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인터뷰

"3대 세습? 김정은의 최대 약점…"

2017-01-26     김대희 언론인
- "김일성과 찍은 사진 없다"
-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 친형?…성만 같을 뿐, 친형 아니다”
- “황장엽 전 비서는 주체사상 연구…나는 김정은 수족으로 뛰었던 사람”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이후 20여 년 만에 한국 언론에 공개된 북한 고위급 망명 인사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일요서울]은 그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들을 수 있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실상을 비롯해 북한 주민들의 생활,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 간의 비화 등도 공개했다.
 
     - “김정일, 머리가 엄청나게 좋은 사람…대화 이끌고 가는 능력 탁월”
- “북한에선 남편을 ‘낮전등’, ‘남(편)은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해”


태 전 공사는 “김정일 국가주석이 장남 김정남을 낳았을 때 김일성 국가주석이 반발했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장남 김 씨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며 “결국 김정일 주석은 김정은, 김정남, 김정철 등을 스위스로 보냈고 김일성 주석이 죽은 뒤에 데리고 왔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은 현대 국가 중 유일하게 직계 3대 세습에 성공한 나라이지만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은 정체성이 불투명한 김 위원장의 ‘백두혈통성’이라는 게 태 전 공사의 말이다.

이와 관련, 2009년 김 위원장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고 말하는 태 전 공사는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돌 사진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없다. 반대로 말하면 김일성 주석은 김 위원장을 몰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사람들이 정말 김 위원장의 존재를 몰랐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하나원에 가서 수백명의 탈북민들한테 물어보라’고 말한다. 실제 하나원에 가서 갓 망명한 북한사람들에게 김정일 수석의 첫째 부인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우리 장군님에게 첫째 부인이 있다는 건 무슨 소리냐’고 말할 것”이라며 “북한은 수령을 신격화했다. 신인데 여자를 여러 명 두고 있으면 말이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이 북한 내에 알려진다면 북한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의 일문일답.

- 정말로 북한주민들이 김정일 주석의 가계도를 모르느냐.

▲ 북한이라는 사회는 외부로부터 정보 유입을 차단하는 조건에서만 유지 가능하다. 사람들 간의 비교 개념을 빼앗았다. 비교 개념(사람이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생기면 북한 체제는 유지되기 힘들다. 그래서 제가 정치인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한테 알려주라고 한다. 

- 태 전 공사의 형이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라는 보도가 있다. 사실이냐.

▲ 잘못된 것이다. 우연히 성이 같아서 그렇게 보도됐다. 제가 몇 번을 해명했다. 태영철이 아니라고. 그런데도 계속 보도가 나가고 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면 팩트를 전달해야 된다.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제가 진실만을 얘기해야 다음 탈북자들이 이어진다. 거짓보도를 하면 제 동료들이 ‘국정원에서 돈 받고 하지 않았느냐, 대한민국이 민주화 됐다고 말하는데, 여전하구나’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이후 20여 년 만에 한국 언론에 공개된 북한 고위급 망명 인사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 전 비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텐데.

▲ 한국에 오니 황장엽 전 비서의 얘기를 많이 한다. 황 전 비서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연구했다면 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수족이 되어 뛰어다녔던 사람이다. 즉,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북한을 어떻게 해야 통일이 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은 질색이다. 토론할 시간에 행동으로 하자는 주의다. 나는 앞으로도 행동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김정일 주석과 이야기를 한 적 있느냐.

▲ 원탁에서 김정일 주석, 스웨덴 수상, 그리고 EU관계자, 북한 외무상 간의 통역을 위해 배석한 적이 있다. 2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그 자리에서 제가 느낀 점은 ‘김 주석의 머리가 엄청나게 좋구나’였다. 외교가에서 일생을 몸담은 나지만 김 주석이 스웨덴 수상과 대화를 끌고 가는 능력을 보고 놀라웠다. 내가 볼 때는 100% 거짓말이었는데, 김 주석이 얘기하는데 배석했던 관계자들의 표정을 보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얼려(‘어르다’의 북한어:요구에 응하거나 말을 잘 듣도록 함) 놓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김 주석에게 엄청난 내용의 문건을 만들어 보고 했는데, 김 주석은 자기 식으로 얘기하고 말했다.

- 당시 있었던 일, 한 가지만 소개해 달라.

