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34 [서울 무지개]

장자연 사건으로 되돌아본 ‘우리나라 性 현주소’

2010-01-19      기자

군사정권 시절 절대 권력자의 ‘性 스캔들’

작년 한 해 동안 한 신인 여배우의 자살사건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적이 있다. 이름 하여 ‘장자연 자살사건’이다. 사건의 키는 그녀의 자살이 아니라 성 상납, 성 접대였다. 스타를 꿈꾸는 햇병아리 신인 배우가 출세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 권세와 능력 있는 자들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여배우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언론매체의 수장부터 재벌총수와 잘 나가는 유명 프로듀서까지, 그들이 언제 어떻게 했네, 누구누구와 무슨 짓을 했네 하며 소문에 소문을 만들어내며 여론을 들끓게 했다. 국민 대다수가 흥분하고 모든 여자가 분개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하게 끝났다. 머리 자르고, 몸통 떼어내고, 늘 그랬듯이 권력과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땅에서는 약자는 거기까지가 다다. 힘없고 연약한 절박했던 약자 장자연은 억울하게 죽어가고 그들 힘 있는 세도가들은 언제나 죽지 않는다.

1989년, 제27회 대종상 우수작품상과 영평상, 백상예술대상에서의 작품상 및 감독상을 휩쓸며, 단관 개봉에서 무려 26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흥행기록을 세우며 발표됐던 김호선 감독의 <서울 무지개>가 있다.

유홍종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영화는 당시 독재정권하의 절대 권력자를 둘러싼 기쁨조의 루머를 모티브로, 인간의 존엄성이 권력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져가는 과정을 직설적으로 그린 사회성 짙은 이야기다.

같은 고향 출신 준(김주승분)과 유라(강리나분)는 각기 카메라맨과 화려한 모델의 꿈을 안고 상경한 연인 사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녹녹치 않는 법, 사정이 여의치 않자 준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기를 원하지만 꿈을 놓지 못하는 유라는 그렇지 않았다. 절박해진 유라는 마침내 육체를 밑천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돈과 권력의 상징인 절대권자의 여자, 기쁨조가 된다.

그 후, 그녀는 그토록 꿈꾸던 자리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 허망함을 깨닫게 되고 준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이미 깊은 수렁 속에 빠져버렸고, 헤어나려 발버둥 해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한번 채워진 올가미의 족쇄는 더욱 그녀를 억압한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갇혀 기억상실에 걸린 폐인이 되기를 강요당한다. 준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유라를 도와 어렵게 정신병원을 탈출하게 되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꿈의 도시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막 족쇄에서의 해방을 느끼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불도저 한 대가 달리는 그들이 탄 차를 까마득한 계곡 아래로 밀어버린다.

오랜 군부 독재정권하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금기의 영역인 절대 권력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다분히 사회 고발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당시 세간을 떠도는 충격적인 루머는 관객들로 하여금 소설이나 보이는 영화 화면을 넘어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인기 절정의 미모의 여배우가 영화 촬영장에 갑자기 들이닥친 검은 세단의 정장차람의 사나이들에게 납치가 된다. 그녀는 그들에 의해 여자의 생명과도 같은 생식기 속에다 헤어를 잘라 넣은 탓에 결국 자궁을 들어내야 했다는 설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루머는 그 이유 또한 다양했다. 절대권자의 총애를 받던 그녀가 딴 짓(?)을 하여 배신에 대한 보복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남편의 애정행각이 여배우 때문이라는 생각에 열화 같은 부인의 질투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었다. 그녀는 폐기 처분된 것이다. 이유야 어떻게 됐건 이제 더 이상 용도가 없고, 그녀가 더 이상 온전한 여자로 행세하며 사는 것조차 싫었던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이 그랬고, 대를 이어 김정일이 그랬다. 전국 각지에서 매년 어린 여자아이 수천을 뽑아 성적 쾌락의 도구로 이용되는 ‘만족조’, 안마 마사지등 피로회복용의 ‘안마조’, 무용 노래 연주를 하는 ‘가무조’등의 기쁨조를 운용한다고 한다.

선발된 그녀들은 6개월간 ‘만족조’로 주연 시중과 성적 종사에 필요한 예절과 기교를 익히고, ‘행복조’는 안마 마사지 지압 등의 전문기술을 배우고, ‘가무조’는 주연시 필요한 노래와 춤을 익힌다.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만수무강사업’을 위해서다.

그렇게 몸 바쳐 충성하는 그녀들의 이용가치는 나이 25살이 되는 5년간이고, 이후에는 가차 없이 용도 폐기된다. 폐기된 기쁨조들은 비밀유지를 위해 호위총국 근무 군관들과 강제 결혼을 시키거나, 혹은 고위 간부들의 소실로 생활하기도 한다.

그런데 장자연의 남자들이나 그때 그 사람, 그리고 김 씨 부자 같은 사람들이 공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하나가 있다.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일에 죄의식이란 없다.

서로가 원해서 합의를 이뤘고 합당한 대가를 치렀기에 문제가 없다는 거다. 돈이나 권력을 이용해서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연약한 여자들을 공갈 협박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자기네들의 성적 욕구충족을 위해 한 짓이, 그녀들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해 줬고 적절한 대가를 지불했으니 욕먹을 일이 아니라는 논리다.

개인적으로 돈 많은 늙은이가 딸 같은 여자를 사귀든, 대통령이 손녀뻘 아이를 만나든 만남만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최근 모 케이블 방송에서 보인 젊은 재벌 2,3세들의 실상은 또 다른 제2, 제3의 ‘그네들’을 보는 듯해 마음이 무겁다.

가진자들이여! 더 이상 세상에 욕먹지 마라. 남보다 많이 가진 게 욕먹을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권력자인 당신, 남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게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