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고 장자연 사건 종료

성상납 의혹만 남긴 채 끝나

2009-08-25     박태정 기자

고 장자연의 자살사건이 용두사미로 마무리가 됐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김형준)는 19일 고인에게 술자리 접대 강요 관련 수사 대상자 20명 가운데 유력인사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고 소속사 전대표 김모씨와 전 매니저 유모씨만이 기소됐다. 무혐의 이유는 증거 부족. 기소된 두 명도 사건의 본질을 비켜간 폭행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만 적용됐다. 사건 발생 이후 4개월 동안 시끄럽던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수사는 허무하게 끝났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연예계의 일부 그릇된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다. 술 접대의 원인으로 ‘노예계약’이 알려지면서 기획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연예계 계약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표준약관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본다.

검찰이 탤런트 고 장자연씨의 자살 사건과 관련해 성추행과 강요 공범 혐의 등으로 입건된 드라마PD 등 12명의 수사 대상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김형준)는 19일 고인의 소속사 전 대표 김모씨를 고인에 대한 폭행 및 협박, 전 매니저 유모씨를 김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강요죄 공범 혐의 등으로 경찰이 송치한 나머지 피의자 12명은 모두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은 우선 김씨가 의심받는 폭행, 협박, 강요 및 성매매알선, 업무상 횡령, 강제추행치상, 도주, 배임증재 혐의 중 고인 등에 대한 폭행과 협박 혐의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이 인정한 김씨의 혐의는 지난해 6월 고인을 손바닥과 플라스틱 물병으로 때리고, 이에 앞서 2007년 11월 모델 지망생 A씨를 때린 혐의와 지난 2월25일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한 고인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협박한 사실 뿐이다.

김씨가 고인과 소속사 여자 연예인들에게 술자리나 골프접대를 강요하고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경찰의 주장과 고인의 출연료 일부를 횡령한 혐의(업무상 횡령), 지난해 10월 남성모델에 대한 강제추행치상한 혐의, 경찰에 의한 체포 후 도주, 드라마 감독 B씨에게 고인 출연 대가로 회사 설립자금 50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려줬다는 배임증재 혐의 등이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

유씨가 받아온 고인에 대한 사자명예훼손과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대신 유씨가 지난 3월13일 언론에 김씨를 ‘공공의 적',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며 공소사실에 포함했다.

그러나 강요죄 공범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증권사 이사 C씨와 전자제품업체 전·현직대표 D씨, E씨, 외주제작사 대표 F씨, 사모펀드 대표 G씨 등은 당사자들이 고인을 술자리에서 본 적은 있지만 참석을 요구한 일도 없고 참석사실을 미리 알지도 못했다고 혐의를 부인해 무혐의 처리했다.

또 고인의 유족이 술 접대를 받았다고 고소한 모 언론사 대표 H씨와 인터넷 언론사 대표 I씨, 금융회사 이사 J씨(강제추행 혐의) 등도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혐의를 벗었다.

이밖에 배임수재 혐의로 입건된 드라마 감독 K씨, 고인에게 해외 골프 접대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L씨도 본인들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고,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혐의 처분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피해 당사자가 사망했고, 유일한 수사 자료인 자필문건은 추상적 문구로 작성돼 있어 구체적 피해 정황이 파악되지 않는다"며 혐의 입증에 한계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강요죄 등 실체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죄명이 선택된 것은 경찰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와 고인에 대한 동정 여론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수사하고자 했던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사회일각 검찰수사 맹비난

고 장자연 씨 관련 술자리 접대 강요와 관련 수사 선상에 있던 유력인사 10명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만 소속사 전대 표 김모 씨와 전 매니저 유모씨만이 기소됐다. 무혐의 이유는 증거 부족. 기소된 두 명도 사건의 본질을 비켜간 폭행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만 적용됐다.

이와 관련 고 장자연 사건의 진실 규명을 촉구해 온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가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유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검찰이 정의로운 법 집행에 관한 레벨(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며 대한민국 수사기관은 “정의감이 없다”고 비난했다.

또한 유 교수는“여성 연예인 성상납 관행 등에 대한 (암묵적) 카르텔이 어느 정도까지 공고한지 드러난 수사 발표다”면서 “민간 차원에서 문화적으로 (규명)작업을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향후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과 연계해 연예계 내부의 그늘진 곳을 계속 파헤치겠다는 각오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 및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지난 5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씨 사건 관련 특별검사 임명 입법 청원을 제기한 바 있다.


연예계, 수사 소리만 요란 결과는 역시나 반응

19일. 검찰의 수사 내용 발표 후 연예계 관계자들은 이런 결과를 예상한 듯 안타까워하면서도 “역시나”하는 공통된 반응이었다.

연예업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 발표는 이미 예상됐다. 90년 이후 PD사건 등 연예인 관련 사건이 여러 차례 터졌지만 한 번도 제대로 수사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건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흐지부지하게 끝날 거라고 예상했다”면서 “그래도 제대로 밝혀지길 바랐지만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건은 허무하게 끝났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연예계의 일부 그릇된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다. 술 접대의 원인으로 ‘노예계약’이 알려지면서 기획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연예계 계약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표준약관이 마련됐다.

연예계는 고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각성하여 제2, 제3의 장자연이 두번 다시 나오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일만이 업계 전체의 숙제로 남았다.

[박태정 기자] tjb@dailysun.co.kr