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군 복무 단축’ 공약…군(軍)퓰리즘이냐 합리적 대안이냐
2017-01-26 권녕찬 기자
전문가들, “대선주자, 책임 있는 자세로 해법 제시해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역대 대선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인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이 이번에도 재현됐다. 일부 대선 주자들은 현재 21개월(육군 기준)인 복무 기간을 절반 수준으로 대폭 줄이거나 아예 모병제 도입을 주장하는 등 과감한 공약을 내놓은 상황이다. 이에 관련해 안보 상황 등에 비춰 아직 시기상조며 표를 의식한 전형적인 표퓰리즘이란 견해도 있는 반면, 우리나라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복무 기간을 단축하고 모병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군 복무기간 단축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복무 단축 공약은 이번 대선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조짐이다.
군 복무 단축 등 병역 관련 공약을 밝힌 대선 후보들은 현재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다.
먼저 문재인 전 대표는 군 복무 ‘18개월-나아가 12개월’ 단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17일 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보면 “18개월까지는 물론이고 더 단축해 1년 정도까지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현대전은 보병 중심 전투가 아니고, 현대적이고 과학적이기 때문에 병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모병제에 대해서는 통일 이후에 바람직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남경필 경기도지사(바른정당)는 ‘2023년 모병제 도입’을 주장한다. 인구절벽 시대가 도래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병력을 유지하려면 복무 기간을 40개월로 늘려야 하기 때문에 모병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까지 사병 월급을 최저임금의 50%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 뒤 2023년부터 ‘연봉 2400만 원, 복무기간 3년’의 모병제를 실시하자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더불어민주당)은 병역 공약과 관련해 군 복무 단축과 모병제의 ‘병행’으로 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 시장은 현대전(戰)에 군인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며, 총 병사 30만 명(국방부 2020년 감축 목표 인원)에서 전문병사 10만 명을 모병해, 이를 전문전투요원으로 배치함으로써 나머지 20만 의무병의 복무 기간을 최대 10개월까지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갑론을박 ‘시끌’
표퓰리즘 vs 대안 있나
하지만 복무 기간 단축 공약을 두고 같은 당내 인사들까지 비판하며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어떤 튼튼한 안보체제를 가질 것이냐를 두고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며 “선거에서 표를 전제하고 공약을 내는 것은 나라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문 전 대표를 겨낭해 비판했다.
같은 당 김부겸 의원도 “특정 집단들을 상대로 표만 챙기는 전형적인 표퓰리즘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쉽다”며 대선 주자들의 병역 관련 공약을 비판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상류층 자녀 병역 기피 우려·모병 모집 어려움’을 이유로 들어 모병제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군 복무 관련해서는 아예 군복무 기간 단축 금지법까지 언급했다.
남경필 지사는 이에 대해 “유승민 후보는 군복무 기간 단축 법안에 모병제까지 반대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인구절벽으로 인한 군 전력 공백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불과 5년 후인 2022년에 일어날 일인데 유 후보의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병력 감소 불가피
모병제 필요성 대두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면서 병역자원 감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국방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가통계포털추계인구 자료에 따르면 현재 20대 남자 인구는 35만 명선에서 2023년 25만 명을 시작으로 2026년에는 22만 명까지 급감한다. 군 당국도 이런 인구급감 현상에 맞춰 현재 63만3000명(병사 44만6000명)의 병력을 2022년까지 52만2000명(병사 30만 명)으로 줄일 예정이다.
인구 감소 문제와 현대식 전투 방식에 비춰 징병제보다는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방전문가로 알려진 김종대 의원과 그가 속한 정의당은 ‘한국형 모병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스웨덴식 모델로 징병제와 모병제의 혼합 형태다. 징병제 틀은 유지한 채 전문병사를 모집해 40만 병력을 유지한 뒤 징병은 행정이나 후방근무 위주, 전문병사는 전투를 주임무로 해 점차 모병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에는 예산 문제가 거론된다. 다만 남 지사와 이 시장이 주장하는 모병제는 일종의 기간제(계약직) 모병제로, 전면 모병제보다는 비용 절감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 지사는 모병된 병사들에 3년 복무기간 동안 월 200만 원 대우를 하면 매년 4조 원의 예산이 든다고 했고, 이 시장은 연봉 3000만 원으로 계산해 연평균 3조 원이 들 것으로 계산했다.
반대 논리도 만만찮아
잠룡들, 구체적 방안 필요
모병제는 남북 대치라는 안보 상황에 비춰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 ‘있는 집’ 자녀들은 병역을 거부하고 하위층 자녀들만 입대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게다가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행 중인 ‘유급지원병제’의 운영률이 저조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유급지원병제는 병장 복무를 마친 이에게 월 145만∼205만 원을 지급해 6∼18개월 동안 ‘전문하사’로 일하는 제도인데, ‘유형-1’(전투·기술 숙련)과 ‘유형-2’(첨단장비 운용)의 충원율은 2015년 기준 각각 57%, 37%에 그쳤다.
군 복무 단축·모병제 도입을 둘러싸고 여러 득실이 얽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대선 주자들이 포괄적인 공약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고려한 체계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한 매체에서 “대선 주자들이 공약을 재탕 삼탕하고 있다”며 “대선주자들은 가장 심각한 사회적 모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