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강 구도는 현실일까? 혼란스러운 선거판의 역설

2017-01-26     한윤형 시대정신연구소 부소장
- 現 양강 구도가 고착화될 거라 안심하기 일러
- ‘민자→신한국→한나라→새누리’ 지지층 소멸?


심지어 선거 날짜조차 유동적인 대선 정국. 다만 탄핵안 인용 시기에 따라 4월에서 6월 사이엔 치를 것이라고들 한다. 민족 최대 명절이나 대선 영향력에선 추석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받던 설 연휴의 가치가 급부상한 까닭이다.

무려 석 달 동안 암중모색하다 겨우 약간 가닥이 잡혔다. 민주당은 문재인이 후보가 되는 것으로 거의 정리됐다. 이재명 돌풍이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까닭이다. 반기문은 귀국 후 기대했던 반향이 없었기에 재빨리 바른정당과 연합할 것이다. 그들은 새누리당을 주변화시키며 정국의 한 축을 만들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무 많은 주자가 모여 혼란스러웠던 제3지대도 안철수와 손학규가 손잡으면 어느 정도 정리된다. 정의당에선 심상정이, 반대편에선 황교안이 정통 진보와 보수의 기치를 들어 올리려 한다. 그들 입장에선 3자구도의 한 축이라도 깨져야 기회가 열릴 것이다. 양강 구도를 기본으로 한 다극체제다.

양강구도를 기본
다극체제 예고


선거를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유권자 사천만의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일이니 당연하다. 평소엔 그중 이천만 이상의 마음이 고정되어 있으니 조금은 얘기가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 마음들이 전례 없이 요동치고 흘러내려 폭풍과 급류를 만들어낼 때는 그런 가정조차 무의미하다. 예전엔 ‘상수’로 취급했을 영역의 흐름도 일일이 해석해야 한다.

가령, 1990년 3당합당 이후 ‘민자→신한국→한나라→새누리’의 계보로 이어지는 동안 굳건했던 그 지지층은 소멸했는가? 아니면 양 갈래로 분열했는가? 그도 아니면 잠깐 흩어져 사태를 관망 중인가? 세 가지 가설이 모두 설득력 있지만, 그 답에 따라 반기문,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등 보수주자들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행보나 그 결과에 대한 예측이 확연히 달라진다.

지난 십여 년간 야권 대주주였던 친노세력에 대한 호남인들의 마음의 흐름은 어떠한가? 그들이 친노세력을 영남패권주의로 파악하고 비토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일까? 아니면 그런 주장은 호남의 구태 지역 정치인들의 선동일 뿐 문재인에 대한 호남의 지지는 의외로 굳건하다는 반대편의 주장이 사실인가? 여론조사 결과의 순간적 등락을 보면 어느 쪽 주장도 가능하다.

더구나 양 극단 사이를 관통하는 절충적 가설도 있다. 호남은 ‘친노 비토’는 아니지만 지역의 이익과 상관없이 제1야당을 무조건 지지해야 하는 전략적 투표에 염증을 내고 있다든가, 호남인구의 노령화로 인해 그들이 여전히 반새누리 정서를 깔고 있기는 하지만 정책적으로 진보 성향은 아니라는 식의 분석 말이다. 이중 어느 쪽을 따르냐에 따라, 호남을 두고 실랑이하는 문재인과 안철수 등의 계산이 달라진다.

기존 상수 뿐 아니라 변수들을 살펴도 유동성은 더 커진다. 가령 그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고 이제는 호남보다도 인구가 많아진 충청을 보자. 출신지역 때문에 충북이 반기문을 선호하고 충남이 안희정을 선호한다는 식의 서술까지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충청도는 과거 영남인과 호남인이 어느 시점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로 묶인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충북이 다른 지역출신보다 안희정을 더 선호하거나, 충남이 다른 이보단 반기문을 더 선호할 수 있을까? 어느 쪽으로든 대답이 가능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지역  구도에 대한 계산이 확확 달라진다.

지역 선거에서 세대 선거로의 전환을 이끌어내고 있는 2030세대를 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세대 결집을 어느 정도 이끌어냈지만 패배한 2012년 대선 이후에도 몇 명의 후보에 대한 지지를 거쳐 다시 한 번 문재인 후보에게로 돌아왔다. 이것은 이재명, 안철수, 박원순 등 기타 야권 주자들에게 빨간불 신호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지지가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를 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혼란스러운 선거 구도가 주는 역설이 있다. 이번 선거는 언제 치러질지라도 1987년 이후 가장 정치적으로 고양된 국민적 관심 속에 치러지는 선거라는 것이다. 모두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런 판에선 지지층을 단순 덧셈·뺄셈하는 합종연횡의 술책이나 유권자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호도하는 기교적 수사법이 잘 먹히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뒤집어 보면 모두가 기본기·기초체력으로 승부를 보는 싸움이란 뜻이다.

정권교체 열망속
‘1위 때리기’ 역풍


정권교체의 열망이 너무도 컸기에, 보통의 구도에선 통했던 ‘1위 때리기’가 역효과로 나타났다. 문재인 후보를 비판한 이재명·박원순의 지지율이 하락했다. 그렇다고 문 후보의 낙승이 예상되는 것은 아니다. 문 후보의 기본이 계속 의심받는다면, 다른 주자를 통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보여질 때 정국이 다시 요동치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지지율이 인물경쟁력을 통한 상수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기문 캠프에게 주어진 힘든 과제도 어떻게 자신의 승리도 정권교체의 일종임을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 될 것이다. 잘못하면 현재 지지율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정당과의 결합이 튼실하지 못한 만큼 그 붕괴 가능성은 문 후보 쪽보다 높은데, 그 경우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그림을 봐야 한다.

흔히 불리하면 난전을 유도해 변수를 만들라고들 한다. 지금은 누가 만든 것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난전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당과 기존 지지층의 두터움 이전에 후보 개인의 경쟁력이 중요해진다. 무난하게 끝나든, 한 번 더 요동치든, 짧은 시기에 가장 치열하고 집중적인 검증이 일어나는 선거가 될 것이다. 현재의 양강구도가 무난하게 고착화될 거라 안심할 수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