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허락 없이 유포된 ‘무삭제 노출판’

모든 지적 재산권 감독에게 있다?

2017-01-20     조택영 기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개그우먼 출신 배우 B씨는 영화 노출 문제로 영화감독 A씨를 지난 2014년 4월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이하 서울지법)은 영화 감독 판 명목으로 출연배우와의 사전 협의 없이 노출 장면이 포함된 영상을 유료로 배포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로 영화감독 A씨가 불구속 기소됐지만 1심 재판에서 지난 11일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지법 측은 “계약 체결 당시 노출 장면을 촬영하지 않기로 했다면 A씨가 B씨에게 갑작스럽게 노출 장면을 촬영하자고 요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A씨가 배우에게 (노출장면 촬영을) 요구했고, B씨 역시 촬영을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재판이후 B씨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누리꾼 간의 진실 공방이 이어졌다.

해당 여배우, 감독 고소했으나 1심 무죄 판결
해외 사례 살펴보면 더 충격… 19세 여성 실제 강간

재판 당시 서울지법은 “영화는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되는데 B씨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해 배포하지 않겠다는 구두 약정만 믿고 촬영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상반된 이해관계에 비춰 약정이 있었다기보다 B씨가 노출 장면을 삭제해 달라고 울면서 매달리자 마지못해 요구에 응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계약서에는 A씨가 영화와 관련해 ‘모든 지적 재산권의 유일하고 독점적인 권리자가 된다’고 돼 있다”며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노출 장면이 있는 영화를 배포했다고 해도 계약서 상 편집, 배포 권한이 모두 A씨에게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B씨가 반대해 영화 배포가 지연될 경우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영화 배포가 곧바로 B씨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허위사실로 무고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동의 없이 유포한
감독판 노출신

A씨는 B씨의 동의 없이 상반신 노출 장면을 촬영한 성인영화를 2013년 1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와 IPTV 등에 유료로 유통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2012년 5월 B씨에게 “가슴 노출 장면은 극의 흐름상 꼭 필요하다”며 “일단 촬영을 하고 편집 때 제외해달라고 하면 반드시 빼주겠다”고 설득해 동의를 받아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B씨는 편집과정에서 가슴 노출 장면 공개에 동의하지 않았고 영화 개봉 당시 노출 장면은 삭제된 채 관객들에게 상영됐다.

하지만 A씨는 B씨의 허락 없이 노출 장면이 담긴 영화를 ‘무삭제 노출판’, ‘감독판’ 등 유료로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B씨는 2014년 4월 A씨를 고소했고, A씨는 세달 후 “사전에 합의해 영상을 촬영했고 결과물의 모든 권리는 제작자에게 있다”며 “허위사실로 고소한 B씨를 처벌해달라”는 맞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실제 성폭행 당한
해외 배우 사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2년 작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내 강간 장면이 여배우 동의 없이 촬영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5일 여러 외신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베르톨루치 감독이 진행했던 인터뷰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서 당시 19세 미성년자였던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가 실제 성폭행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간 장면은 대본에는 없었고 베르톨루치 감독은 인터뷰에서 “해당 성폭행 장면은 여자 주인공 슈나이더의 동의없이 남자 주인공 말론 브란도와 상의해 촬영했다”고 밝혀 비난을 받았다.

또 “강간할 때 버터를 사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영화 촬영 전에 브란도와 내가 생각한 것”이라며 “여배우가 아닌 소녀로서 강간의 고통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촬영 당시 상대 배우 말론 브란도는 48세였고 피해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는 19살이었다.

슈나이더는 2011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살아생전 그녀는 영화를 찍으며 수치심을 느꼈고, 감독과 배우에게 강간당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촬영 이후 약물 중독과 자살 시도 등으로 괴로워했으며 “변호사나 에이전시를 불렀어야 했다. 대본에 없는 내용을 연기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몰랐다”며 후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슈나이더는 해당 영화 이후 누드 장면을 찍지 않았으며 상대 배우 말론 브란도는 영화로 인해 1973년 뉴욕비평가협회상, 1974년 전미비평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이다

지난 16일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주최한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라는 포럼이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영화에서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다 보니 남성화한 제도의 카르텔 속에서 여배우는 끝없이 대상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사에는 배우 B씨도 참석했다. 그녀는 재판 1심에서 감독과의 대질 신문을 회상하며 A감독이 B씨를 향해 “과거 영화에서는 노출신이 있으면서 내 영화에는 왜 안 돼?”라고 반문했다고 말했다.

감독과 여배우 간의 합의되지 않은 노출이 때로는 예술 영화·성인 영화라는 이름으로 개봉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었다.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 “재연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며 “재연의 장에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은 종종 현실 현장에서 성폭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한낱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고 여성혐오 문화는 이런 대상화에 기반한다”며 “(영화판에서) 연기, 연예 노동이 갖는 특수성과 보편성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