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불출마’로 새된 사람들
‘생업’ 까지 내놨는데… ‘반풍(潘風)’ 쫓다 ‘오리알’ 신세
2017-02-03 고정현 기자
- 이도운 대변인, 潘 불출마 선언한 날 ‘사표’ 수리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격 선언이었다. 이에 반 전 총장을 바라보고 있던 ‘반기문 도우미’들은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기문 불출마 선언한 날,
김무성 충격받고 만취”
일단 가장 큰 피해자는 바른정당이다. 바른정당은 반 전 총장 귀국 전부터 반 전 총장에게 노골적인 구애를 펼쳐왔다. 반 전 총장이 대권 행보 과정에서 ‘1일 1 구설수’라는 오명을 떠안으며 ‘헛발질’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른정당은 “바른정당으로 들어와 본격적인 지원을 받으며 뛰는 게 좋지 않나”라며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믿었던 반 전 총장이 급작스럽게 중도 하차를 선언했다. 바른정당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바른정당 김성태 의원은 반 전 총장이 중도 하차를 선언한 다음날인 지난 2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반 전 총장 불출마는) 바른 정당에 악재”라며 “반기문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김무성 의원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술을 많이 마시더라, 특히 반기문 총장의 사과를 받고 엄청나게 씁쓸해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바른정당으로선 울며 겨자먹기로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럼에도 이들 두 후보로는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특히 유 의원과 남 지사 모두 박 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면서 보수의 심장 TK에서 ‘배신자’로 낙인이 찍힌 상황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사면초가에 빠진 바른정당이 새누리당 또는 국민의당과 합종연횡을 시도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공식적으로 반 전 총장을 돕겠다던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입장도 대동소이하다. 나 의원은 귀국하는 반 전 총장을 맞으러 나가는 등 반 전 총장에 적극 구애를 펼쳐왔다. 이후에도 “반 총장께서 대선 행보를 한다면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반 전 총장 지원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새누리당 탈당과 바른정당 합류를 미룬 이유 역시 반 전 총장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 바 있다.
여기에 나 의원은 과거 비박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지만 패배했다. 나아가 비박계의 분당 결행 당일 날 돌연 탈당을 취소하는 등 비박계의 행동에 재를 뿌려왔다. 일각에서는 나 의원이 신당의 원내대표 자리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해 탈당을 하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처럼 비박계와 결이 달라진 나 의원으로서는 반 전 총장의 귀국 후 불어올 반풍(潘風)에 더욱 목맬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결국 나 의원은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고립무원 처지에 빠진 형국이다. 나 의원이 반 전 총장도, 비박계 의원들도 모두 잃었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 의원은 새누리당 탈당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굳히며 새누리당에서 다른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네티즌들은 “영화 ‘더 킹’을 보는 것 같다”라며 “반기문 불출마하니 금세 태세 전환에 들어갔다”라며 조소했다.
나경원·충청권 의원들
갈 길 잃어…
나 의원뿐만 아니라 그간 새누리당 탈당을 염두에 두며 반 전 총장을 지지한 새누리당 내 충청권 의원들 역시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를 필두로 이명수·박찬우·성일종·이종배·박덕흠·경대수 의원 등은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기 하루 전만 해도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반 전 총장에 대해 “절대 중도 하차하거나 포기할 분이 아니다”라며 “(반 전 총장을 만나 보니) 결기가 대단하다.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반 전 총장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다른 충청권 의원들 역시 반 전 총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재확인하며 결의를 다졌다.
심지어 박덕흠 의원은 얼마 전 반 전 총장을 돕겠다며 탈당을 공식 선언하기까지 했다. 박 의원은 “반 전 총장을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왔다”며 “분열된 대한민국을 치유할 국민 통합의 적임자는 반 전 총장뿐”이라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반 전 총장만을 바라보며 탈당까지 염두에 둔 이들 충청권 의원들의 당내 입지는 크게 좁아질 것이란 지적이다.
한편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의 피해자들은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생업까지 포기하며 반 전 총장 대선 캠프에 합류했던 인사들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캠프 사무실 이전과 대규모 외곽 조직 출범 등 본격적인 대선 준비에 여념이 없던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의 갑작스러운 불출마 선언은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반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보좌진 중 한 명도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결심을) 몰랐다”며 “어제부터 캠프 관계자들과 연락이 잘 안 되긴 했다. 반 전 총장 맷집이 너무 약하다”라고 아쉬워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실무 직원들도 몰랐다. 방송을 보고야 알았다”면서 “본인을 홀가분하겠지만 생업을 접고 도우러 온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사퇴 전에 격려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맞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 반 전 총장의 대변인 직을 역임했던 이도운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은 반 전 총장 수행을 위해 회사에 제출했던 사표가 공교롭게도 반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는 날 최종 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