▲ 스웨덴 수상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외국 투자를 받는 것뿐이 없다. 그러나 핵문제와 인권 문제가 걸린다. 두 산을 넘어야 외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자 김 수석은 ‘핵문제는 미국과 다 해결한다. 미국이 우리를 핵으로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핵은 필요 없다. 인권 문제도 솔직히 해결하고 싶다. 그런데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보니 인권 개념이 다르다. 우리(북한)는 인간을 볼 때 집단이라는 한 개의 공동체 속에 개인을 본다. 그러나 당신들은 개인이 기본이고, 사회와 공동체로 본다. 견해가 다르니 견해부터 합치자. 이게 출발점이다. 당장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힘드니 서로 대화하면서 점차적으로 나아가자’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스웨덴 수상은 ‘인권 대화한다는 겁니까’라고 물었고, 김 주석은 ‘당연히 하자는 거지’라고 답했다. 이후 스웨덴이 북한 유학생 유입 등 교류를 시작했다.

- 북한에도 한국 문화가 퍼지고 있는데, 어느 정도인가.

▲ 요즘 중국에서 개발한 태블릿 PC가 있는데 8시간만 충전하면 한 주를 버틸 수 있다. 특히 북한 장마당에 가면 충전기 등을 살 수 있다. 한류가 북한에 많이 퍼진 결정적인 이유는 저녁에 전기를 보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저녁 10시만 되면 어두워진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술 먹는 재미 아니면 한류 영화를 본다. 전기가 들어왔을 때 태블릿 PC 충전만 한다.

- 북한 주민들도 술을 자주 먹는가.

▲ 북한 사람들은 매일 술 먹을 일밖에 없다. 한국처럼 술이 좋지는 못하다. 깨끗하게 정제되지 못한 술이다. 술을 먹는 것은 전기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말을 잘못하면 총살을 당하기 때문에 술자리의 주된 대화는 ‘음담패설’이다. 술자리에 음담패설을 잘하면 큰 인기를 얻는다.

- 북한에도 폭탄주라는 것이 있는가.

▲ 있다. 북한 고려호텔에서 한국사람들이 폭탄주를 만들어 먹었다. 이로 인해 북한에 퍼졌다.

- 한국과 북한의 문화 중 틀린 것이 있다면 한 가지 소개해 달라.

▲ 북한의 사무실 문화는 여성이 출근할 때 일단 말을 좋게 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 오늘 예쁘다’, ‘그 옷이 잘 어울린다’ 등 부하직원이 듣기 좋은 소리를 많이 해주면 좋아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성분들과 대화를 할 때 정말 조심해야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북한에선 남편을 ‘남(편)은 (불)편하다(남편이 있는 게 불편하다는 말)’는 말과 함께 남편을 ‘낮전등(낮에 켜놓은 전등,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실제 북한 장마당의 경우 99%가 여성이다. 여성들이 돈을 벌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태 전 공사도 아내에게 꼼짝 못하느냐) 나 역시도 아내한테는 꼼짝 못한다. 

- 북한만의 문화가 있다면.

▲ 북한 식당에 가면 절대 메뉴판을 보면 안 된다. 메뉴판을 보는 순간 종업원들은 남자로서의 기능을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메뉴판을 바로 보며 메뉴를 주문하면 밥 먹으러 온 사람이라는 것과 동시에 남자로서 끝이라고 평가한다. 책을 보지 말고 우선 종업원을 보며 ‘식당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 등 종업원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면 종업원들은 이 사람은 기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 태 전 공사가 본 한국은 어떤가.

▲ 대한민국은 다이내믹하다. 덴마크 스웨덴 등 다 살아봤다. 살기 좋은 곳이다. 다만 열정이 없다. 7~8시 되면 집주변이 조용하다. 반면 한국은 인간의 세포가 편안할 새가 없다. 매일 새로운 뉴스가 생산된다. 이런 것이 좋다. 역동적인 생활 템포가 좋다.

- 태 전 공사의 희망은.

▲ 통일에 대한 얘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먼 장래로 생각해 한숨을 쉬고 얘기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통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말 가슴 아프다. 반신반의하면 절대 안된다. 된다고 생각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야 통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신념으로 저는 살고 있다. 특히 아들 대(代)까지 분단된 영토를 넘겨줄 수 없다는 게 나의 희망이다. 무조건 통일을 시킬 것이고, 고향에 걸어서 갈 것이다. 통일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