작은 생기를 되찾았다. 그 열정을 서로 공유하면서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연기를 시작하던 1950년대 중반에는 배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랄 게 없었어요. 인식이 바닥이니 벌이도 신통치 않았죠. 그렇게 출발했으니, 처음부터 이걸 해서 돈을 벌 생각 같은 건 없었어요. 또 인기를 얻고 명성을 쌓거나, 신분을 높이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고생고생하며 이 길을 걸었던 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어떤 가치관과 창조력이 우릴 지배하기 때문이죠.”

그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하다. 1998년부터 세종대 연극영화과에 나가 강의를 하고 있다.

늘 솔선하고,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고,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본보기가 되는 노배우는 이렇게 말했다. “명색이 연극영화과 학생들인데, 졸업하면 대사라도 잘하게 잡아줘야죠. 그게 기본인데. 학생들 가르치면서 나도 배우는 게 많고.”

그는 매니저가 내미는 드라마 대본을 흘끗한 뒤 화장대에 내려놓는다. 수염을 떼어내고 분장을 지우지 않아서인지 그가 돈키호테인지 이순재인지 또 헷갈린다. 피곤한 듯 무릎에 두 손을 올린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무대를 비추는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그 열정이 무섭다. 아니, 무섭도록 존경스럽다.

[여성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