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후보 선출방식 '검은 손' 작용할 까? 역선택 전쟁에 문재인-안철수 초긴장

2017-02-10     홍준철 기자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조기대선 정국을 맞이해 여야가 대통령 후보 경선 방식을 정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정권교체 열망 속에 야권 잠룡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완전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 국민의당은 국민참여경선으로 명칭만 다를 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은 같을 전망이다. 문제는 2012년 야권단일화 과정에서 불거진 ‘역선택’의 문제가 재차 불거지고 있다. 역선택이란 본선보다는 경선과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타당 경선이나 여론조사에 참여해 자당에게 유리한 약체 후보를 선택, 본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자칫 일반 국민들의 표심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거 때마다 문제시되어 왔다. 2017년 조기 대선정국에서도 급하게 치러지는 야권 경선에서 재차 표심 왜곡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잠룡군을 긴장시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검은 손’ 역선택 장막 속으로 들어가보자.
    - 文 자발적 지지자, “두 탕 뛰자” 安보다 손학규
- 국민의당은 ‘안희정’, 보수층은 ‘문재인’ 엇박자



‘역선택’의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참여경선을 실시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100% 일반 국민참여 경선이 아닌 진성 당원, 일반 당원 등 당원을 우선해 일반 국민 비중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참여경선이 크게 흥행하면서 일반국민 여론조사와 완전국민참여경선이 대세가 되면서 대통령 후보 경선과 총선 후보 경선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역선택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2012년 대선 때였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그리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 3파전으로 치러졌다. 안철수 현상이 크게 반향을 일으키던 초기 안 후보는 지지율에서 여야 두 후보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문재인-안철수 야권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자 여론조사 방식이 단일화 수단으로 등장했다. 결국 안 후보가 여론조사에 밀려 중도에 하차하고 문 후보에게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양보해 주면서 문재인-박근혜 양강 구도가 만들어졌다. 야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문 후보였지만 박 후보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100%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역선택 문제가 크게 대두됐다.  문 후보는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안 후보에 앞섰고 안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양자 대결에서 이기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문 후보는 ‘적합도 조사’를 안 후보는 ‘본선 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 문구로 치열하게 대치했다.

당시 이런 민심 왜곡현상 주범으로 보수층의 역선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보수층에서는 박 후보의 상대로 안 후보보다는 문 후보를 만만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의 진보적인 이미지에 맞선 안 후보는 ‘새정치’를 구호로 내세워 중도 보수층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외연확장성이 강했기 때문이다.

2012 문 vs 안 단일화
‘역선택’ 재현되나


이런 보수층의 두려움은 야권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었다. 즉, 박 후보에게 유리한 문 후보를 지지해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표심을 왜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당시 한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지자자의 46%가 문 후보, 33.6%가 안 후보를 ‘단일후보로 지지한다’고 응답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동아일보 9월8일자 여론조사)

이에 대해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대표는 “초기에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지지율 등 모든 면에서 뒤졌지만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면서 상승세를 타게 됐다”며 “당시 보수층에서 야권 단일화 여론조사에 적극 응해 문재인 후보 띄우기에 나섰고 이는 다시 2040세대에게 옮아갔고 호남 민심까지 움직이면서 안 후보가 중도에 하차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간 2012년 대선에서 불거진 역선택 문제는 2017년 조기대선 정국에 다시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월24일 ‘완전국민경선’과 ‘결선투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대선 후보 경선 규칙을 확정해 선거인단 모집에 들어갔다.

대의원과 권리당원 25만명에게는 자동선거권이 부여된다. 민주당에서는 일반 국민들의 참여가 최소 100만명에서 150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민의당 역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이 들어온 가운데 당원 중심보다 완전국민경선방식을 선택할 공산이 높아졌다.

역선택 문제는 더불어민주당보다는 선거인단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국민의당 경선에서 극심하게 나타날 공산이 높다. 현재 국민의당은 완전국민경선을 전제로 안철수 전 대표는 지역별, 연령별 성별 국민참여경선 신청을 받아 선별해 투표권을 주자는 입장이다. 반면 손 의장은 지역별 현장 투표 당일 오는 일반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전 대표 측의 안보다 손 전 고문의 안이 ‘조직동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갈등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어떤 방식으로 결정나든 타당 후보 지지자들의 ‘역선택’의 문제는 걸림돌이다. 특히 촛불 정국에 치러지는 조기대선으로 정권교체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자발적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가능성을 국민의당은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처럼 문 전대표의 경쟁상대로 안철수 전 대표보다는 손학규 의장을 선택해 확실하게 ‘문재인 대망론’에 화룡점정을 찍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지적이다.

