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바람, 자유한국당 붕괴의 전조? 이재명 바람과는 반대 방향...
2017-02-10 한윤형 부소장
- 새누리 향한 엘리트동맹, 지역조직이 깨지는 중일까
안희정 충남지사가 떠오른다. 1~4% 지지율에 줄곧 머물러 있던 그가 단숨에 10%대 중반에 진입했다. 작년 말 이재명 성남시장의 상승세와 비슷한 수치다. 정치고관심층과 충청 출신들에게만 알려졌던 그가 드디어 대중의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여론조사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바람의 흐름은 불과 몇 달 전 같은 야권주자인 ‘이재명 바람’의 흐름과 사뭇 다르다. 당시 ‘이재명 바람’은 수도권 2030세대가 주도했고 이에 호남이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권 성향이 선명한 이들이 만든 바람이었다. 반면 ‘안희정 바람’은 매우 특이하게도 50대의 지지로부터 출발했다. 추세를 봤을 때 ‘야권 성향 중도층’에서부터 ‘보수 성향 이탈층’의 마음을 끌고 있다.
그래서 분석가들은 흔히 안희정이 문재인에 비해 확장성은 있으되 경선에선 불리할 거라 전망한다. 타당하다. 하지만 ‘왜 보수·중도는 안희정을 택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추가적 설명이 필요하다. 안희정의 정체성이 실제로 어떤지, 보수·중도파 유권자가 안희정을 택하는 사정이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참여정부 노선 계승의
공과 있어
먼저 안희정의 정체성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에는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에게 우려하는 이들은 주로 진보파거나 야권의 핵심지지층(보통 친문재인 성향인)이다. 다만 두 우려의 결은 다소 다르다. 진보파의 우려가 안희정의 경제정책이 상당히 보수적이란 것이라면, 야권 핵심지지층의 우려는 그의 태도가 보수파에 대해 지나치게 포용적이란 것이다.
안희정은 말 그대로 ‘참여정부 노선’의 계승자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기 무상급식 논쟁과 보편적 복지 논쟁을 통해 그 노선으로부터 어느 정도 이탈했다. 이엔 손학규·정동영 등 비노의 공로도 있었지만 친노들 역시 저항없이 동참했다.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라는 참여정부 정책이 그들에 의해 폐기되었다. 2012년 문재인 후보의 대선공약은 일부 진보주의자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실현가능한 사민주의 노선을 보여줬다’는 평까지 받았다.
이와 같은 방향 전환엔 나름의 공과가 있다. 해당 정책의 추진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반성과 해명을 하지 않고 정책을 부인해버린 경우가 있었다. “이명박 FTA는 ‘나쁜 FTA’고 참여정부 FTA는 ‘좋은 FTA’였다”는 식의 다소 해괴한 정당화 논리도 생겼다. 이에 대해 “(두 FTA는) 큰 틀에서 차이 없습니다”라고 트위터에서 말한 안희정은 차라리 일관성 있는 이로 보였다.
한편으론 참여정부가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민심을 잃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보수정부 십 년 동안 민주당의 정책강령이 변화한 것은 그 부분을 반성하고 수습하겠단 의미가 있었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안희정식 민주 정부 계승이 현 시대 사회문제 대처에 어떤 비전을 보여줄지 충분히 준비된 것인지 판단이 안 선다.
냉소가 심화되기 전
정당이 대안돼야
반면 ‘대연정’, ‘창조경제’, ‘녹색성장’과 같은 단어를 둘러싼 야권 핵심지지층의 힐난은 다소 핵심을 비켜난 느낌이다. 그들은 안희정에게 자신들이 가진 상대 당파에 대한 강한 비토의 정서를 배우라 한다. 그러나 전임 정부의 부정축재자를 조사하는 일과 상대당파에 대한 존중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전자는 정의구현이지 복수극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존중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상대 당파에 대한 존중은 그들을 지지한 유권자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안희정이 참여정부의 대연정을 언급한 건 부적절한 구석이 있지만, 충남도에서 했던 협치를 하겠다는 의도라면 국회선진화법 시대의 국정운영 철학의 기본을 말한 것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정권교체의 열망을 지녔지만 ‘비토 정서’에 지친 이들이 그에게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이 지점에서 그는 ‘화끈한 복수극’을 바란 열망을 대변했던 이재명과 실제로도 정반대에 서게 되는 터이다. 평소보다 정치고관심층이 된 유권자들의 눈은 정확했다.
한 가지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보수중도파의 안희정 지지가 역선택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군 장성 출신이 눈에 띄게 늘어난 현실은 새누리를 향한 엘리트동맹이 이반하고 있음을 뜻한다. 자유한국당이 부산·경남에서 지역 공약을 내기 버거워하는 현실도 심상치 않다.
영남인의 민원을 해결해주던 포괄정당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역조직이 약화될 거란 전망도 해볼 수 있다. 권위를 상실한 대통령이 청와대 점거농성을 하고 이를 보수 정치 세력이 단호하게 절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전선이 교착된 것으로 보이는 건 착시현상일 뿐이다. 제도를 활용한 침대축구 수준의 지연작전은 보수의 권력지반을 침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희정 바람’은 정치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2007년의 야권지지층이 그랬듯 보수적 유권자들이 일체감을 느끼던 상실의 상황, 대안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상황의 이면이다. 이것이 진보파에게 반사이익을 준다고 반길 만큼 한국의 정당이 단단하지 않다. 잘못하면 한국의 거의 모든 유권자들이 부유하며 ‘냉소’와 ‘바람’을 오가는 혼돈의 정치지형이 될 수 있다. 야당들에게 각성과 책임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