‘자강론’을 내세우고 있는 안 전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문 전 대표나 민주당과 단일화나 연대가 없다는 게 소신이다. 오히려 안 전 대표는 ‘문재인 대세론’을 깰 유일한 인사가 자신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손 의장 역시 경선과 본선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손 의장은 2008년 2월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시절 민주당과 통합 해 통합민주당 대표를 맡을 정도로 야권 연대에 안 전 대표처럼 거부감이 높지는 않다. 문재인 열성 지지자들로서는 손 의장이 국민의당 후보가 돼야 문 전 대표가 제안한 야권연대나 공동정부가 가능할 수 있는 데다 본선에서 확실한 승리까지 보장받을 수 있어 역선택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미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열정은 문 전 대표를 비판한 정치인들에게 문자폭탄과 18원 후원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 초 '당 공식기구가 개헌 논의를 막고 문재인 전 대표를 대선 후보로 기정사실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연구원의 '개헌 보고서'를 비판한 후 문 전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항의 문자와 전화 수천 건을 받았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보고서를 비판하는 초선 의원 20인에 이름을 올렸다가 항의 문자를 받았다. 김부겸 의원은 끝내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집단적 행태를 ‘패권주의’라고 비판했다가 곤욕을 치렀고 급기야 불출마 선언을 했다. 국민의당이 완전국민참여 경선에 동의하면서도 ‘역선택’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文, 보수층·국민의당 지지
‘역선택’ 골머리


반면 더불어민주당 역시 ‘역선택’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당이 문재인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우려하는 반면 민주당은 안철수 지지자들과 보수층 양쪽 지지자들의 표심 왜곡을 경계하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이 여전히 공고하지만 반기문 불출마 이후 안희정 충남지사가 급부상하면서 문 전 대표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또한 보수층에서는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총리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안철수 지지자들에겐 문재인 전 대표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면 반문재인 구도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물론 보수 진영 후보가 지금처럼 지리멸렬해야 한다는 전제도 필요하다.

그런데 안 지사가 문 전 대표를 결선투표제까지 가서 드라마틱하게 이길 경우 반문재인 구도가 깨질 공산이 높다. 국민의당 지지자들은 안 전 대표와 성향이나 이미지가 겹치는 안 지사의 부상은 본선에서 차별화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을 꺾은 돌풍에다 중도.보수 이미지와 50대 신선감이 더해져 문 전 대표보다 힘든 경쟁상대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 한 관계자는 “국민의당은 보수층의 문재인 비토가 강하기 때문에 강력한 보수가 떠오르지 않으면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보는 것 같다”며 “안희정 후보의 연정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보수층의 지지를 염두에 두고 미리 제동을 걸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상대적으로 비토층이 적은 안 지사가 경선에서 이변을 일으키면 국민의당에 타격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며 “민주당 경선에서는 문재인이 무조건 된다고 하면서 민주당 경선은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보수층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에 기대는 것으로 구차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2012년 대선에서 ‘역선택’으로 재미를 본 보수층 역시 민주당 경선에 대거 참여할 가능성도 높다. 국민의당 지지자와는 달리 보수층에서는 ‘반문재인 정서’가 팽배해 문 전 대표보다는 문 전 대표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안희정 지사를 지지할 공산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 전 대표와 문 전 대표는 ‘본선 경쟁력’은 당내에서 높은데 오히려 경선에서 탈락하는 기현상을 막기 위한 ‘역선택 방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문 전 대표가 먼저 나섰다. 2월2일 경상대학교 특강을 통해 문 전 대표는 “역선택이 있을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며 “2가지 방법이 있다”고 밝혔다. 먼저 유권자가 복수정당의 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 없도록 선관위가 관리하는 입법적 방법이 필요하고 두 번째로는 많은 국민이 참여하면 역선택은 희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입법은 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역선택 방지법안을 6일 내놓았다. 김 의원은 완전국민경선을 하려는 정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경선을 위탁하되, 선관위가 지정하는 날짜에 동시에 실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경선 동시 실시뿐만 아니라 선관위가 정당의 경선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선거인을 모집하되 어느 정당 경선에 참여할 것인지를 조사해 정당별 선거인 명부를 작성하도록 했다. 각 정당은 정당별로 구분돼 있는 선거인 명부를 선관위로부터 교부받아 지역별 순회 경선을 진행한다는 게 골자다.

역선택 방지법 발의…
현실화는 ‘미지수’


미국의 경우 양당체제로 대다수 주에서 주정부 관리하에 같은 날짜에 정당별 국민경선을 하도록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당체제다. 정당별로 경선을 상이하게 정하는 특성 등을 감안하면 역선택 방지가 힘든 상황이다.

선관위 역시 ‘조기대선 정국’속에서 경선을 관리할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대선 본선거를 준비하는 현실적 문제로 본선 준비 기간과 경선시기가 겹칠 수 있다는 게 선관위의 판단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려면 후보자 등록 등 규정된 절차에만 75일 정도가 소요된다. 원래대로 12월 대선이 치러지지 않는 이상 선관위가 본선과 동시에 경선관리까지는 무리라는 입장이다. 결국 조기 대선정국에 치러지는 각당의 경선과정에서 일반국민들의 표심을 왜곡할 수 있는 역선택에 대한 방지가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조기대선이 낳은 또 다른 폐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